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a Kim Oct 25. 2022

시간만 나면 산과 물로 떠나는 사람들

산이 주는 숨, 물이 주는 쉼에 대하여

밴쿠버가 캐나다 서부를 대표하는 도시가 된 배경에는 도심에서 30분만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산과 바다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모래를 밟으며 물 구경을 할 수 있는 해변들이 도시 이곳저곳에 숨어 있고, 피톤치트를 들이마시며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숲이 셀 수도 없이 많다. 잠깐 짬을 내어 걷거나 벤치에 앉아 멍을 때릴 수 있는 공원, 해지는 노을이며 야경까지 챙길 수 있는 언덕까지. 밴쿠버는 자연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자연의 도시이다.


밴쿠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노스 밴쿠버라는 도시에 닿는다. 그곳에 있는 회사에 다닐 적에 몇몇의 직장 동료들이 새벽부터 산에 올라 스노우보딩을 하고 9시 출근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 도착해 눈먼지가 묻은 스키복을 벗는 모습을 종종 봤었다. 얼마나 많은 직장인들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던지 사무실 내에는 직원 자전거실이 따로 준비되어 있을 정도였다. 자전거에도 그토록 다양한 바퀴의 크기, 두께, 종류가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주말마다 암벽 등반을 하러 휘슬러 아래에 위치한 스콰미쉬 Squamish라는 동네에 올라가는 사람들. 몇 시간이 넘게 걸리는 트랙킹을 하러 주중에 일을 빼는 사람들. 연회비를 내야 하는 보트 조합에 가입해서까지 매년 몇 차례의 보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밴쿠버 사람들의 모습이다.


한국에서도 언제부턴가 캠핑이 큰 트렌드가 되어 자리매김을 했다. 지방 전역에 너나 할 것 없이 캠핑장이 생기더니, 내가 자주 가던 전라도 산골짜기 시골 보성까지 캠핑장이 들어선다는 전단지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는 해외여행의 길을 막고 서서, 국내여행이라는 또 다른 유행을 일으켰다. 캠핑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는데 일조를 한걸 수도 있고.


우리는 왜 이렇게 산과 물을 찾아 떠날까.







아웃풋과 인풋의 밸런스


워라밸. 워크 work와 라이프 life의 밸런스 balance의 줄임말로, 일과 (그 일을 제외한) 일상의 조화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특정 상황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일을 한다. 돈을 좀 더 많이 벌거나 좀 덜  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걸 하고 산다. 일주일에 40시간이라는 시간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누면 하루 평균 8시간 일을 하고, 이는 하루 24시간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외에도 많은 시간을 일에 대한 생각을 하거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쓴다.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 동료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 커리어에 대한 계획을 하는 시간 등, 알고 보면 3분의 1이 아니라 3분의 2를 일에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일‘로 가득 찬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번아웃을 겪는다. 로봇이 아닌 인간이라면 당연한 과정이다. 우리는 담는 만큼 걷어내야 하고, 쓴 만큼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서 공자도 사람을 ‘그릇‘으로 표현한 게 아니겠는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일을 일상의 구석구석에 채워 넣고 일로 가득 찬 삶을 산다. 다른 이들은 일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직장에서 끊임없이 쏟아내는 삶을 산다. 누구는 일로 자신을 채우고, 누구는 일로 자신을 비워낸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즉 일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풋을 한만큼 아웃풋을 하거나, 아웃풋을 한만큼 인풋을 해야만 한다.


일이 아닌 다른 것 중에서는 자연만 한 게 없다는 게 밴쿠버에 적을 두고 살아가는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산이 주는 선물, 숨


틈만 나면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숲 속에서 채우거나 비우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나무 사이로 걸어 들어가 마음에 가득 찬 답답함을 떨쳐 버리거나, 비어버린 마음에 시원하고 새로운 공기를 충전한다. 몇 시간의 트랙킹을 마치고 나서 하늘과 산과 물이 한눈에 내다 보이는 곳에 텐트를 치고 며칠을 보내거나, 도심에서 4여 시간 차를 몰고 캐나다 서부의 사막이라 불리는 동네의 한 리조트에 도착해 2박 3일의 오프 그리드(off-grid) 스타일의 휴가를 보내기도 한다. 자연은 새하얀 스케치북처럼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든지 간에 무조건 괜찮다고 하며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다. 특히 울창한 숲은 마치 공기청정기처럼 우리가 어떤 숨을 내뿜던지 간에 모든 것을 새롭게 정화시켜 준다. 


호흡과 정신건강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당황하는 상황에서는 호흡이 가빠지고 급격히 짧아진다. 우리가 불안을 느낄 때마다 길고 깊게 숨 쉴 수 있다면 격앙된 감정이 금세 차분해질 수 있다. 호흡을 하기에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위보다는 푸른 나무가 가득한 숲 한가운데가 낫다. 사람의 소리가 최대한 제거된, 컴퓨터 키보드의 탁탁거리는 소리가 없는, 내 신경을 긁는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 우리는 좀 더 길고, 좀 더 깊게 숨을 쉬기 위해 자연을 찾는다.


숨은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끊임없이 샘솟지 않고 우리는 쉽게 고갈된다. 산은 나에게 ‘숨’을 쉬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 숨이 부족하거든 언제든 찾아와서 자신의 숨을 나눠 가지라고 말한다.







물이 주는 선물, 쉼


수영을 하러 물 안으로 들어가면 내 몸의 무게가 색다르게 느껴진다. 물을 헤집고 앞으로 나아갈 때 두 팔과 두 다리는 매우 무겁지만, 물에 몸을 맡기고 떠오르면 순식간에 가벼워진다. 물속에서는 외부의 소리가 무음처리가 된다. 시야도 눈 바로 앞으로 매우 좁아진다.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다 지금 물속을 헤엄하고 있는 내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내 두 팔과 두 다리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내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한지 혹은 내 마음이 얼마나 깔끔한지 곧바로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건 남이 아닌 나라는 걸 마주한다. 물 안에서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스트레스가 아닌 진정한 쉼을 얻는다.


물 밖은 어떠한가. 포트 무디 Port Moody라는 도시에는 내가 참 좋아하는 호수가 있다. 사람이 많지 않은 한가한 주중 오전에는 주차도 쉽고 휴식하기에도 좋다. 캠핑 의자를 펴고 자리를 잡는다. 호수 물 표면으로 뒷 산의 늠름함이 반사되어 비춘다. 호수는 하늘의 파란색이 더해져 더욱 푸르게 빛난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새소리나 우연히 마주친 어린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전혀 불편하지 않은 정도다. 호수는 그 깊이만큼 자비롭게 누구든지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물은 여러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몸을 빈틈없이 완전하게 감싸주기도 하고, 누가 어떤 불만거리를 쏟아내도 끝없이 받아주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염된 마음을 씻어주기도 하고, 목이 턱 하고 막혀오는 갈증을 해소해 주기까지 한다. 여유 시간이 주어지면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물 가까이로 향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된다. 어루만짐이 필요하고, 정해진 기한 없이 계속해서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마음. 깨끗한 물에 한 번쯤 푹 잠겨서 모든 더러운 것들을 떨쳐내고, 청량한 물 한 모금으로 답답했던 목구멍을 쓸어내고 싶은 마음들. 물은 그런 우리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언제든 어떤 방법으로든 각자에게 필요한 쉼을 준다. 







여가시간은 영역을 넓히는 일


집값이 치솟은 만큼 렌트비도 떨어질 줄을 모른다. 캐나다 내에서도 생활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밴쿠버다. 모든 생활비가 10% 정도 올랐다고 하는데 실제 체감하기로는 25% 정도 점프한 듯하다. 물가가 올랐다는 건 한 사람에게 주어진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밴쿠버라는 도시가 주는 혜택 때문에 비싼 돈을 들이고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의 크기를 줄여서라도 이 도시 안에 머물고 싶어 한다. 


한 사람에게 충분한 공간의 크기란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우리는 늘 공간에 목말라 있는 걸까. 그도 그럴 것이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 소유 물건은 물론 생각과 감정들까지 편안하게 머물 공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의 값이 올라버린 요즘 같은 시기에 우리는 집이 아닌 집 밖에서 나만의 고유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자연으로 향하는 이들은 집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자신의 방, 아파트 혹은 동네를 넘어 밴쿠버가 선사하는 자연세계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하면서 보내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나의 영역이 얼마만큼 넓게 확장되어 가는지 확인하려면 내가 쉬는 시간에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살펴보면 된다. 


채워낸 만큼 비워내고, 비워낸 만큼 채워내지 않으면 우리는 곧 지치게 될 것이다. 인풋과 아웃풋의 그라운드를 회사 밖으로 넓혀보자. 에너지를 얻고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공간이 필요하니까. 







워라밸이 유행처럼 많은 회사의 컬처 culture가 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락 하던 시기가 지났다. 허나 아직도 많은 이들이 번아웃을 겪으며 퇴사를 꿈꾼다. 이민을 떠나온 이곳에서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 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창조적인 역량을 부여받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바람이다.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변화는 표면적인 변화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가 아닐까. 그저 회사를 박차고 나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하루가 아니라, 언제든 나다울 수 있는 일을 하며 만족할만한 균형 잡힌 생활. 이를 위해서는 인풋과 아웃풋이 적절히 어우러진 일상을 살고, 에너지의 원천인 숨을 잘 쉬며, 마음을 씻어내고 정화시킬 수 있는 쉼을 가져야 한다. 언제든 편하게 머물 수 있는 나만의 공간과 나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여가시간도 가지면 좋다. 자연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최적의 채널이다. 


이민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현재의 삶이 지긋지긋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이민을 결정하는 것이 틀린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보이는 부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어디에서든 나로서 만족하고, 나다울 수 있는 일상. 그래서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인풋과 아웃풋의 균형이 어긋나면 번아웃을 겪고, 다른 곳을 찾아 떠나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낙원으로의 이민을 원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나’를 찾기 위해 이민을 떠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Sources:

Images by Yoona Kim

이전 05화 미국이 멜팅팟이라면 캐나다는 모자이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