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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an 20. 2021

기억이 났어 #001

엄마도 안경이 처음이라


서른 여덟 아주머니의 악세사리는 귀걸이와 안경이다. 목걸이도, 팔찌도, 반지도 잘 안한다. 결혼반지 안끼고 다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결혼 반지가 안 들어간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안경을 악세사리처럼 낀다. 안경이라도 껴야 '책 한 줄 읽어본 사람이구나' 하는 이미지가 생긴다.


열 두살에 안경을 썼다. 짝눈의 조짐이 여덟살때 보이긴 했다. 국민학교 5학년 시력검사에서 오른쪽 눈 0.2, 왼쪽 눈 1.0이 나왔다. 안과 검사 후 안경을 쓰라는 가정통신문을 주었다. 신이 났다. 지금도 식당의 사이드메뉴나 신메뉴를 먹어보는것을 좋아하는 나다. 인생 십이년차에 처음으로 안경을 쓰다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나는 가정통신문을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언제까지 해야된대?"

"안보이니까 빨리 하면 좋겠..."

"내일 가자."


생각보다 빠른 엄마의 내부 결재에 나는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상록 마을 3단지 우성 상가로 갔다. 안경원이름은 기억이 안난다. 늘 반짝이고, 똑똑해보이는 안경이 갖고 싶었는데, 역시 하느님은 나의 소원을 들어주시는구나. 라고 당시 카톨릭 신자도 아니었던 꼬꼬마 나무는 어디계신지 알지도 못하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안경점에 들어갔다.


엄마는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어린이용 안경을 보여달라고 했고, 한 금테안경을 보더니 이걸로 하자고 했다. 짝눈이라 압축을 몇단계는 해야했다. 당시 압축 기술로는 오른쪽 렌즈가 눈에 띄게 두꺼웠지만 나는 신났다. 1995년 당시 4만 2천원에 어린이 안경을 맞췄다(테만 4만 2천원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간단한 설명을 들었고, 안경 집과 안경 닦이를 조심히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에 온 지 한 시간 만에 후회했다. 첫째, 콧대가 납작해지는 것 같은 느낌. 둘째, 눈 주변이 계속 간질간질 한 것 같았다. 셋째, 눈 주변에 있는 테두리가 계속 느껴졌다. 얼굴 전체가 눌리는 기분이 들었고, 눈썹이 자꾸 안경테를 인식하는것 같이 들썩거렸다.


"어우, 나무 안경썼네? 똑똑해보인다야."


나는 가족에게 "똑똑해 보인다"는 말을 다 듣고서야 안경을 벗어 던지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안경이 뿌얘졌다. 안경닦이를 찾아 닦으니 다시 광명이 내 눈에 담겼다. 그리고 그날 밤에도 똑똑해보인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고 기분이 좋았지만 혹사당한 내 귀와 코와 눈은 일찍 잠들었다.


며칠 뒤, 일요일 아침. 디즈니만화동산을 시청하기 위해 안경을 찾던 나는 내가 두었던 곳에 안경이 없음을 알아챘다. 그날 밤에 늦게까지 안자고 집안을 돌아다니던 막내놈이 어쨌는지 저쨌는지 안경이 뭔가 얼룩덜룩했다. 안경닦이로 닦아도 잘 지워지지를 않는거다. 나는 긴급히 엄마를 불렀다. 엄마엄마! 이거 안경이 이상해. 안 닦여.


엄마는 엄마가 닦아줄게, 하고는 싱크대 옆에 안경을 두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다 끝낼 무렵 싱크대 옆에 있던 안경을 들고 세제를 묻힌 뒤 수세미로 묻혀 벅벅 문질렀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엄마는 물로 착착 안경을 헹구고는 한번 써보라고 건네주었다. 나는 며칠 전 느꼈던 광명의 순간을 떠올리며 안경을 장착했다.


????#$@#!!????


고양이가 발톱으로 긁어놓은 것 같은 안경.. 엄마도 슬쩍 바라보더니 아이고, 하면서 안경을 다시 가지고 갔다.

"이거 뭐 강화코팅 어쩌고 하더니.. 다 긁혔나보네.."

엄마도 나도 서로 얼굴을 보면서 피슉 하고 웃었다. 엄마의 쉽게 볼 수 없는 당황한 표정. 아우 엄마 안경을 이렇게 하면 앞이 안 보이잖아. 라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 엄마가 말했다.

"엄마도 처음이라 몰랐다야."

맞아. 우리 집 여섯 식구 중 안경쓰는 돌연변이가 나 하나라, 안경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 말이야.


엄마는 거침 없이 나를 데리고 다시 그 안경점으로 갔다. 렌즈만 바꿔줄 수 있느냐 물었다. 압축을 몇 번 해야되고 그때는 할인을 해준거고 어쩌고 저쩌고 하며 안경사는 난색을 표했다. 엄마는 "아 그러니까 안경알만 해줘요."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주인아저씨는 2만원에 렌즈를 다시 맞춰주었다. 다시 금테 반짝, 렌즈 반짝한 안경을 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에는 꼭 책상 위에 안경을 벗어놓고 잤다.


그로부터 십 년이 훌쩍 지났다. 엄마도 안경을 쓰게 되었다. 안경점에 가서 보랏 빛이 도는 예쁜 안경을 하고 왔던 날 "엄마, 그거 수세미로 닦으면 안 돼!" 하고 막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도 안경 닦이를 어느가방이든 꼭꼭 넣어놓고 다니곤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가 신규교사 시절에 엄마에게 사드린 가방을 내가 간직하고 싶어서 가지고 왔다. 


https://brunch.co.kr/@rainyhojin/209


이사준비하며 그 가방을 다시 정리하는데, 그 속에서 안경 닦이와, 메모지와, 볼펜이 나왔다. 늘 내가 가지고 다니는 조합과 똑같다. 나는 그 가방속에 있는 안경 닦이로 안경을 닦았다. 지금이야 눈 감고도 안경 견적 다 낼 수 있는 나이가 됐지만 맞아, 그 땐 우리 모두 안경이 처음이었어. 안경 처음 쓴 딸 예쁜 안경 해줘서, 고마워 엄마.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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