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ssam Dec 03. 2019

[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35]

간절함을 풍등에 담아  #대구벌 관등놀이

[2019년 4월 27일]


녀석이 꼭 가고 싶다고 해서

표까지 양도받아 출발한 대구행

친구 둘이 같이 갔지만

워낙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보호자로 따라나선 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준비 없이

표만 구해서 갔는데


풍등에 글씨 쓸 매직이랑

불 붙일 라이터

긴 시간 기다리며 먹을 간식

돗자리, 음료수 등등

준비할 것이 제법 많은 자리였다

(다음엔 잘할 수 있을 듯~^^;;;)


입장은 일찍 시작하지만

날이 어두워져야 풍등을 날릴 수 있기 때문에

무대에선 공연도 하고 계속 행사들이 이어졌고

수천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소풍 온 분위기로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녀석들은 자리를 잡고 나서

옆 사람들에게 빌린 펜으로

풍등 위에 소원을 적었다

네 명당 풍등 한 개를 주기 때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적어야 했다


추가 수량이 없어서 망가지면 구매할 수 없고

안전상 이유로 사제 풍등은 날릴 수 없으니

작은 구멍도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뤄야 풍등 날리기에 성공할 수 있다고

동영상 교육까지 받았건만


결국 한 녀석이 글씨를 쓰다 구멍을 내고

순간 모두가 동시에 얼음!!!

잠시 정적과 멘붕의 시간이 흘렀다

이걸 못 날리게 되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어지고

잘못 날렸다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뉴스에 날까 겁나고

나는 이게 뭐라고 급기야 머리가 아파왔다


녀석들 표정을 보아서는

못 날리게 되면 울음보가 터질 상황이다

나는 잠시 풍등을 살펴보다가

풍등을 담았던 비닐에 붙은 스티커를 발견했다

다행히 구멍은 작은 편이었다

나는 그 스티커를 조심스럽게 떼어서

반을 잘라 구멍 위에 붙였다

누가 봐도 티가 안 날 만큼 감쪽같아 보였고

녀석들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남은 스티커를

정 반대쪽 같은 위치에 붙이고

다시 예쁘게 접어서 봉투에 넣었다


십 년은 감수한 기분으로

잠시 후 날릴 이 풍등이 부디 무사히 녀석들의 소원을

하늘 끝까지 전달해주길 빌고 또 빌었다



녀석들의 소망에는 가족들이 있다

엄마, 아빠, 오빠, 동생,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자신들의 꿈과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

잠시 나들이 나온 고3들의 가슴속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연도 막바지로 달려가고

무언가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해진 느낌이었다


풍등을 하나 둘 펼치고 여기저기서 날릴 준비를 했다

아마도 동시에 날려야 하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작년엔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너무 빨리 날리기 시작해서

해가 지기 전에 풍등들이 날아올랐다고 했다


곳곳에서 한두 개씩 먼저 날리는 것들이 보였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풍등들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이 영화처럼 떠오르곤 한다

사진이나 화면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광경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하던 광경

아름다운 풍등들이 밤하늘을 별처럼 수놓던 순간

녀석들도 말없이 그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장면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마도 떠오른 수천 개의 풍등마다
간절한 소망들이 담겨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 풍등도 천천히 날아오를 준비를 시작한다

둘은 네 귀퉁이를 조심스레 잡고

한 녀석이 아래쪽 심지에 불을 붙인다

풍등이 빵빵해질 때까지 1미터 정도 높이를 유지하며

조금 뜨거워지더라도 잠시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풍등이 스스로 조금씩 위로 힘을 내면

그때 살짝 놓아주면 바람을 타고 하늘로 떠오른다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상처도 입고 스티커도 붙인 풍등이

힘차게 하늘로 솟구쳤다

다행이다

녀석들의 꿈과 녀석들의 희망을 품에 안고

올라가는 풍등을 녀석들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녀석들은 아마도

이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되겠지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예쁜 녀석들의 앞날에

행복만 가득하길

저 풍등에 담긴 작은 소망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길




글ㆍ사진  kossam

※사진은 퍼가지 말아 주세요~

이전 24화 [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3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