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포용성의 문제, 그리고 ‘나’라는 퍼즐
캐나다는 유럽 식민지로 시작해, 수많은 이민자들이 선택한 이주 국가로 진화했다.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처음 캐나다에 들어오기 시작한 유럽 사람들은 주로 오지탐험가나 무역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캐나다라는 땅을 탐구의 대상이나 사업의 수완으로 여겼다. 천천히 캐나다에서의 거주를 권장하는 정책들이 생겨났다. 캐나다의 땅과 자원을 차지하고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독일과 스위스 등지에서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는 이들이 서서히 늘어났고, 19세기에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대거 캐나다로 거처를 옮겼다. 캐나다의 역사에서 영국과 프랑스 다음으로 가장 큰 숫자의 이민자들은 아일랜드 사람들이었다. 또한, 도시의 노동 수요를 채우기 위해 많은 수의 중국인들이 캐나다로 들어와 캐나다 퍼시픽 철도를 완성했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캐나다는 점점 다문화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캐나다의 이민 정책은 변화를 맞이했다. 농업에 국한되어 있던 이민 제도들이 도시산업 쪽으로 확장되었다.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이민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법적인 차별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게 되었다. 1960년 말, 인종과 민족성 때문에 이민에 제약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캐나다 이주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내가 사는 버나비는 밴쿠버 광역 도시 안에서도 가장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는 동네이다. 버나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합해 총 120개의 언어를 구사한다. 도시의 전체 인구 중 반 이상이 캐나다 밖에서 태어나 이곳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이다. 버나비 안에 살면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생각하지 않는 건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전체를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버나비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메트로타운은 킹스웨이(Kingsway) 도로 위에 있다. 킹스웨이는 버나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도로인데, 중국어로 쓰인 간판들이 여기저기 즐비하다. 버나비의 동쪽에는 한남 슈퍼마켓과 한아름마트가 있는 코리아타운이 로히드(Lougheed Highway)에 자리하고 있고, 버나비 북쪽으로는 이태리 사람들이 오랜 시간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버나비 하이츠(Burnaby Heights) 동네가 있다. 그 외에도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과 동남아 사람들이 버나비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원봉사를 하는 근처 고등학교의 ELL(English Language Learner) 교실은 마치 작은 지구 같다. 아프가니스탄, 이란, 독일, 브라질, 일본, 홍콩, 한국 등지에서 온 인터내셔널 학생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다. 수업 중간중간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이 들린다. 쉬는 시간에는 더 크고 명확하게 다양한 언어들이 들려온다.
2021년 통계를 기준으로 대한민국 내 거주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230만 명을 넘어섰다. 다문화 가정이 많이 사는 도시인 안산에는 초등생 10명 중 1명이 다문화가정의 아이이고, 한국에 들어와 돈을 버는 외국인 노동자는 2019년 당시 53만 명에 달했다. 한국이 단일민족 국가였던 것은 옛날 옛적 과거의 일, 역사책 속에 남을법한 일이 되고 말았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늘어남에 따라 한국도 다문화주의라는 세계적 흐름에 참여하는 나라가 되어간다. 이민에 있어서 선배 격인 캐나다의 경우,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다문화주의를 채택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인종차별적인 이민정책으로 '백인' 이민자만을 선호하던 캐나다가 1962년 과거의 차별적 제도들을 개선하자, 현지인들 또한 이주민들의 노동력과 전문성이 자신들에게 해가 아닌 득이 된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인종차별적 대우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세상 어딜 가나 선입견과 차별대우는 존재한다.) 1971년, 캐나다 이민 역사상 처음으로 이주민 중의 대다수가 비유럽권 출신 이주민들이었고 이후 매해 다양한 문화권의 전 세계 사람들이 캐나다로 거주지를 옮기고 있다. 1978년에는 새로운 이민법을 통과시켜 난민 이주민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2016년, 7백54만 명의 캐나다인들이 캐나다 밖에서 태어난 이주민으로, 총인구의 21.9퍼센트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었다. 이는 G8 국가 중 첫째가는 숫자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미주지역에서 캐나다를 선택한 이주민들이 1, 2, 3등을 다투었다. 아시아 중에서도 필리핀, 인도, 그리고 중국계 이민자들이 가장 많다. 캐나다는 전 세계 시민들의 이동을 빼고는 그 역사를 논할 수 없다. 프랑스 개척자들을 시작으로 영국과 중앙 유럽 사람들, 캐리비안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와 중동의 이민자들까지. 물론, 인종차별과 같은 문제가 아직도 존재하지만, 캐나다라는 땅을 새로운 집으로 선택하는 이들에게 그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이민 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는 미국은 멜팅팟, 캐나다는 모자이크가 있다. 두 나라 모두 다민족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사회로, 미국은 이민자 집단이 이주 국가의 문화에 물들며 모두가 하나로 합쳐지는 멜팅팟 (동화) 이론을 추구하고, 캐나다는 문화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징을 바꾸지 않고 함께 공생하는 모자이크(다원) 이론을 추구한다.
있는 그대로의 다름을 배제하지 않고 인정하는 모자이크 사회. 이러한 사회에서 요즘 자주 들려오는 단어는 바로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and Inclusion)이다. 2021년 한 해 동안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한글 뉴스 기사는 총 638개로 검색된다 (출처: 구글). 이번 2022년, 아직 3달이 더 남은 현시점에서는 총 1,150개의 뉴스 기사가 나온다. 거의 2배에 가까운 양의 기사가 올 한 해동안 쏟아진 것이다.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관심은 서구 사회에서 한국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성과 남성. 비장애인과 장애인. 유색인종과 백인. 종교인과 비종교인. 한국인과 중국인 등등, 우리는 다양한 모습을 띄고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다. 홍콩계 캐네디언인 남편과 결혼을 하고 보니, 내가 매일 먹고 자란 쌀에도 전 세계 12만 개가 넘는 종류가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소비되는 쌀의 종은 17여 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특별하게 창조되고 유일하게 빚어진 우리 인간의 다양성은 어떠할까.
개인이 태어나 자라는 고향마다 일반적으로 용납되는 삶의 방식들이 있다. 전통이나 관습이라고도 한다. 한 곳에 익숙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다가 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언어부터 식습관, 인간관계와 직업의식까지, 모든 것이 달라진다. 다름은 때로 갈등과 오해를 일으킨다. 불편함과 괴로움도 동반한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논하면서, 타인을 향한 이해와 노력에 너무 초점을 맞춘 나머지, 나라는 사람 안의 다양성의 내러티브를 무시하거나 놓칠 때가 많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해서 진짜 감정과 상태를 숨기고 괜찮은 척 웃어 보인 적이 있지는 않은가. 분명 모르는 분야라서 질문할 거리가 넘쳐나는데 괜히 무식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억지로 궁금함을 누르고 이해한 척 넘어간 적이 있지는 않은가. 나는 타인이 갖는 나의 이미지가 신경이 쓰여서,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은 이곳의 분위기와 가끔 충돌을 일으킨다. 내적 갈등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면을 탐구하는 버릇이 생겼다. 불편함을 느끼면 곧 마음 한 구석에서 기쁨의 쾌재가 함께 터진다. 무언가 배울 게 또 생긴 거구나, 하면서. 여기에서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하겠구나, 싶어서.
일터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대화들이 시작되고, 내가 맡은 지역이자 살아가는 터전이기도 한 버나비의 다문화적 배경이 우리 기관에 얼마만큼 새롭고 중요한지에 대한 피드백이 쏟아진다. 다문화 청소년들과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을 만나다 보니 어떻게 하면 다른 문화와 언어권의 아이들을 위한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을 기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 일터 안에서 만큼은 '다문화 도시'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백인 위주의 직장에서 다양성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의 이야기, 나의 경험, 또 나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 고작 34년을 살아낸 한 인간이 많은 조각을 가진 퍼즐이라는 걸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나와 조금 다른 이들을 품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먼저 품을 줄 알아야 한다. 외부의 다양성 이전에 먼저 내 안에 다양한 내러티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나는 다른 감정을 느끼고 다른 반응을 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편안한지, 또 다른 상황에서는 왜 불안함과 위협을 느끼는지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현재는 각자의 과거와 매우 민감하게 얽혀있고 진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인을 위해 그에게 집중하고 신경을 쓰는 것만큼, 나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기진맥진하게 되고, 끝내 포기하게 될 테니까.
미국의 멜팅팟과 캐나다의 모자이크. 이민 정책의 방향이 어떠하든 무관하다. 수많은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결정하는 일들이 물론 우리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각 개인이 퍼즐이라는 것을 보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이 눈앞에 선명해진다. 다양성과 포용성, 즉 다문화 사회로 발을 내딛는 많은 나라와 도시에서 개인이 자기 자신의 콘텍스트를 이해하는 연습부터 충분히 한다면, 우리는 소리 없이 구석구석에서 서로의 퍼즐을 함께 맞추어 가는 조화로운 공동체를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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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hecanadianencyclopedia.ca/en/article/immigration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52697#home
https://www.kli.re.kr/downloadEngPblFile.do?atchmnflNo=21164
https://m.khan.co.kr/world/europe-russia/article/20110215214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