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스무 살이 되어, 드디어 고향에서 벗어나는 날이었다.
엄마와 광주에서 서울까지 3시간 30분이 걸리는 고속버스를 탔다.
나는 설렜었나, 아니면 원했던 학교는 아니라 그저 그런 기분이었었나.
내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엄마의 마음은 살피지 않았었겠다.
홀로 쓰게 된 기숙사 방청소를 대충 하고 우리는 바닥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전기밥솥의 밥을 뜨고
참치캔을 땄을 때였나 참치를 떴을 때였나
엄마가 왜 말을 그렇게 하냐는 듯이 말했다.
사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언가 싸해진 모녀의 기운,
갑자기 그녀가 "엄마 갈게" 하더니 기숙사 방문을 열고 홀연히 나가버렸다.
나는 한 숨을 한 번 깊게 쉬었다.
그리고 일어나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엘리베이터 안의 엄마는 내가 나오는 소리를 듣고
닫힘 버튼을 눌렀는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우리는 엇갈렸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틈 속 엄마는 나를 보고 시선을 돌렸다.
나오기 전 깊게 쉬었던 한숨이 원망스러웠다.
몇 초만 빨리 나왔으면 엄마의 손을 잡고 그 엘리베이터에서 나오게 했을 텐데.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나는 10층을 비상계단으로 뛰어내려 가며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당연히 연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보다 빨리 다시 고속터미널역으로 가야 했다.
왜인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기서 엄마 얼굴을 다시 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은 직감이 들었다.
보내고 싶지 않았던 막내딸을 서울로 보내는 날,
함께 서울로 올라오고 홀로 광주로 내려가야 하는 날.
엄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었고, 모르겠으면서도 알 것 같았다.
기숙사에서 고속터미널역까지는 한 번의 환승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그 환승구간에서 엄마는 지하철을 반대로 탔다.
그리고 나는 그녀보다 일찍 고속터미널역에 도착했다.
저 위에서 빨간 눈을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익숙한 얼굴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엘리베이터 앞에서처럼 그녀를 또 눈앞에서 놓칠까 봐 자꾸만 흐려지는 눈을 계속 닦으며 발을 옮겼다.
빨간 눈의 그녀는 우는 날 보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었다.
그제야 지하철 역사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삼켰다.
눈물을 참으려 입을 삐죽거리면서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못나서 미안해
그날 그녀는 알고 있었던 걸까.
스무 살이 된 막내딸을 타지로 보내는 그날, 다시 예전처럼 함께 살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괜스레 밉고 더 서운했던 걸까.
모르겠다. 모르겠다.
그저 그날만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