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엘 Feb 05. 2020

#11 호주에서 바리스타

쿠이니와 카푸치노

호주를 소고기나 철광석을 수출해 돈을 버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호주는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세계 10위 안에 드는 나라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나 멜버른의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도 유명하지만, 호주 관광을 대표적인 장소는 세상의 중심으로 불리는 거대한 바위산, 울루루 (Uluru) 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산호초 지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Great Barrier Reef)다. 골드코스트는 웅장하고 거대한 무언가는 없지만, 아름다운 날씨와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이 있어 호주 최고의 휴양지가 됐다.


최근 호주 퀸즈랜드 주정부는 자연 유산 보호를 위해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관광을 중단하고 막대한 예산을 사용해 훼손된 자연을 보호하겠다고 발표했다. 비슷한 시기에 울루루 역시 등반을 금지해 버렸다. 살벌하고 분통 터지는 일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한국의 뉴스와 다르게 호주에서는 스펙터클하거나 서스펜스는 없지만 훈훈하고 아름다운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한국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나라를 탈출하는 게 낫다는 분통함이 만들어낸 것이리라. 한국이 살만하더라도 더 살만한 곳을 향한 동경 때문일 수도 있다. 환경이나 복지가 좋은 호주 같은 나라 말이다. 한국은 잘 사는 국가를 먼저 만들고 보자는 선동 덕분에 잘 사는 나라가 됐지만 고된 노동 환경, 비혼, 저출산 등의 사회 문제를 떠안게 됐다. 반면 호주는 국민이 잘 살아야 나라가 잘 살 수 있다는 사회주의 복지 정책과 함께 성장해 왔다.


호주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 쉽게 결혼할 수 있고, 무수히 많은 복지혜택이 있어 가정마다 아이 3명 이상은 기본으로 낳다 보니 이민자 수를 제한해야 할 판이다. 늘어나는 인구만큼 복지 지출이 많아져 호주 정부는 갈수록 강도 높은 이민 정책을 내놓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100만 원도 안 되는 영주권 신청비용이 아까워 신청을 미뤘던 사람들이 지금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다. 이제는 엄청난 기술 또는 재력이 있지 않은 이상 호주 영주권을 받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호주에 사는 많은 이민자 중에 중국 이민자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많은 나라에 도시마다 차이나타운을 만들어 온 화교라 불리는 중국 이민자는 호주도 거뜬히 정복했다. 호주 전역의 부동산 가격을 일제히 상승시킨 화교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원화로 8억 원 정도면 쉽게 투자 이민을 올 수 있었지만, 수많은 중국 부자들로 인해 투자이민의 길이 사실상 막혔다. 향간의 이야기로 20억 원 넘는 돈을 들고 투자 이민을 기다리는 중국인이 2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중국 이민자들은 골드코스트에도 차이나 타운을 만들었다.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수많은 중국 이민자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 중에 쿠이니 가족이 있다.


쿠이니는 남편 데이빗, 어린 딸과 골드코스트에서 살면서 10명이 넘는 직원과 함께 중국인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한 때 브리즈번과 골드코스트에 두 개의 사무실을 운영할 정도로 사업은 성황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임대료 지출을 줄이기 위해 임대료가 더 저렴한 골드코스트 사무실 하나만 운영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며 어마어마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지만 급하게 먹은 밥에 체한다고 했던가. 지방정부와 기업, 개인까지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화약고 같다고 경제 전문가는 진단하고 있다. 호주 부동산 잡지만 봐도 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30%도 안됐던 경매 부동산이 70%를 넘었다. 많은 부동산을 사들이며 가격을 올렸던 중국인들이 처분하는 분위기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중국인 자본으로 시작했던 부동산 개발 사업은 중단되고 있으며 부동산 가격에 낀 거품도 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니 호주를 관광하는 중국인이 줄어드는 것도 당연하다.


골드코스트에서 쿠이니는 불굴의 힘을 가진 홍콩 출신 사업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어떤 위기가 닥쳐도 해결할 힘이 있어 보인다. 카페에서 남편과 커피를 마시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로 쉬지 않고 남편을 다그치는 모습이나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스키니 밀크와 아몬드 밀크 카푸치노를 번갈아 가며 마시는 것만 봐도 그녀가 평범한 중국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쿠이니는 누구와 카페에 오더라도 늘 자신이 모든 결정을 내리고 모든 계산을 한다. 그녀는 스키니 또는 아몬드 카푸치노를 마시고 남편이 마실 커피까지 자신이 정해준다. 카페에 처음 왔을 때는 함께 카푸치노를 마셨지만 다이어트를 선언하고 자신은 밀크를 바꾸더니 남편 커피는 스몰 사이즈로 줄였다. 그리고 간간히 음식을 곁들인다. 버거나 구운 버섯, 베이컨과 계란을 토스트에 올린 전형적인 호주 스타일 아침 식사를 먹다가 다이어트를 선언한 뒤로 하프 사이즈 스매쉬드 아보카도를 먹는다. 그리고 간혹 남편에게 베이컨과 프라이드 에그를 주문해 준다. 그녀의 남편은 조용히 쿠이니가 주문한 음식과 커피를 먹는다. 그녀가 주도하는 일방적인 대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쿠이니가 남편이나 직원을 대하는 모습은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데이트하는 커플이 택시를 잡을 때, 여자가 손을 들어 택시를 세우는 것은 보통 일이다. 남편들은 일이 끝나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광경을 호주에 사는 중국인에게서 볼 수 있다.


쿠이니 부부는 하나뿐인 딸을 끔찍이 아낀다. 이 동네에 그들이 갈만한 카페가 많음에도 내 카페로 오는 이유는 딸이 좋아하는 베이컨&에그 롤 (Bacon & Egg Roll) 때문이다. 아침마다 학교 가는 길에 픽업해 가는데, 음식을 받아 든 아이의 표정은 선물을 받는 것처럼 마냥 밝다.


베이컨&에그 롤에 쓰이는 빵은 한국에서 햄버거 빵이라고 부르는데, 영어로 번 (BUN)이라고 한다. 호주에서 롤 (ROLL)이라고 하는데 구운 베이컨과 프라이 에그를 감싸면 베이컨&에그 롤이 된다. 슬라이스 체다 치즈 (Cheddar Cheese) 한 장을 넣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바비큐 소스를 넣지만 토마토-렐리쉬 (Tomato Relish) 소스가 더 어울린다. 바비큐 소스는 스모키 (Smoky)하면서 짠맛이 강하지만 토마토-렐리쉬 소스는 케쳡과 바비큐 소스 중간쯤으로 신맛, 매운맛, 짠맛의 조화가 훌륭해 베이컨, 에그, 치즈와 만나 환상적인 맛을 낸다. 호주 사람뿐 아니라 중국 사람, 그린란드에서 온 사람이라도 반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 아침에 국밥을 먹듯이 호주 사람이 아침에 주로 먹는 이 메뉴는 카페의 필수 메뉴다.



베이컨&에그 치즈 롤



호주를 아이들의 천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이들이 자라기 좋은 곳이기도 하지만 부모가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호주는 아이 먼저라는 의지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슈퍼마켓은 언제나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사은품으로 내세우고 쇼핑 온 아이에게 공짜 과일을 주기도 한다. 기업들이 앞장서는 이런 분위기는 국가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호주 정부의 휴먼서비스 웹페이지에 들어가면 수많은 복지 혜택을 확인할 수 있는데, 호주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사회복지 종류만 100가지가 넘는다.


호주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150만 원 정도 축하금을 받는다. 임신 중에 남편을 포함해 18주까지 출산 휴가를 얻을 수 있고 매주 국가는 70만 원 정도 지원금을 준다. 일을 하지 않는 싱글-페어런츠는 아이가 8세가 될 때까지, 부부의 경우 아이가 6세가 될 때까지 아이 한 명당 매주 25만 원 정도, 일을 하더라도 매주 10만 원 정도 지원을 받는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면 매주 20만 원 정도 보육비를 지원받는다. 여기에 렌트한 집에 살면 렌트 보조금까지 주는데 2주에 15만 원 정도다.


호주는 고등학교 10학년까지 의무교육으로 모든 학비를 국가가 부담한다. 대학에 가더라도 국가는 작은 이자로 학비 전액을 융자해준다. 그 융자금은 졸업 후 본인의 소득의 규모를 보고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갚을 수 있도록 한다. 지원은 절대적이지만 상환은 상대적인 셈이다. 호주는 아이를 낳아 키울 때 경제적인 부담이 크지 않다. 오히려 경제적 지원이 있어 아이를 3명 이상 갖는 가정이 많다. 한국은 불안감 때문에 아이 낳기가 겁난다고 하지만 호주는 부부 사이에 사랑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아이를 낳아도 된다.


호주 학교는 총 네 번의 방학이 있는데, 스쿨 홀리데이 (School Holiday)라고 부른다. 이 기간에는 오피스가 밀집한 곳의 카페도 한산해진다. 아이들이 집에서 지내다 보니 일하는 부모마저 덩달아 휴무를 내기 때문이다. 쿠이니 부부마저 방학이 되면 카페 출입이 뜸해진다. 그러다 나들이 차림으로 나타나서는 역시나 베이컨&에그 롤을 픽업해 간다. 이것이 언제나 졸린 눈으로 밖을 나서는 딸에게 거는 조건 중 하나일 것이다. 쿠이니 부부가 자식을 더 낳는다면 카페 매출도 그만큼 늘어날 것만 같다.


호주는 뭐든지 느려서 답답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돈을 써서라도 해결할 방법이 존재하지만 호주는 반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다. 아이는 어른이 되기 전까지 좋은 환경과 지원이 필요하고 약자는 더 보호받아야 된다는 의식이 존재하고 실현되는 곳이 호주다. 다수가 공감하는 것이 상식이고 모든 것은 그 상식 위에서 움직인다. 호주의 속도는 한 사람에게 답답할 정도로 느릴 수 있지만, 두 사람 이상이 더불어 살아가는데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속도라고 생각한다.


이전 10화 #10 호주에서 바리스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