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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주 Nov 15. 2023

맥주 사는데 몇 살이냐고 물어봤당.


혼술을 자주 하는 편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매일 하는 편이다. 

내 주변엔 술 마시는 친구가 없다.

같이 마셔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쩌겠는가. 

혼자라도 홀짝여야지.

아무튼 늘 개 산책 겸 해서 편의점을 들러

4캔에 11000원 혹은 12000원 하는 맥주들을 담아 온다. 우리 집 근처에는 거의 비슷한 거리의

다른 편의점이 두 곳 있다.

편의점마다 맥주 행사상품들이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입맛에 맞춰 다니는 편이다.



오늘은 G사의 편의점 맥주들을 생각하며 집을 나선다. 선선해진 날씨와 함께 불어오는 저녁 바람이 기분 좋다. “안녕하세요~”

들어가자마자 비치되어 있는 작은 바구니를 꺼내 주류칸으로 직행한다.

좋아하는 라거, 에일 등을 거침없이 담아 계산대로 직행한다.

바구니에 술밖에 없어서 인지 왜인지

수줍은 미소를 띠며 일하시는 분이 계산을 마치시기를 기다린다.

“띠, 띠, 띠, 띠, 행사상품입니다.”

그때, 삼성페이를 리더기에 대려는 순간이었다.     

“몇 살이에요?”     

중저음의, 분명, 앞에 서 있는 남. 자 목소리였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고등학교 때도 사복 입으면

마트 가서 맥주를 사는 데 성공해 봤던 노안 아니었던가. 이래서 노안이 어렸을 때 그 얼굴 그대로 가서

오히려 나이 들수록 동안이 된다고

주변에서 위로를 해줬던 것이었나.

나는 이제 어쩔 수 없이 동안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인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양 입술을 포갰다.

그럼에도 터져버린 이 못난 웃음을 감추기 위해 그냥 뻔뻔하게 가기로 한다.


어머ㅎㅎㅎㅎ 저 나이 많아욯ㅎㅎㅎㅎㅎ


한 손으로는 핸드폰 앨범에 있는 신분증 사진을 찾으면서, 머릿속 한 켠으로는 ‘이 남자가 나한테 관심 있나.’ 하면서.



“아니, 개요.”

“네?”

“............. 강아지요.”

“.................”

잊고 있었다. 내 남은 한 손에는 개 줄이 있었다는 것을.

“아~ 얘 3살이에요! 귀. 엽. 죠? 하. 하. 하”

이제 한 손에는 3살의 꼬막이가, 한 손에는 4캔의 맥주가 있음을 충분히 인지한 채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아니, 주어를 왜 빼는 거야? 남의 집 개 얼마나 살았는지는 왜 궁금한 거야? 투털거리면서.



거의 공간이동하듯 도착한 집 엘리베이터 안,

혼자 있을 때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표정을 양 껏 지으며 창피함을 뿌리쳐내려 했다.

그러다 마주한 거울 속 내 얼굴.

찌푸리다가 펴서 더 그렇게 느껴진 걸까.

선명한 팔자주름이, 무너진 턱선이, 윤기 없는 피부가 ‘동안은 무슨, 노안에 노화가 덮혀졌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노화. 늙어가는 것. 

닫힌 엘리베이터 앞에서 생각에 잠긴다.

나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베개 자국도 잘 안 없어지고, 미용실 가면 “어 흰머리 있다, 뽑아드릴까요?” 는 횟수도 늘었고, 맥주 때문이라 합리화했지만 아랫배만 뽈록하니 소위 어르신들이 나잇살이라고 말하던 튜브도 생겼고..

하나하나 생각해 보니 끝이 없다.

피부과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왔다 갔다 하는 친구 K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제 예쁘다는 말보다 어려 보인다, 생기 있어 보인다는 말이 더 듣기 좋다고. 너도 인모드니 실리프팅이니 뭐든 좀 하라고.

꼬막이 발을 대충 닦고, 사온 맥주 한 캔을 까서 식탁의자에 앉는다.



사색의 시간이다. 왜, 남녀노소 불문 노화를 피하고자 하고 어린것을 좋아할까.

오늘의 주인공 꼬막이도 2개월일 때 분양받은 아이다.

어찌나 조그맣고 귀여웠었는지.

이런 마음과 비슷한 걸까.

개도 늙은 개보다는 새끼 강아지가 인기 많은 것처럼, 사람도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되는 걸까.

꼬막이의 촉촉한 코를 톡톡 치며 혼자 다짐한다.

내일부터는 맥주 좀 줄이고, 오늘 자기 전에 마스크팩도 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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