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매주 화요일.
아이의 방과 후 교실이 끝난 시간인데도 아이가 나오질 않았다.
담당 선생님과 우연히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아이가 요리의 마무리를 공들여서 하는 편이라고 했다. 꼼꼼해서 매번 교실에서 나가는 시간이 늦는 거라고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다른 아이들이 이미 많이 간 뒤에야 봉지에 무언가를 들고 조심조심 걸어오는 아이가 보인다.
수업이 즐거웠는지, 교문 앞까지 같이 걸어오는 친구 한 명과 유난히도 많이 웃고, 서로의 요리를 구경하면서 나를 발견하곤 웃는다.
아이와 만나서 봉지 안을 보니, 오늘의 요리는 컵케이크였다.
머핀을 만들고 그 위에 생크림을 올리고 뿌링클이 뿌려져 있어서 꽤 그럴싸해 보였다.
지금까지의 아이가 만들어온 요리 교실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아 보였다.
눈으로만 보기 아까워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다. 서서 들고 찍느라 막상 컵케이크의 모양이 잘 나오진 않았지만, 아이는 너무 예뻐서 좋다며 뿌듯하게 들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진을 찍었다.
평소 같으면 완성된 요리를 내가 들어주었기에 그날도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엄마가 들어줄까?”
아이는 딱 잘라 말했다.
“아니야. 내가 들 거야. 오늘은 흔들리면 안 돼. 모양이 망가진단 말이야.”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이는 한발 한발 걸어갔다. 학교에선 뭐가 제일 즐거웠냐고 오늘 급식은 어떤 음식이 나왔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아이는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보니, 아이의 눈은 걸으면서도 컵케이크에 향해 있었다.
컵케이크가 흔들릴까 봐 걱정돼서 대답할 수 없으니, 나에게 말 시키지 말라고 당부까지 한다.
그렇게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고 20분 정도 걸어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걸어 들어갈 때였다.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본 아이는 평소 좋아하는 맛 요구르트를 사달라고 말했다. 내가 계산하고 돌아오는 사이, 아이가 나를 보다 잠시 시선을 놓쳤는지 아이 손에 있던 컵케이크가 바닥으로 그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아이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아이고, 이런, 망가져 버렸네.”
컵케이크의 생크림은 뭉개지고 생크림과 분리된 머핀 몇 개가 상자 안에서 나동그라져 있었다.
아이는 금세라도 울 것 같은 눈빛으로 바닥의 봉지를 들고 터벅터벅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내 눈을 보지 않고 컵케이크만 쳐다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밖에서 잘 울지 않는 아이가, 울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엄마인 나는 안다.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자마자 아이가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울음이 터졌다.
그날 아이는 평소와 다르게 참 많이도 울었다.
소파를 발로 차기도 하고, 쿵쿵 거실 바닥을 발로 차면서 소리도 질렀다.
공들여 만든 작품을 망친 것이 속상한 것 같아서 처음엔 아이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울음을 계속됐다. 기다려주자고 마음은 먹었지만 30분이 넘게 울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귀가 아파지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 마음에서 불만의 말들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당장 [그만해! 그만 울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이런저런 말로 달래는 봐야겠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속상한 거야? 얼마나 아쉬운지 알겠어. 그러니 진정해 봐.
어떻게 도와줄까? 엄마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어?
안아줄까? 이리 와봐
어떤 말로도 아이는 달래지지 않았다.
달래다가 진이 빠진 채로 식탁 의자에 앉아서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이가 울다 지쳐 목이 쉬어버려 잠시 숨을 고를 때, 조용히 아이를 불렀다.
진짜 아이의 마음이 궁금했기에 나는 내 방식대로 말하기를 멈추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다온아, 어떤 마음이었길래. 이렇게 울음이 많이도 나는 거야? 저 컵케이크를 만들 때 어떤 마음이었어?”
아이가 내 눈을 한번 보더니 입술을 삐죽 대면서 말했다.
“우리 가족 같이 먹을 딱 4개를 만들었단 말이야.
아빠 거, 엄마 거. 내 거, 이솔이 거. 딱 4개. 그리고 생크림 올리는데 30분이나 넘게 걸렸어!
자꾸 흘러내려서 이쁘게 만들기가 너무 힘들었단 말이야.
아빠랑 이솔이는 보지도 못했잖아. 똑같이 이쁘게 만들 수도 없잖아. 이제. 엉엉엉.”
아이는 말하다가 좀 전의 컵케이크를 떨어트린 순간이 떠올랐는지 다시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한참을 울었다.
“그런 마음이었구나. 엄마가 다온이의 그런 마음까지는 몰랐어. 다온이는 컵케이크를 만들면서 우리 가족을 생각했었네. 되게 예쁜 마음이다.”
아이에게 컵케이크는 단순한 요리 교실의 작품이 아닌, 가족을 위한 사랑이 담긴 작품이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서야, 아이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의 길고 긴 울음에도 분명 이유가 있었다.
컵케이크에 담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몰랐고, 나는 그저 울음소리에만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이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그날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의 울음도 하나의 감정 표현이라는 것을 머리로만 알기보다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라는 마음그릇을 키워가는 엄마가 되어보자고 다짐해 본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육아의 핵심은 기다림! 그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