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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ul 16. 2020

쌓인 연금이 있어 다행이다.

퇴사를 마음 먹고 나서야, 연금이 보였다.

아내는 나보다 여섯 살이 어리다. 그러다 보니 결혼 후, 둘이 함께하는 모든 일들을 나보다 여섯 살 어린 나이에 경험한다. 내 집 마련의 꿈도 나보다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실현했고, 함께 은퇴를 하기로 했으니, 은퇴를 하는 시기도 나보다 6년이나 빠르다. 난 은퇴의 꿈을 이루기까지, 원했던 마흔 살에서 6년이 더 필요했는데, 아내는 그게 본인의 꿈도 아니었으면서도, 내가 꿈꾸던 마흔에 은퇴를 한다.


둘의 나이 차이만큼 아내는 연금수령도 빠르다. 내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수령할 55세가 될 때, 아내의 나이는 여전히 앞자리가 4이다.

‘나도 연상이랑 결혼했어야 했어.’

40대에 첫 연금을 받게 될 아내를 샘내면서, 하나마나한 실없는 소리를 한다.

‘내가 열 살 연상이랑 결혼했으면, 지금 연금 받으면서 사는 건데.’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20대 후반, 회사가 주는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회사와 거래하는 은행의 급여통장이 필요했다. 계좌를 개설하러 간 은행의 창구 담당자분은, 사회 초년생의 어리바리함을 놓치지 않았다.

‘연금저축도 가입하세요. 소득공제 받으셔야죠. 직장인이라면 필수예요. 누구나 다 하는 거예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해야 했다. 이젠 나도 직장인이니까. 매달 급여통장에서는 25만 원씩 빠져나갔다.


아내의 친한 친구는 직장이 은행이었다. 아내는 매달, 실적 압박을 받는 친구가 안쓰러워, 친구를 통해 연금저축에 가입했다고 했다. 하나를 가입하고 2년이 지나, 친구의 부탁으로 다시 하나를 추가했다. 아내는 한 달에 두 번, 연금저축의 명목으로 통장잔고가 줄어들었다. 친구를 위해 가입한 연금저축을 10년 동안 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아직 은행에 다니거든. 왠지 미안해서 해지하지 못했어.’


노후를 위해 매달 빠져나가는 25만 원은 일종의 세금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선 언젠가 돌려받을 내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마음까지는 와 닿지 않았다. 언제 올지 모를 노후보다는, 당장 눈앞의 일이 더 중요한 나이였다. 그 나이엔 노후 말고도 관심을 사로잡는 일이 차고 넘쳤다. 세금으로 느껴지던 연금저축을 그냥 해지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어차피 월급은, 빠져나가는 돈을 제하고라도 혼자 쓰기에 부족하지 않았고, 은행가는 일은 언제나 귀찮았다.


회사를 다니는 년수가 늘어갈수록, 퇴직금도 함께 늘어갔다. 하지만 퇴직금은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당장 내가 만질 수 없는 돈이었다. 중간에 정산을 받아 전세금에 보탠다거나, 주식에 투자를 하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혼자 사는 나에게 큰돈 들어갈 일은, 가끔 여행을 가는 일 말고는 없었다. 며칠 휴가를 내어 다녀오는 여행 때문에 퇴직금을 깰 필요는 없었다.


급여통장에서 다달이 잊지 않고 빼 가던 연금저축과, 당장 손댈 수 없는 퇴직금은, 그렇게 내 관심 밖에서 차곡차곡 쌓여갔다.




퇴사를 마음먹으니 곧바로 연금에 관심이 갔다. 국민연금을 내기 시작한 이후로 21년 만에, 처음으로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10년 후인 55세부터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수령이 가능했다. 거기에서 10년이 더 지나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추가납입이 가능한 개월 수도 볼 수 있었다. 대학생일 때, 학원강사 아르바이트를 잠깐 한 적이 있는데, 국민연금 최초 납입일이 그때로 잡혀있었다. 그 후로 첫 직장을 들어가기까지 28개월이 비어있었고, 그 기간에 해당하는 만큼을 추가로 납입할 수 있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연금수령액을 늘려야 했다. 곧바로 비어있던 28개월을 채웠다.


55세부터 연금을 받는다고 55세 이후의 삶이 해결되진 않았다. 연금만으로는 둘이 살기에 부족해 보였다. 연금수령액은 2인 가구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했다.

‘아. 나에겐 여섯 살이나 어린 아내가 있지.’

다시 계산을 했다. 아내 역시 55세가 되면, 아내 몫의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이 나온다. 내 연금수령액과 합치니 2인 가구 최저생계비를 조금 넘었다. 그때 내 나이는 61세가 된다. 61세 이후의 삶은 문제없어 보였다. 첫 연금을 받는 55세부터, 아내의 연금이 더해지는 61세까지의 문제만 남았다. 아내의 나이로는 49세에서 55세 까지다. 그 6년간의 보릿고개 구간을 버텨야 한다. 아내는 고생도, 나보다 기운이 좀 더 남아있을, 6년 젊은 나이에 한다.


아내가 빨리 55세가 되면 좋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초년생에게 연금저축 가입을 권유하던 은행원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아내 친구가 고맙다. 연금저축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그 25만 원은, 무언가로 써 버려서 지금은 남아있지 않을 돈이었다. 그 돈들이 버려지지 않고 모여서, 노후에 쓰일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퇴직금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묶었던 회사도 고마웠다. 쉽게 손댈 수 있는 돈이었다면, 결혼할 때, 아마도 첫 집의 전세금에 보태서 대출을 줄였을 거다. 그렇다면 덩치가 작은 빚이 만만하게 느껴졌을 거고, 살림살이는 지금처럼 미니멀해지지 않았을 거 같다.


퇴사를 마음먹고 나서야 노후준비가 중요했다는 걸 알았다. 노후에 관심이 없었던 시절, 의도하지 않았던 그 선택들이 고맙게도 노후준비가 됐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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