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는 글] 무대를 내려가며

by 문혜정 maya








작년 2월에 연재를 시작하고 올해 2월에 마지막회를 올렸으니 구상부터 치면 일년이상 '발레리나'만 생각하며 지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생각보다 쓰는데 오래 걸리거나 크게 막히는 건 없었던 소설이었는데, 마치는 글을 쓰는데에만 한달이 걸렸네요. 사실 처음 이 소설의 아이디어는 아주 심플한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생각보다 거창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춥고 더운 날 추위와 더위를 모두 맞으며 영생의 기회와 심판의 두려움을 알리려 하던 분들을 보며 안타까웠던 감정을 써보고 싶었어요.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고, 단지 태어났기 때문에 공짜로 만끽할 수 있는 이 모든 유한한 것들이 감사한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들이 찰나의 것, 언젠가는 끝나기 때무에 의미 없는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거든요. 어떻게 보면 사후의 세계만을 기다리고 그것만이 구원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만든 신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서 그가 인간을 위해 내려준 것들을 그저 스쳐지나가는 승강장처럼 표현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 분은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고 그 안에서 행복하기를 바랐을텐데, 하고요. 그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으로 빚고 희생과 사랑으로 지키려고 했으니까요.

영원하지 않고 무한하지 않기에 더 값진 것과 완전하지 않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을 끝의 끝의 끝까지 놓치지 않고 다 즐기고 느끼다가 여한 없이 죽는 것. 그러니까 지금에 집중하고 그가 만든 세상을 최대한 즐기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정말로 원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저는 종교인들을 비난하거나 신의 무용함을 이야기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 손에 주어진 시간과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슬프고 기쁘고 울적하고 설렘을 느끼는 불안정한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신이 있다면 그는 우리가 행복하길 그 누구보다도 바라는 존재일테니까요.



발레를 해보신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꽤 오래전부터 취미로 발레를 하고 있는 일명 취발러입니다. 시작한지 10년도 넘었습니다. 원래 이것 저것에 흥미가 많아서 즐기는 다른 취미들도 많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지겨워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열정적이되고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 발레가 처음이에요. 보통 취발러들은 약간 중독적으로 발레에 빠져듭니다.

발레는 일단 어렵고, 제대로 한다면 죽을만큼 힘들고, 하면 할수록 아리송하고, 취발러라면 죽을동 살동 해도 진짜 발레리나 같은 발레의 레벨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떤 취미든 꾸준히 10년을 하면 준 전문가가 될 수 있지만 발레만은 아닌 것 같아요. 1년이든 10년이든 언제나 초보입니다.

그래서 발레를 잠시 시도했다가 좌절하고 떠나가는 이도 많아요. 아무래도 정답이 있는 예술이라 타고난 체형이나 재능이 노력을 이길 때도 많다보니 타인과의 비교에 지쳐, 거울 속 아름답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실망해 그만두는 사람들의 비율이 꽤 높은 편이랄까요?

완벽한 턴아웃을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 완벽한 턴아웃으로 그랑바트망을 코 앞까지 빵빵 차고, 골반이 엎어지지 않은 채 90도 이상 다리를 들어 아라베스크를 한다는 건 또 어떤 기분일까? 앞으로 30년을 더 발레에 매진한다해도 저는 그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는 재미있어요. 내 몸으로 최대치의 아름다움을 뽑아내는 고행이라는 것이 흥미롭고요. 그리고 저는 그런 발레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꽤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달하고 싶은 이상과 내가 현재 처한, 가지고 있는 몸의 상태 사이에서 늘 자신을 괴롭히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 조금만 게을리하면 끝도 없이 미끌어져내려 어딘가에 쳐박히는 것. 완성할 수 없음에도, 그 과정만으로도 의미 있다 믿으며 내가 가진 것 안에서 만족과 도전을 반복하는 것 같은 것들이요.



사는 건 괴롭고 외롭고 어떨 땐 무의미 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고, 사는 동안 그렇게나 열망하고 욕심냈던 것, 이미 이루어 가지고 있는 것, 노력해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 아끼던 것, 지키고 싶었던 것 모두 죽음 앞에서는 깃털보다도 가벼우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가장 무거운 의미를 갖기도 하죠.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앞으로의 행복, 저 먼 미래에 약속된 행복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요. 그게 크고 거창한 것이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살아서 이 모든 것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동안 그것을 느끼고 싶어요.

발레를 하며 느끼는 고통과 고민, 좌절조차도 어떨 때는 살아있음의 증명 같아서 즐겁단 생각을 합니다. 아무런 고통이나 고난 없이 기쁨과 즐거움만이 내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라면 그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이 정말 행복할까 싶거든요.

어제 아침에도 발레 수업을 다녀왔고, 오늘 저녁에도 발레 수업을 하러 갑니다. 해도 해도 안되는 숙제를 풀어보려,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는 좌절을 맛보러 갑니다. 그럼으로서 내 안의 작은 변화를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그 작은 진전에 고무되기 위해서요.

그리고 나면,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흩날리는 계절을 누구보다 더 꽉 채워서 즐길 수 있겠죠? 한 달 전만해도 앙상하던 나무가지에 어느날 갑자기 뾱 하고 올라온 초록의 새싹이 가슴을 벅차게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앞으로 봄이 100번도 안되게 남아 있으니까요.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사람들은 모두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데 혈안이 된 것 같고, 내 삶의 남은 시간동안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아 어딘지 모르게 명치 끝이 답답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고통은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고통의 끝에 영원불멸한 행복이 기다려서가 아니라 그 고통의 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야 합니다.

이 소설을 통해 그런 글을 쓰고 싶었는데 글솜씨가 제 원대한 꿈에 미치질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만, 언젠가는 도달할 수도 있겠죠. 아니면 말구요. 저는 그런 마음으로 지내겠습니다.



2026년 말에는 타로카드 읽는 카페 2권이 출간될 예정이에요. 운 좋게도 해외 주요 국가들에서 타로카드 읽는 카페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그 뒷이야기도 책으로 낼 수 있게 됐습니다. 1권을 낼 때 꼭 그렇게 되고 싶다는 바람을 여기 저기 밝히고 다녔는데 그 일이 정말 일어나게(?) 되었네요.

그리고 아직은 초기 단계라 확정된 것은 없지만, 그 외에 남은 시간은 2027년쯤에 나오게 될 새로운 소설을 쓰면서 지내게 될 것 같아요. 브런치에도 소개하게 되면 좋겠지만 바로 계약을 하게 된다면 그 소설은 지면으로 선보이게 될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발레리나'도 출간이 될 기회를 얻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때까지 부지런히 쓰며 기다리겠습니다. 언젠가는 끝나지만, 그 전까지 저에겐 시간이 많으니까요. ^^



그럼 다가올 봄에도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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