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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Mar 16. 2022

스트레스 최고봉, 광고 제작비

결국은 돈이다. 웃는 일도 싸우는 일도. 광고가 클라이언트에게 돈을 많이 벌어주면 웃는 거고, 반대로 돈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다만 광고와 상품 매출과의 상관관계는 객관적인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클라이언트 계좌에서 직접 빠져 나가는 돈에 대한 싸움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제작비. 광고를 만들고 난 뒤 제작비를 확정짓기까지 과정은 피를 말린다. 내 동기 중엔, 난 광고를 기획하러 왔지 돈을 갖고 싸우러 온 게 아니라며 이쪽은 반쯤 내려놓은 친구도 있었다. 그만큼 회사 입장과 클라이언트 입장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 일은 참으로 괴롭다.


내 광고인생의 위기도 제작비를 조율하는 순간에 찾아왔었다. 프로젝트에 따라 다르지만, 광고 제작 전 클라이언트가 대략적인 예산을 언질 해 줄 때가 있다. 그런데 광고를 만들면 대부분 그 예산을 초과하여 견적이 나오게 된다. 제작팀 CD(Creative Director), 감독, PD가 더 나은 그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불가피하다고 했지만, 솔직히 AE가 모든 똥(?)을 치워야 되기에 원망스러운 때도 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 있다. 분명히 예산을 얘기해 줬는데, 그 숫자를 넘긴 견적을 나에게 넘기다니. 광고일을 하면서 쌍욕 먹고 마음에 스크래치가 난 건 이 때 뿐이었다. 한번은 사전견적(광고 제작 전 예상견적)이었는 데도 금액이 너무 세다며 모진 소리 듣고 해외촬영도 무산될 뻔 했다. 돈이야 말로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클라이언트한테 아무리 소명을 해도 진전된 결과가 없다면 합의도 없다. 제작비 내역 중에 줄일 여지가 있는 항목이 뭘까. 답을 못 찾은 채 잔뜩 일그러진 견적서 종이를 보는데 내 마음 같다. 구겨진 마음으로 제작관리팀(광고 제작 비용 담당)으로 향한다.


제작비는 크게 3가지 돈으로 나뉜다. 촬영 준비 및 촬영에 소요된 경비를 제시한 프로덕션에 주는 돈, 2D와 3D, 편집, NTC(Nega-TeleCine. 영상에 색감을 입히는 작업)등의 후반작업 회사에 주는 돈, 이 모든 것을 정리하며 관할하는 광고회사가 받는 돈. 클라이언트의 의견과 제작관리팀의 의견을 수렴해 어떤 항목을 조정할 지 결정한다. 뭔가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하다. 우리 회사 돈을 깎을 지, 남의 회사인 프로덕션이나 후반작업 회사 돈을 깎을 지.


이 작업이 진을 빼는 이유는 한 번의 금액 조정으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는 협의가능한 금액 가이드라인을 얘기해 주면 되지만, 우리는 그 금액을 만들기 위해 여러 군데 연락을 돌려 가능 여부를 타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여러 군데의 대부분은 한 번에 타협해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광고회사가 금액이 줄어든 만큼을 안고가야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것 마저도 쉽지 않은 경우라면 클라이언트와 시원하게(?) 부딪힐 각오를 해야 한다.


가끔씩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돈도 아닌데 이렇게 감정을 다치면서 까지 사수해야 되는 건지. 그럴 때마다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최종 결과물은 광고물이 아니라 회사에 벌어다주는 “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진흙탕 같은 제작비 협의 과정은 그 최종 결과물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 이런 마인드셋으로도 해결 안 되면 소주 한 잔으로 씻어내야 한다. 제작비와 관련된 업무는 광고와 아이디어만 보고 이 세계에 입문한 이들이 겪는 첫 번째 성장통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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