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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엘 Feb 18. 2020

#13 호주에서 바리스타

코리 & 브리트니의 아몬드 카푸치노 & 소이 플랫화이트

카페가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아 코리와 브리트니는 단골손님이 됐다. 두 사람은 카페가 있는 건물 6층에 위치한 오피스에서 일한다. 호주에서 1층은 그라운드 플로어 (Ground Floor)라고 한다. 두 번째 층부터 1층이니깐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을 눌러야 그들이 일하는 오피스로 갈 수 있다.


두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전화로 주문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5분이면 도착한다고 하고서 15분이 돼도 오지 않는 일반적인 호주 사람과 다르게 두 사람은 전화를 끊자마자 나타난다. 어쩌다 지각이라도 하는 날이면 사무실까지 가져다줄 수 있는지 부탁한다. 아주 정중한 태도로 미안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간혹 커피를 가지고 코리가 일하는 사무실에 가면 동료들은 그에게 보시 (Bossy) 하다고 핀잔을 준다. 보스처럼 부려먹는다는 말이다. 매일 카페에 들러 커피와 아침식사를 주문하는 단골손님이 이런 요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꺼이 해주고 싶다.


코리의 커피는 아몬드 카푸치노에 스위트너 2개를 넣는다. 호주 커피에 단맛을 낼 때는 설탕, 스위트너 (Sweetener), 또는 시럽을 사용한다. 호주 카페에서 스위트너를 이퀄 (Equal) 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브랜드 이름이 유명해져 제품을 부르는 이름이 됐다. 스위트너는 단맛을 가진 유기 화합물, 감미료이다. 설탕이 당뇨병 환자나 운동하는 사람에게 좋다고 알려져 스위트너를 찾는 사람은 둘 중 한쪽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팔부터 목을 넘어 머리까지 문신을 한 다부진 체격의 그는 헬스장에서 매일 운동을 할 것이다. 그래서 설탕 대신 스위트너를 넣고 지방과 유당이 없는 아몬드 밀크로 만든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감미료는 값싸고 칼로리도 적으며 당뇨병 환자들도 마음껏 달콤함을 즐길 수 있어 설탕의 대체물로 큰 인기를 누렸다.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감미료는 사카린 (Saccharin)이다. 1879년 방부제를 연구하던 독일의 화학자 콘스탄틴 팔베르크가 우연히 발견했다. 사카린은 설탕보다 단맛이 200배 이상 강하며 체내에서 분해되지 않고 배설된다. 이후 시클라메이트 (Cyclamate)라는 감미료를 미국의 화학과 학생이 발견하지만 암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판매가 금지됐다. 현재 우리가 먹는 감미료는 아스파탐 (Aspartame)으로 1965년 미국의 화학자 제임스 슐래터가 위궤양 치료제를 개발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이렇듯 우연히 발견된 감미료는 다이어트 때문에 달콤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과식을 촉발해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이후로 인기는 사그라들고 만다. 이 연구는 지난 30년 동안 미국에서 무설탕 탄산음료와 스낵의 소비가 크게 증가했는데 어째서 미국인은 점점 더 뚱뚱해지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브리트니는 소이 플랫화이트에 설탕을 한 스푼 넣는다. 날씨가 지독하게 더울 때면 아이스 소이 라떼를 마시지만 대부분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설탕 없이 커피를 주문할 때마다 설탕 넣지?라고 물어보면 입 꼬리가 올라간 미소로 네가 더 잘 알잖아, 라는 표정을 짓는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호주 사람이라면 맛있는 커피보다 이런 것을 더 좋아한다.


호주 카페에서 쓰는 설탕은 로우 슈거 (RAW SUGAR)이다. 정제되지 않는 당으로 설탕의 원료가 되는 갈색 설탕이다. 로우 슈거와 비슷한 흑설탕 (BLACK SUGAR) 역시 정제되지 않은 원시적인 설탕으로 불순물을 더 많이 포함하고 있다. 흑설탕은 소스에 넣거나 고기를 숙성할 때 사용하면 좋지만 커피에는 로우 슈거가 더 적합하다.


설탕은 사탕수수로 만든다. 물리적인 정제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섞이는데 미네랄, 비타민, 마그네슘, 칼슘 등 좋은 영양소는 사라지고 당 성분만 남게 된다. 로우 슈거라 부르는 정제되지 않은 설탕은 최소한의 물리적인 과정을 거쳐서 만들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성분이 남아 있다. 어느 호주 카페를 가도 정제되지 않은 로우 슈거를 사용하니 굳이 어떤 설탕을 쓰는지 물어보는 손님은 없다.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호주 헌법에도 모든 카페는 로우 슈거를 사용한다고 적혀있을 것이다.


코리와 브리트니의 이름은 6개월이 다 돼서 알게 됐다. 카페에 다양한 손님이 있는데 이름이나 사적인 것을 함부로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손님도 있다. 이런 손님과 가까워지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가까워진 거리는 쉽게 멀어지지 않는다. 조금 과장하자면, 뺨을 때리더라도 다음날 커피를 마시러 올 정도로 말이다.


코리와 브리트니는 연인 사이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수개월 동안 봐온 정황이 유일한 근거인데, 지극히 사적인 것이라 물어볼 수 없다. 둘 다 사적인 질문에 예민하게 받아들일 타입이다. 이런 타입의 호주 사람은 원하지 않는 질문에 네 알바는 아니야 (none of your business),라고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둘의 이름을 알기 전까지 그들은 주문을 하고 나는 주문대로 만들어주기만 했다. 두 사람이 연인인지 물어보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두 사람이 충분히 사귀고 헤어지지 않을까 염려까지 들 정도로 많은 시간이 말이다.


호주와 한국의 다른 점들 중에 하나는 물가일 것이다. 대부분 한국보다 호주의 물가가 높다. 최저 시급이 20달러나 되다 보니 노동력이 비싸다. 그래서 사람 손을 거친 것들은 비싼 편이다. 가령 500원짜리 베이글을 사람이 구워서 주면 4000원짜리가 된다. 하지만 생활필수품은 한국보다 저렴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우유나 식빵이 대표적인 경우다.


대부분의 나라는 부가가치세라는 세금이 존재한다. 국가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이나 제조에 붙는 세금이다. 한국도 호주도 부가가치세는 10%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4달러짜리 커피 한잔을 팔면 10%인 40센트를 부가가치세로 내야 한다. 호주는 1년에 4번 부가가치세를 내는데 분기마다 쌓인 세금은 결코 작지 않다. 사업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무게를 잘 안다. 하지만 국가에서 특정 사업에 한해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는데, 바로 면세사업자이다. 한국은 농업이나 어업과 같은 나라의 근간이 되는 사업을 면세사업자로 특별 대우한다.


호주를 대표하는 생산품은 과일, 채소, 소고기, 그리고 광물 자원들이다. 호주산 오렌지나 소고기는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호주 정부는 이 상품들을 특별 대우하고 있다. 과일을 수확할 사람이 부족해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만들어 일할 사람을 공급하고 슈퍼마켓에서 과일을 살 때 부가가치세를 붙이지 않아 경제적 지원까지 하고 있다.


카페는 원재료를 구입해 가공한 다음 팔아서 수입을 만든다. 주로 커피 원두, 우유, 과일, 채소, 고기, 그리고 가공품을 원재료로 사용한다. 흥미롭게도 호주에서 커피 원두와 우유에 부가가치세가 없다. 과일이나 채소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커피와 우유를 생활필수품으로 취급하는 호주에서 한국보다 더 비싼 것이 있다면 주거비용이다. 한국에서 원룸에 살 때 한 달에 30만 원이 든다면 호주는 일주일에 30만 원 정도 든다. 무려 3배 이상 비싸다. 그러다 보니 방 2~3개 되는 아파트를 렌트하고 함께 살 쉐어메이트 (Share Mate)를 구한다. 서울에서도 치솟은 주거비용 때문에 쉐어하우스가 생겨나고 있다. 호주를 비롯해 주거비용이 높은 도시는 이미 쉐어하우스가 필연적으로 유행하고 있었다.  


골드코스트는 한국의 안양시 정도 크기다. 안양시에서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월세로 얻는다면 얼마나 할까. 골드코스트 시내에서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얻으면 일주일에 60만 원은 내야 한다. 비싸다 보니 3개의 방에 침대를 2개씩을 넣고 총 6명의 사람이 함께 살면서 비용 부담을 나눈다. 이러면 일주일에 1인당 10만 원 정도 내야 하는데, 여기에 각종 공과금을 더해 1인당 12만 원 정도를 낸다. 방과 주방, 욕실 등을 남과 공유하면서 사는데도 한 달에 50만 원이 드는 것이다. 프라이버시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싼 편이다.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사람은 도심을 벗어나 저렴한 쉐어하우스에서 혼자 방을 사용한다. 하지만 도심을 벗어나면 차가 필요하니 이마저도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주거비용이 비싼 호주에서 연인들은 쉽게 동거를 한다. 호주 사람은 물론 한국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호주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연인이란 표현만큼 많이 등장하는 것이 파트너 (Partner)라는 단어다. 파트너는 함께 사는 연인이라고 보면 된다. 결혼과 이혼이 쉬운 나라에서 사람들은 동거를 선호한다. 비싼 주거비용의 대가를 모르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연인과 사는 것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호주의 주거 문화 덕분에 한국 결혼 중개 업체는 여성 가입자에게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 여부를 묻는데, 요즘 유행하는 말로 웃프다,라고 할만하다. 유학을 목적으로 떠나는 캐나다와 미국과 다르게 호주로 오는 많은 사람들은 돈을 목적으로 온다. 그러니 지출에 예민할 수밖에 없고 연인들의 동거를 더 부추기는 것도 있다. 아직 결혼할 나이로 보이지 않는 코리와 브리트니도 비싼 주거 비용 때문에 함께 살고 있을 것이다. 카페에 함께 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 둘 중에 한 사람이 주문을 하고 둘 중의 한 사람이 픽업해 가는 걸 보면 짐작이 간다.


코리와 브리트니는 대부분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젊은 세대가 집에서 아침 식사를 만들어 먹고 출근한다는 것은 한국이나 호주나 힘든 일이다. 이들이 점심 도시락까지 들고 출근하는 모습은 더더욱 보기 힘들다.


브리트니는 아침식사로 발효빵인 사워도우 (Sourdough) 토스트에 포치드 에그 (Pouched Egg) 라 부르는 수란 2개를 올려 먹는다. 코리는 빵은 빼고 구운 버섯, 아보카도와 스크램블 에그를 먹는다. 그는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 것을 보니 열심히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것이다. 근육질 몸에 문신을 두르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여느 호주 젊은이처럼 말이다.



수란, 베이컨, 사워도우 토스트를 기본으로 하는 호주식 아침식사



한국에 비해 호주는 모든 것이 비싸고 느리다. 사람의 수고가 들어가는 것에 대가가 더 따르고 절차가 엄격해 시간이 더 걸린다. 이런 호주다움은 무슨 일을 할 때, 당신을 위협하는 창이 아니라 보호해주는 방패에 더 가깝다. 호주에서 인내와 끈기로 무장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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