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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Apr 12. 2022

다문화 도시에 살면서 매일 얻는 것 4가지

읽을거리 필요하신 분들은 카카오 뷰 더 에세이스트 클럽,

에세이가 쓰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로 와주시면 됩니다.

자세한 설명은 글 아래에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나의 멋진 멘토가 저녁식사에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나를 제외하고 2명의 이란계 여성들, 1명의 베트남계 여성, 1명의 캐나다에서 태어난 홍콩계 여성,

1명의 캐네디언 백인 남성, 2명의 중국계 남성, 홍콩계 여성인 멘토와 한국계 여성인 나까지 -- 총 9명이 모인 자리였다.


멘토와 그녀의 남편이 손수 준비해준 저녁 식사는 현재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다친 우크라이나를 마음에 끌어안고 기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메뉴로 준비해주었다.


다양한 인종의 게스트들과 우크라이나 전통 음식.

우리가 모인 공간은 작은 지구였다.






이렇게 많은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영어란 소통을 돕는 도구에 불과하다. 완벽한 영어 구사란 필요치도 않을뿐더러 정의 내리기가 불가능하다. 마음을 전하고 일상을 나눌 정도면 충분하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넓고 깊은 답을 얻을 수 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 한 명을 만났을 뿐인데 내가 전혀 몰랐던 문화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고, 삶의 방향도 다르지만, 나와 다른 문화를 배우며 느끼는 건 결국 우린 참 많이 닮은 사람들이란 점이다.


퇴근이 늦어져 우리보다 나중에 도착한 두 명의 이란 여성분들은 생각지도 못한 역사를 안고 테이블에 앉았다. 한분은 난민 출신으로 세 자매의 큰딸인데 아시아와 유럽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돕느라 일주일에 7일을 일한다고 했다. 다른 한분은 미술을 전공한 아티스트로, 1년 전에 꿈을 위해 이란을 떠나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던 베트남 여성분은 코로나 이후 처음 다시 만난 남자 친구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돌아왔노라고, 아시아에 살고 있는 그와는 내년 초에 다시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이 그들의 현실이자 일상이었다.






몇 주 전에 가족 안에 의견 충돌이 생겨 큰소리가 나고 동생은 마음을 다쳤다. 나는 출가외인 큰딸이지만 역시나 가족일에 마음이 많이 쓰였다. 이틀 정도 잠을 뒤척였고, 중요한 아침 미팅도 며칠 뒤로 미뤘다. 집중이 불가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마음 불편한 일이 생겨도 이런 일은 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고, 아프고 쓰라린 마음을 티를 내고 만다. 사람마다 다른 상황, 다른 문제, 다른 아픔을 가지고 살기에 누가 더 편하다, 누가 더 곤욕스럽다 비교할 문제가 아닌 건 안다. 하지만, 세 자매의 맏딸로서 부모님과 동생들을 돕기 위해 자원하여 7일에 7일을 근무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왜 내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인가.


어릴 적에 집을 떠나 아시아 국가로 난민 생활을 떠났다 했다. 그곳에서 신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난민캠프에서 수년을 지냈다고. 그러다가 캐나다에서 이민 신청이 받아들여져 이곳에 온 지 몇 해가 지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일상은 온통 일로 가득 차 있었다. 난민이라는 불안한 신분에서 노동자라는 또 다른 불안한 상황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녀의 삶에 기쁜 일, 즐거운 일, 소망 가득한 일이 없겠냐만은 일상의 무게가 오죽 무거울까 싶어 무슨 말로 환영을 하고 응원을 전할지 마땅한 표현을 잃어버렸다.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의 일상은 작은 소망 하나도 갖기가 어렵다. 이상하게 그렇다. 감사할 것 투성이인데 감사하지 않고 하루 이틀 지내다 보면 불편함, 불안함, 불길함이 스며든다. 그냥 겉만 스치듯 잠깐 왔다 가는 게 아니고, 피부 속으로, 심장 속으로 깊이 그리고 거침없이 스며든다. 불편하고 불안하고 불길한 삶을 사는데 어찌 소망이란 걸 욕심낼 수 있을까. 꿈을 품을 자리조차 어두움에 빼앗기고 만다.


다른 경험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 특히 세 자매의 맏딸로서 가족을 돕고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숙연해졌다. 내 안에서 감사할 제목들이 마구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용기와 도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나머지 사람들의 고백에 그저 온화하게 웃어주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간이 찾아온다. 우리 모두에게 나름의 고난과 고민이 있다. 하지만 잠시 나만의 버블 속에서 빠져나와 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우리네 '인생'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감사 거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 거리는 존재한다. 그걸 보느냐, 안 보느냐, 혹은 못 보느냐는 나에게 달려 있다.




불편하고 불안하고 불길한 삶을 사는데 어찌 소망이란 걸 욕심낼 수 있을까.
꿈을 품을 자리조차 어두움에 빼앗기고 만다.






나는 타고난 뻣뻣이지만 초등학교 때 잠시 한국무용을 배웠다. 무용 선생님은 나의 (무용수 비스름한) 체형 때문에 발레를 권했다. 재미있었지만 두 다리가 일자로 찢어지지 않아 고생을 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중학교 때는 친한 친구의 고모가 지역에서 알아주는 스포츠댄스 대표여서 그 친구와 같이 스포츠댄스를 배웠다. 친구랑 노는 것도 재밌었지만 신나는 노래와 리듬감 있는 움직임이 신기했다. 재미를 느끼는 분야와 재능이 있는 분야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30대 중반에 다다른 지금, 몸은 한정 없이 뻣뻣해져 간다. 20대 때 스트레칭에 빠져 한창 단련을 하던 당시에는 어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다시 허리며 허벅지며 팔다리가 뻣뻣해졌다. 타고난 체질이 뻣뻣이인 나는 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다시 곧장 뻣뻣해진다. 매일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타고나기를 유연한 마음이란 게 존재하기는 할까? 유연한 몸도 나이가 들면서 뻣뻣해지는데, 마음도 그렇다. 유연성을 계발하지 않으면 나무 막대기처럼 딱딱하게 굳어간다.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결정으로 캐나다로 이민을 와 청소년기를 보내고, 내 선택에 의한 두 번째 이민을 떠나왔다. 수많은 문화, 언어, 음식, 전통이 공생하는 이곳에서 마음의 유연성이란 몸의 유연성만큼 개인과 공동체에 중요한 부분이다. 유연하지 않으면 금세 부러지고 만다. 마음이 다치면 몸도 마음을 따라 아프게 된다. 그리고 아픈 마음은 관계 속에서 가장 먼저 티가 난다.


10여 명이 모인 작은 저녁식사 자리. 함께 기도하고, 음식을 나누고, 지나온 인생에 대해 털어놓는 시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마음이 말랑해짐을 느꼈다. 누구나에게 닥칠 수 있는 시련, 아무나 이겨내지 못하는 갈등.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한 번의 인생 속에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유연함.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고 할 수 있는 유연함. 나 또한 내 삶에 대해서 남들과 나눌 수 있는 유연함.


유연함이 자라는 자리였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페인팅 시간을 가졌다. 멘토는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아크릴 물감과 캔버스를 준비해주었다.


먼저 종이에 이제는 작별하고 싶은 한 단어를 적고, 우리 모두는 돌아가며 그 종이를 불에 태웠다. 죽음이 새로운 생명을 상징하는 부활절에 알맞은 액티비티였다.


불에 태워진 종이 가루를 물감과 섞어 작은 캔버스에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나는 좋아하는 흰색, 노란색, 초록색을 사용해서 푸른 들판을 표현했다. 새로운 시작, 가벼운 마음, 다시 주어진 삶이라는 기회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종이 가루는 물감이 되어 캔버스 위에 칠해졌다. 나는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적어 불에 태웠는데, 좋은 의미에서의 책임감은 나를 나아가게 하지만, 나쁜 의미에서의 책임감은 나를 무겁게 하기 때문이었다.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생각하지 못하고, 큰 돌덩이처럼 마음에 지고 있었다. 불에 타서 물감이 되어버린 책임감은 이제 더 이상 내게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새들이 지저귀고, 냇가에 깨끗한 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시편 23편의 푸른 초장(Green Pasture)으로 다시 그려냈기 때문이다.



아이비의 집에서 진행된 힐링 페인팅 나잇 -- 나는 푸른 초장을 그렸다




다문화 도시에 살면서 느끼는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이 것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알아가게 되는 것. 따로 시간을 내어 노력하는 자아실현이 아니고, 일상적인 만남과 사건 속에서 지속적으로 나에 대해 깨달아가는 것. 나는 열린 마음으로 깨달음의 기회에 시간과 자리를 내어주기만 하면 된다. 누군가 손을 건네면 잡아주고, 누군가 이야기를 건네면 들어주면서. 때로는 함께 걷고, 때로는 따로 걸으면서.


바로 옆 나라 미국이 Melting Pot(인종의 용광로 사회)이라면 캐나다는 Salad Bowl 또는 모자이크 사회에 가깝다. 기존의 캐나다 문화에 통합하기보다는 이민자 스스로가 자신의 문화배경을 지키며 함께 공존하게 하는 나라라는 의미에서다. 이렇기에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이곳에서 매우 중요히 여겨진다.


나 한 사람도 존중하지 못하면서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건 무리수다. 다문화 도시 버나비는 먼저 나 자신에게 손을 내밀라고 권한다. 자신을 깊이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을 깊이 알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서.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나 자신을 다독인다. 언젠가 세계 곳곳의 도시들이 다문화 도시가 될 터인데, 익숙하지 않은 다름 때문에 다치게 될 마음들이 많을 텐데, 나 먼저 조금씩 준비해보자고.


사람과 사람 간의 다양성 때문에 놀라지 않기.

어떠한 일상이라도 감사함을 찾아내기.

타고난 뻣뻣함을 핑계 대지 말고 마음의 유연성을 기르기.

몇 살이 되든, 어디에서 살든, 무슨 일을 하든, 절대 나 자신 탐구에 만큼은 마음껏 시간을 내어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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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s:

Main image by Unsplash

Caption images by Canva, Yoo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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