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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maya Nov 08. 2024

알아도 할 수 없거나


**브런치 북은 한 권당 30개의 챕터만 발행이 가능한 관계로 '타로카드 읽는 가게'는 30화까지를 1권으로 발행하고 31화부터 '타로카드 읽는 가게2'로 발행됩니다. 놓친 이야기가 없도록 마야의 브런치 구독을 꼭 눌러주세요!** 타로카드 읽는 가게 1권 바로가기


* [타로카드 읽는 가게'는 소설입니다. 모티브나 컨셉외의 모든 인물과 나오는 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














 





그 해의 마지막 날을 함께 보낸 후로 한 동안 경서를 만나지 못했다. 서로 나름으로 바빴다. 나는 앞 날을 대비하기 위해서 지금 맡은 일을 하루라도 빨리 끝마쳐야 했고, 경서는 그 집의 늦둥이 막내아들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했다.

그의 말로는 매년 1월 1일이면 온 집안 식구가 모두 모여 이른 점심을 먹으며 새해의 계획이나 그 동안 나누지 못한 근황을 자세히 이야기 하고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고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을 고민한다고요? 내가 깜짝 놀라 물었을 때 경서는 자기가 생각해도 우습다는 듯 크크크 하며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지만 그런 전통이 있죠.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요. 그냥 그래왔어요. 기억이 안나던 시절부터. 그러니까 오래 고민하기 싫으면 미리 저녁으로 뭘 먹을지 생각해 가는 게 좋아요. 나는 갈비탕을 의견으로 낼 예정입니다."


그리고선 한참을 자기가 아는 갈비탕 맛집에 대해 떠들었다. 한남동 어디에 있는 무슨 갈비집, 파주 어디에 있는 무슨 설렁탕집, 논현동인가 신사동인가에 있다는 무슨 갈비집......맛집 블로거처럼 서울과 근교에 있는 온갖 갈비탕 맛집에 대해 순위까지 매기며 내게 공유하더니 나와도 꼭 다 가보고 싶다는 말로 끝맺음을 했다.

나는 밥을 먹으며 다음 식사 메뉴에 대해 고민하는 그의 집이 매우 흥미로웠다. 고민거리가 참 없나보다고도 생각했다.

나도 무얼 먹을지 고민을 한다. 할 때도 있다. 내 경우에는 아는 음식이 다양하지 못해 그렇다. TV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음식에 대해 자기만의 철학을 펼치며 먹는 것의 즐거움, 자기가 먹어 본 가장 맛있는 음식, 요즘 유행하는 음식,  또는 자기만 아는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자랑한다. 나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많은 먹을 거리가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하고 조금은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런 것을 먹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쓴, 그리고 쓸 소설 속에 등장할 빈약한 음식의 종류와 그 묘사에 대해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신있게 묘사할 수 있는 음식이 몇 가지나 될까.

햄버거. 순대 국밥. 김밥. 라면. 카레. 제육 볶음. 돈가스. 스파게티.

무언가를 음미하며 먹어 본 적은 또 얼마나 되나.

TV 속 누군가가 포크로 무언가를 푹 찍어 들고 코 끝에 대고 스으읍 그 향기를 들이 마시고 황홀한 표정을 지을 때 나는 그 감정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무슨 냄새를 맡으면 저렇게 황홀해 하며 눈이 돌아갈까? 고소한 고기 냄새일까? 달콤한 과일향일까? 새콤한 초무침 같은 향일까?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 뿐이었다.


"무슨 생각해요?"


너무 멀리까지 생각이 나갔는지 멍하니 있던 내 뺨을 슬쩍 만지며 경서가 물었다.


"경서씨네 집이요. 무언가 먹으면서 다음엔 뭐 먹지 회의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봤어요. 귀엽기도 하고. 궁금해서요. 우리집에서는 본적 없는 장면이라."


"우리 집에 오고 싶다는 말로 들리네요?"


경서가 쿡 하고 웃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 봤는데 장난스러운 그의 얼굴을 보니 갑작스럽게 윤주의 집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나에겐 악몽과도 같았던 날. 따뜻한 집과, 정감있는 음식들과, 다정했던 그의 가족. 그리고 음식보다 더 빠르게 식어갔던 그 날의 온기.


"전혀요. 아니에요."


나도 차가워져 딱딱하게 대답했다. 경서는 반응에 조금 놀란듯, 의아한듯 보였다. 나는 무언가 설명을 덧붙여야 할까 조금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이해할 수 없는 과한 반응과 그에 대한 추가 설명이 없음은 연인 사이에 서로 오해가 쌓이게 하기 십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늘 아는 대로 행동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알면서도 실수를 할 때가 많다. 알아도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새해가 오고, 그리고도 이틀이나 지나서 오랜만에 카페로 출근을 했다. 언니의 전격 폐업 선언이 있었지만 카페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일주일 이상 비워져있던 까닭에 많은 식재료들을 비우고 또 새로 채우느라 언니가 좀 더 분주해졌다는 정도? 타로 상담 중간 중간 내가 거들기도 했지만 언니는 혼자 하고 싶다고 했다. 단골 손님들은 왜 이렇게 오래 쉬었냐는 타박 겸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다정한 손님들은 오랜만이라 반갑다며 떡이며 한과 같은 주전부리를 챙겨주기도 했다. 언니는 그들을 향해 겸연쩍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러게요, 그랬네요, 라는 애매한 대꾸를 했을 뿐이다. 곧 그만둘 예정이라고, 이 카페의 운명은 이제 폐업 뿐이라는 이야기는 뉘앙스로도 비추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그들과 스몰토크 나누는 것을 몰래 몰래 관찰했다.


"카페가 닫는다는 건 언제 얘기할 거에요?"


그녀의 묘한 태도에 나도 묘한 궁금증이 들었다. 언니는 실실 웃기만 할 뿐이었다. 뭔가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나 또한 오랜만의 상담으로 약간 정신 없는 하루를 보냈는데, 사람들의 고민들을 듣는다는 게 꽤 낯설었다. 그들은 처음 만나는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자신들의 고민을 툭 터놓기도 하고 그 속에 있는 내밀한 감정을 슬며시 꺼내어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새삼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에 대해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알고 있는 척, 놀라지 않은 척, 늘 그런 척. 그들이 원하는 상담자의 모습을 연기했다. 그랬다. 연기.

잠시 쉬는 동안 잊고 있었지만 이 일은 꽤 연기를 해야하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무너지고 흔들리는 똑같은 인간이지만 카드를 섞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하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그들이 기대도 될만큼 평온하고 묵직한 어떤 인간으로 보여지길 바라며 그런 인물인 척 했다.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남자친구가 있는데 결혼을 했고, 아내가 임신 중인데 뭐라구요?"


여자는 나를 무척 답답해하며 말을 끊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임신한 와이프가 있는데 헤어지고 저한테 올 가능성이 얼마나 되냐고요."


그녀는 답답함에 목소리 톤을 높였다가 주위의 시선이 의식됐는지 오디오 볼륨을 줄이듯 확 줄어든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남자친구가 유부남인 걸 아예 모르셨던 거에요? 아니면 헤어질테니 기다려 달라고 한 거에요?"


나는 여전히 뭐가 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여자는 한숨을 푹 쉬더니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언니, 그게 뭐가 중요해요. 그거 선후 관계 따지는 게 상관 있어요? 그냥 내가 궁금한 거 알려주면 안돼요?"


"그러니까, 궁금하다시는 게 잘 이해가 안되서 그렇죠. 온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그 남자분이 이혼을 할지 말지? 아니면 이혼과 상관 없이 그의 마음이 나에게 올지 말지?"


나는 그녀에게 설명을 하면서도 이 타로카드 상담을 하고 싶지 않았다. 듣는 순간부터 귀를 씻고 싶었다. 이 여자가 내가 하는 말을 이해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친, 결혼, 그의 아내, 임신, 내것. 그 무엇하나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단어들이었다.

여자는 눈빛으로 나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녀가 궁금하다는 것을 풀어서 차근차근 설명하면 할 수록 그녀가 느끼기에도 이 관계가 전혀 상큼하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양심이 없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본능적으로 투명하지 않은 감정에 대해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나는 그게 본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건 성선설이나 성악설 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본능. 성향이 아닌, 본능. 인간은 누구나 깨끗한 것, 깔끔한 것, 부드러운 것, 포근하고 보송보송한 것을 선호한다. 육체가 속해있는 환경이나 촉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선하고 악하고의 판단 이전에 이미 어두움이 묻어있는 축축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그런 감정에 빠져있는 사람들도 아무리 상관없다고 부르짖고 자기 감정이 진짜라고 주장해 봐도 결국 천천히 자기 혐오에 젖어들게 된다. 그래서 자꾸만 그와 자신의 관계를 정상적인 것, 정상에 범주에 있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새로 정립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여자는  질문을, 자신의 궁금증을 뾰족하다듬는 나를 본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핵심으로 들어가는 길이 뾰족하면 뾰족해질 수록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본능을 향하는 자신의 동물적인 모습은 언제나 직시하기 어렵다. 거부감이 든다.


"아......마음......마음이......마음은 저에게 있어요. 그건 확실해요. 와이프하고 파탄난 건 오래됐어요. 저를 만나기도 전에요. 그건 확실해요. 진짜."


그녀는 몇번이나 확실을 확신했다. 하지만 확실을 확신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불확실한 것이다. 확신을 어떤 척도로 계산할 때 100에 가까운 확신은 '당연함'이다. 당연함은 의문을 품지 않는다. 당연하니까. 반대로 확신할 필요도 없다. 당연한 것을 확인하고 곱씹는 사람은 없다. 당연함은 그저 거기에 머무르고, 보통은 잊어버린다.


"그 여자가 안 놔주는 거에요. 우린 준비가 됐는데, 와이프는 이미 끝난 관계를 포기를 못해요."


"임신......했다면서요?"


"그건 실수에요. 실수했다고 했어요. 난 줄 알았대요."


비위가 강한 편인줄 알았는데 그녀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났다. 얼굴도 모르는 그 남자에게도 구역질이 났다. 세상사 구질구질함이 다양하다지만 그들의 상황이, 그걸 듣고 있어야 하는 내 상황이 참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했다. 이걸 어디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 걸까?


"그럼 와이프의 마음이 알고 싶으신 거에요? 남편과 이혼을 하고 싶은지?"


나는 그녀를 향한 혐오의 얼굴 빛을 숨기려고 고개를 숙여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 맛이 유난히 썼다.


"아뇨. 아뇨. 그 여자는 이혼 안할 거에요. 애기도 남편 붙들 도구로 쓰는 여자인걸요. 남자친구가 이혼을 할지, 그러니까 하고 싶어 하긴 하는데 진짜 할지 그게 궁금해요......"


아아,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한 숨을 내 뱉었다. 여자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선생이 아니다. 나는 그녀의 지인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냥 카드를 섞고 그녀의 욕망과 소망이 담겼을 카드를 읽어주고 보내기만 하면 된다.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그래, 이 여자도 그렇게 진지한 건 아닐거야. 겨우 오천원, 만원짜리 타로카드 점일 뿐인 걸.

하지만 여자는 내가 내민 카드를 무척이나 신중하게 섞고 더욱 신중하게 한 장 한 장 뽑았다. 재미로, 가볍게 임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왜 이렇게까지, 하며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카드를 펼치다가 문득 그녀의 간절함이 내 마음에 휙 하고 스치는 게 있어 물었다.


"혹시, 임신하셨어요?"


여자는 헥! 하고 숨을 들이키며 토끼눈으로 날 바라봤다. 잘못을 들킨 어린 아이 같은 눈동자였다.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잘못을 저지르고선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눈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말없이 서로의 눈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안돼요......?"


여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뭐가 안되냐는 말인지.

나는 카드를 찬찬히 살폈다. 이게 이리 간절할 필요가 있는 일일까? 당연하지 않은 일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게 우스웠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상담자님이 원하는 그런 일은. 남자분은 지금 아무 생각이 없어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고 그걸 깨고 벗어날 의지도 없어요. 어떻게 보면 그 분은 지금 무척 행복한 상태로 보이네요."


"만족이요?"


"네. 원하는 것을 모두 적당히 잘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내도, 애인도, 그리고 아이도."


"......"


물음으로 가득찼던 여자의 눈동자가 텅 비었다. 그리고 조금씩 슬픔이 채워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눈동자 저 뒤편에서 갑자기 불꽃이 확 튀었다.


"내가 사랑해줘서 그럴 수 있잖아요. 지금 와이프랑, 다 안 좋은데 내가 있어서! 내가 그의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채워줘서 그럴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여자는 텅빈 슬픔 대신 현실 부정을 선택한  했다. 그런 여자를  평생 보고 살았던 나는  구역질 나는 상황이 너무나 익숙해서 지겨웠다. 그래. 당신 같은 사람들이 그렇지. 현실직시를 못하기 때문에,  나쁜 머리로 어딘가 고장난 행복 회로를 윙윙 돌리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

그리고 난 그 끝을 너무 잘 알지.


"남자친구가, 임신 한 거 알아요?"


씩씩대던 여자가 다시 헷, 하고 잠시 멈췄다. 감정도, 숨쉬는 것도, 생각도 멈춰버린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말하는 순간 그녀가 꿈꾸던, 환상을 품었던,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던 그 관계가 완전히 끝나버리라는 것을 막연하게 나마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울렁이는 묘한 감정이 그녀를 이곳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확신은 불명확하다.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일 때가 많다. 당연하지 않으니까. 당연은 선언할 필요가 없지만 불확실성은 확신을 선언해야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아이러니는 불안 속에서 피어난다. 불안은 본능과 반하는 행동을 할 때 싹 트고.

여자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주 멍청한 여자는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 고장난 행복 회로를 돌릴 엄마보다는 똑똑한 여자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사실은, 다른 질문을 해 보도록 했어야 해요."


나는 밀린 설거지를 하는 언니 옆에서 마른 행주로 컵의 물기를 닦으며 고백했다. 컵 안팎의 물기를 닦고, 그 컵을 에스프레소 머신 위쪽 공간에 하나씩 가지런히 놓는 중이었다. 점심 시간 전후로 한 차례 인간의 무리들이 와르르 지나가면 싱크대에는 컵이 잔뜩 쌓인다. 사장 언니는 설거지감이 너무 많이 쌓이지 않도록 틈틈이 설거지를 하는 편이지만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설거지가 2순위가 되기 때문에 3시쯤 되면 닦아 놓은 새 컵이 없어 틈이 생겼을 때 늘 설거지에 매진해야 했다. 저녁 때가 되면 또 짧은 피크 타임이 있어 이 때 새 컵을 비축해 두어야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뭐가? 아까 그 상간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컵을 설거지통에서 그릇 건조대로로 옮기며 언니가 물었다. 역시 언니는 관심 없는 척 해도 카페에 드나는 사람의 모든 것을 꼼꼼히 보고 듣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건조대에서 방금 닦은 컵을 꺼내 물기를 닦았다.


"무슨 질문을 하게 했어야 하는데?"


건조대에 또 다른 컵이 채워졌다. 나는 눈으로 내가 닦아야 하는 컵의 숫자를 헤어리며 물기를 닦는 속도를 조절했다.


"제 3자의 마음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그녀 자신에 대해 물어보도록 했어야 해요."


"왜?"


"어차피 타인이 어떤 마음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정확도가 떨어지거든요. 카드를 뽑는 사람의 상념이나 의지들어갈 있고. 남자의 와이프에 대한 질문이었어도 질문을  사람이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카드를 뽑는다면 그게 영향을 미치 거든요. 당연하겠지만."


"그러니까  상간녀가 '와이프가 남편을 싫어하고 이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카드를 뽑으면 그렇게 나올 수도 있단 거지? 내가 그렇게 바라니까."


"네.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그냥 내가 남자친구와 이어질 수 있을까요나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바꿔서 물어보는 게 더 맞는 건데......"


"근데?"


"그렇게 질문을 바꿔보라고 안 했어요."


"왜?"


나는 텅 빈 그릇 받침대를 보며 언니가 얼른 다른 컵을 씻어 올려 주길 기다렸다. 언니는 내 손이 노는 걸 보면서도 별로 서두를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달그락 달그락 거리며 설거지통 안의 컵을 굴리더니 바닥에 깔린 티스푼이나 디저트 포크를 건져내 먼저 닦았다. 커피와 함께 케이크나 샌드위치를 함께 먹었던 손님이 많았던 까닭에 커트러리 통도 텅 비어 있었다.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지 안았거든요. 그 상황을 더 자세히 알고싶지도 않았고."


"왜?"


"토할 것 같더라고요. 들으면 들을수록. 불쾌해서 빨리 보내고 싶었어요. 내 얘기가 길어질수록 내가 그 관계의 조언자가 되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불법은 아닌데, 불법적인 일을 응원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팁을 주는 것 같달까? 그걸 돈 받고 하는 나 자신에게도 뭔가 불쾌하고요."


"그거 어렵지. 누군가의 내밀한 속사정을 가감없이 듣는데 가치에 대한 판단없이 찾아 온 사람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해야하는 거니까."


"조금 비겁하게 굴기도 했어요. 내가 더 성숙하게 생각했다면 진심으로 조언을 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것조차 싫더라구요. 가치에 대한 판단 없이 조언을 하는 것도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가치 판단은 이미 했고, 그 가치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지 못해서 그냥 모른 척 보낸 거잖아요. 그게 좀 찝찝하고 기분이 좋지 않네요."


"그 사람들, 자기네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니?"


언니가 흥미로운 영화 줄거리라도 소개하는 듯 설거지도 멈추고 아예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섰다. 가게에는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 화면에 고개를 고정하고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는 남자 손님 하나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금사. 금사라고 대, 금사."


"금사?"


"응. 금지된 사랑. 줄여서 금사. 웃기지 않니?"


언니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언니의 웃음 포인트는 나와 조금 다른 구석이 있어 나는 그저 그녀에게 보조를 맞추듯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금지된 사랑이라니. 사랑에 금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넌센스야. 금지된 건 법적인 약속의 파기와 도덕적 해이일 뿐이지. 그 온기 없는 장치를 사랑을 금지하는 도구라고 해석하는 게 난 너무 웃기더라고. 자기 감정과잉도 그런 과잉이 없지. 그러니까 그런 관계에 매달리는 거겠지만. 자기 감정을 어디에 섞어야 되는지 판단이 안되는 사람들이 꽤 많아. 가르칠 수 있는 게 있고, 가르쳐도 안되는 게 있지. 거기에 너무 마음 쓰지 마. 네가 하는 일이 오지랖이 필요한 직업이지만 모두를 구원하는 건 신의 영역이니까."


언니는 고무장갑 위의 옷소매에 웃다가 찔끔 난 눈물을 찍더니 다시 돌아서 설거지에 열중했다. 나도 다시 말없이 받침대에 올라오는 컵과 커트러리의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Seven of Cups (일곱개의 컵) : 마음의 상처가 많다. 망상, 잡생각, 허황된 꿈. 상대를 신뢰했는데 신뢰가 깨지거나 원하는 관계로 발전하지 않아서 받는 상처. 회사에 실망하거나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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