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abesque
*소설 '발레리나' 속 모든 에피소드와 인물은 허구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예주는 화를 냈다. 누가 곁에 있는 건 아니어서 겉으로 보기엔 혼자서 씩씩대는 걸로만 보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저 아줌마 어디서 되게 열받는 일이 있었나 보다'하면서 지나갔을테고, 또 누군가는 '저 여자 일진이 사나워 보이는데 피해서 가자'며 멀찌기 떨어져 지나갔을 것이다.
처음 원장과의 면담을 끝낼 때만 해도 그렇게까지 화가난 건 아니었다. 그때까지는 당혹스러움이 화를 덮고 있었다. 그녀가 하고 싶었던 건, 성향에도 맞지않는 짓을 하면서까지 모르는 여자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인 건 순전히 발레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겨울의 찬바람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런 신을 만나보세요, 이런 구원을 받아 보세요,라고 설득하는 그녀가 안되어 보였다. 아유, 여기에 더 좋은 게 있는데. 하루 한 시간 발레 수업만 들으면 세상 걱정 근심이 땀 방울과 함께 뚝뚝 떨어져 사라지는데 왜 이런 걸 모르지? 왜 이걸 안하고 저런 걸 하고 있지,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이나 이 마음이나, 섬기고 있는 것의 종류만 다를 뿐 품고 있는 마음 자체는 다를 바가 없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너의 신이 더 좋으냐, 나의 발레 신이 더 좋으냐를 겨루어 이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적어도 나는 죽음 이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행복과 만족을, 더 나아가 열심히만 하면 눈꼽만큼이라도 실력 증진이라는 보너스까지 챙겨주는 꽤 양심적인 신을 섬기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헤아리지 못했던 건 하나 역시 예주처럼 겨루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뿐. 호의로 보인 초대가 자신의 세상을 부숴버릴 계획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학원을 나와 걸으며 원장과의 면담부터 하나와의 첫만남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짧은 인연을 거꾸로 되짚어 보며 그야말로 점점 열이 받았다. 발레 수업 내내 한껏 달궈진 몸과 땀을 식혀주는 산뜻한 봄바람도, 창 밖으로 내다보며 봄을 가늠해 보던 가로수의 뾰족한 새싹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네가 감히, 감히. 감히 내 학원에서 그런 짓을해? 내 호의를, 그런 식으로 갚아?
원장의 학원을 '내 학원'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이상하단 생각을 못했다. 그저 '감히 어떻게'라는 감정이 그녀를 휘감았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 서로 마지막까지 존중해야할 선이 있다면, 하나는 그 선을 넘은 것이었다. 발레는 예주에게 있어 신성한 것이고,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할 핵심이었다. 만약 하나 때문에 예주도 학원에 다니지 못하게 된다면 예주는 하나를 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진짜 정말 만약, 만의 하나라도 학원을 다니는데 불이익이 생긴다면 예주는 하나가 다닌다는 그 교회에 찾아갈 생각까지 했다. 가서 '이 사이비들아! 있지도 않은 신에게 속고 있는 이 병신들! 헛짓거리 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나 행복하게 살아!'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와야지, 하는 상상도 했다. 나만 당할 수 없잖아.
잠시 차분히 앉아서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일을, 하나를 불러내 조용히 타일러 치워버리면 될일에 예주는 과하게 화가 났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예주는 다시 그들을 마주쳤다. 인형 탈처럼 교묘히 짜여진 웃음으로 친절을 가장하여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반 강제로 쥐어주고 있었다. 그들 중 반은 바로 옆에 붙어 쫑알대는 그들의 말이 아예 들리지 않는 척 앞만 바라보고 있었고, 반은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며 당황스러운 얼굴로 절절매고 있었다.
"애기 엄마, 우리 교회 한번 나와봐요. 애기가 어릴 수록 나와야돼. 그래야 주님의 은총을 더 많이 받아서 애기가 더 튼튼하고 똑똑하게 자랄 수 있어."
그 중 가장 온화한 표정의 중년 여성이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여자를 붙들고 말을 붙였다. 유모차 안에는 아직 이도 다 나지 않았을 것 같이 어린 아기가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아기 엄마는 뚜껑을 덮은 유모차의 작은 비닐 창으로 들여다 보이는 아기의 자는 얼굴 한번, 자신을 타겟으로 잡은 여자를 한번 번갈아 쳐다보며 난처한 얼굴로 손을 저었다. 아니요, 아니요, 괜찮아요.
여자는 애기 엄마가 들여다 보는 눈길을 따라 잠든 아기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더 진지하게, 더 간절하게 말했다.
"정말이야! 교회에 나와서 기도 한번 하면 아기가 달라져. 잔병치례도 없고, 아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니까. 그게 다 하날님의 보살핌 때문인데, 우리 교회를 나와야 돼. 다른데 말고 우리 교회에 나와서 간절히 빌면 바라는 거 다 이루어져."
"괜찮아요, 저 바라는 거 없어요. 교회 안다녀도 괜찮아요. 지금으로도 충분해요."
아기 엄마가 다시 한번 점잖게 거절했다. 예주는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쳐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주변에 하나가 있지 않은지를 살폈다. 담당 구역이 바뀐 건지 어쩐 건지, 예주의 눈에 낯익은 인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애기 엄마가 마음 속에 뭐가 많이 꼬여있네. 하날님을 거부하면 그 벌이 자식한테로 온다!"
여자는 자애롭고 친절한 미소를 순식간에 지우고 심술궃고 버석한 얼굴이 되어 아기 엄마에게 소리쳤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큰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는 통에 아기 엄마는 어쩔줄 몰라하며 두리번 거렸다.
"지옥 간다! 지옥불에 떨어지고 영원히 구원을 못받는다고. 살아있는 건 한순간이고 죽어서는 영원의 세계로 가! 자기는 몰라도 자식까지 지옥불에 떨어뜨리는 건 부모도 아냐!"
여자는 전도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을 쏟아냈다. 아기 엄마를 둘러싼 사람들도 모두 여자의 막말에 놀라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나서서 그들 사이를 중재하는 이는 없었다. 예주 역시 불편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움찔거렸다. 그게 무슨 막말이에요? 하면서 끼어들어 아기 엄마의 편을 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 남의 일에 더 끼어들지 말자 싶은 마음이 다시 불쑥 끼어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을 해도 가는 게 그쪽이 말하는 천국이면 전 안갈래요!"
처음에는 우물쭈물하던 아기 엄마는 여자가 유모차 안의 아기에까지 손가락질을 하며 악을 쓰자 그 여자보다 더 큰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신호가 바뀌었다. 뒤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음침한 여자를 두고 우리는 모두 제 갈길로 떠났다. 왠지 모를 속시원함을 느끼며.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삶. 예주는 그 여자가 그런 지옥을 왜 스스로 선택했을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믿음으로서 그녀는 평생 그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자기 손으로 만든 지옥이다. 그것이 얼마나 큰 위안과 안정을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위안과 안정을 다른 말로 하면 족쇄다. 스스로 채운 족쇄.
하나도 그런 족쇄를 스스로 채운 것일까? 무언가를 무조건적으로 믿음으로서 언젠가 딸을 다시 만나리라는 굳은 증명을 받은걸까, 아니면 믿지 않으면 영원히 아이를 만날 수 없으리라는 저주를 믿는 걸까?
산다는 건 아슬아슬한 일이다. 아무것도 약속받지 못한다. 약속을 한 이도, 약속을 받은 이도 모두 인간이니까. 그들은 찰나로 바뀌고, 아무도 모르게 되돌아올 수 있으며 결국은 죽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종결한다. 그 종결은 언제 어디에서 이루어질지 알 수 없으므로 아슬아슬한 존재는 아슬아슬하게 지탱된다. 한 다리로 높게 서서 사지를 모두 다른 방향으로 길게 뻗는 아라베스크 같다. 목과 상체는 위로 곧게, 양 팔은 각각 앞과 옆으로, 한 다리는 땅을 딛지만 다른 한 다리는 직각 이상 공중에 꼿꼿하게 들어올린다. 그 부자연스럽고도 위태로운 자세로 발레리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흔들림없이 서 있어야 한다.
토슈즈를 신는다면 발끝으로 서야하고, 그 상태로 점프를 하거나 턴을 돌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돌아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숨도 차지 않은 척 평온하고도 아름답게 미소지을 수 있어야 한다.
"아라베스크를 할 때는 사방으로 뻗어내는 힘을 써야해요. 지탱하고 선 다리는 땅끝으로 뿌리를 내릴듯 단단하게 지지하고 상체는 골반이 엎어지지 않게 세워서 위로, 팔 다리도 가만히 들고 있는 게 아니라 뻗은 방향을 향해 계속 밀어내는 거에요. 힘을 안으로 꽉 움켜쥐는 게 아니라 사방 팔방으로 계속 뻗어내는 거에요. 숨은 멈추는 게 아니라 밖으로.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거에요. "
아라베스크 자세로 단단하게 밸런스를 잡으려 굳어버린 예주를 보며 선생님은 계속해서 뻗어낼 것을 주문했다. 멈추지 말라고 지적했다.
"밸런스를 잡은 그 상태로 멈춰 있으려고 하면 절대 밸런스가 잡히지 않아요. 앞쪽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뒤쪽으로 뻗는 힘을 더 내고, 오른쪽으로 쓰러질 것 같으면 왼쪽으로 뻗는 힘을 더 내고, 어느 쪽에서 균형이 무너지는지, 힘이 없는지 세심히 살펴보고 계속해서 수정해 나가야 오랫동안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어요."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든 밸런스를 잡을 수 있어요.
선생님은 지금, 오늘, 이 수업에서의 완벽한 균형이 아니라 어느 상황, 어느 무대에서든 무너지지 않는 균형감각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컨디션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고, 좁거나 미끄러운 무대에 설 수도 있으니까. 그 어떤 상황이든 아라베스크가 안정적으로 나오려면 지금 당장의 안온함을 버리고 흔들리는 상황을 섬세하게 캐치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에 집중해야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딱딱한 균형을 좋아하지 않았다. 균형을 잡으라고, 흔들리지 말라고 하면서도 균형이 잡힌 듯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틀렸다'고 했다.
처음 예주는 그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균형을 잡으라며. 언제 어느 때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며. 그런데 왜 고요히 서있는 걸 틀렸다고 하는 거야? 균형을 찾았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거 아니야? 그걸 찾는 게 아니야?
"아니요. 균형을 찾되, 계속 해서 늘려야죠. 풀업은 됐나, 를르베는 최대로 들었나, 뒤로 뻗은 다리의 턴아웃은? 높이는? 지금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더더더 위로, 더더더 길게. 그러다 보면 지금의 균형은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그럼 무너진 지점을 찾아서 다시 세워야죠. 저는 여러분에게서 '조금 더'가 보이지 않아요. 다들 거기에서 만족하고 있어요. 그러면 딱 지금과 같은 조건이 아니면 균형 못 잡아요!"
선생님은 예주가 다리를 부들거리며 균형을 찾을 듯, 잃은 듯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이를 악 물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발레의 신은 절대 만족을 모른다. 그는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믿는 순간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린다. 발레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발레가 맞나조차도 의심하도록 만든다.
죽음 뒤에 올 영원한 행복과 안식에 대한 약속도 없다. 아무런 것도 약속해 주지 않는다. 그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너는 오늘 최고로 끝내주는 아라베스크를 만들어 함께 수업을 듣는 발레 메이트들에게 선망의 눈빛을 받았을지라도 내일은 똑같은 아라베스크를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보다 못한 아라베스크를 할지도 모르지, 메롱.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주는 발레를 하는 그 순간만이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 불안함, 그 고통, 그 좌절, 그 초조함. 그것이 진짜다. 다다를지 알 수 없는, 분명 존재하고 있지만 그게 내 몫으로까지 돌아올지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추구하는 것.
거기에 타인의 천국은 없다. 물론 지옥도 없다. 누군가의 천국과 지옥을 걱정하기에, 기꺼이 누군가의 안내자가 되기엔 내 삶이 너무 바쁘다. 그래서 엉터리 발레리나는 내 삶이 너무 소중하다.
불행 속을 헤매는 많은 사람들도 그 소중함을 누렸으면 하는 정도의 인정머리는 있었기에 예주는 자신의 천국이자 지옥, 매번 그 사이를 오가는 다이나믹한 발레 신의 예배당으로 하나를 초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망치려든다면, 그녀는 기꺼이 전사가 될 각오가 되어있었다.
균형은 중요하니까. 그 어떤 상황이 오든, 그 어떤 이가 흔들든 예민하고 섬세하게 진짜 자신의 균형을 가다듬어 아름다운 아라베스크를 지켜낼 책임이, 예주에게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