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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ul 13. 2020

한달 살기? 2년 살기는 어떨까.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 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어쩌다 강남역이나 코엑스 같은, 번잡한 곳에서 약속이 잡혀, 친구들을 만나고 나면, 집에 돌아오는 길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아내는 산을 좋아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뿐만 아니라, 둘레길을 걷는 것도 즐겼다. 숲에 둘러싸여 나무향을 머금은 공기를 마시면 행복하다고 했다.

‘나 녹색이 보고 싶어.’

회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일이 힘들어 지칠 때마다 아내는 녹색을 찾았다. 주말에 숲길을 걸으면서 심호흡을 하면, 다음 일주일을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어쩌다 날씨 얘기가 나오면 나는 종종 ‘0°c 보다는 30°c 를 택할래.’라고 얘기했다. 더운 건 버틸 수 있지만, 추위는 버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모든 차가운 것을 싫어했다. 한 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셨고, 수영장 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심호흡을 몇 번이고 해야 했다. 여름 내내 따뜻한 물로만 샤워를 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고 싶다.’

겨울만 되면 입버릇처럼 말했다.


수도권의 아파트를 팔고 지방으로 간다는 계획은 설레었다. 번잡한 서울을 떠나, 푸른 산이 둘러싸인, 따뜻한 남도에서 사는 건, 어쩌면 늘 원해 왔던걸 지도 모른다. 앞으로 살아갈 매일매일이 여행 같은 삶이 될 것 같았다.




그즈음부터 여행 다닐 곳은 주로 전라남도나 경상남도에서 골랐다. 여행지를 고르기 위해 ‘가볼만한 곳’을 검색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관심이 있는 건 ‘살만한 곳’이었다. 지도를 열어 전라남도나 경상남도의 한 곳을 정해 무작정 떠났다.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순천이었다. 전라남도 교통의 요지처럼 느껴졌다. 바로 옆 동네에 광양불고기가 있고, 또 다른 옆에서는 벌교꼬막을 먹을 수 있었다. 여수 밤바다를 걷고 싶을 때면 차로 30분만 가면 됐다. 순천만 습지는 볼 때마다 경이로웠다. 갈대밭 사이를 걷다가 배가 고파질 때쯤 짱뚱어탕을 먹으면 좋았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연간이용권을 끊고 매일 들려 산책을 하고 싶었다.


목포가 급격히 후보지로 치고 올라온 건 연포탕 때문이었다. 낙지탕탕이를 먹으러 간 식당에서, 함께 시킨 연포탕을 한 입 먹었을 때 ‘세상에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연포탕 하나만으로도 목포에서 살아 볼 가치가 있어.’

유달산 아래에서, 맥주 한 캔과 함께 목포 밤바다를 바라보며, 낮에 먹었던 연포탕 얘기를 했던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있다.


통영은 하늘이 깨끗했다. 동피랑에 올랐을 때 먼저 눈을 사로잡았던 건, 바다가 아니라 하늘이었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을 잘 택한 이유겠지만, 통영항과 작은 섬들을 품은 하늘은 통영의 첫인상을 좋게 했다. 비린 걸 싫어하는 아내가 생선국을 먹은 건, 통영이 처음이었다. 맛만 본 정도가 아니라 국에 밥까지 말았다.

‘도다리쑥국 생각난다.’

생선과 관련된 음식 중 아내가 먼저 먹고 싶다고 하는 건, 도다리쑥국이 유일하다.




어느 한 곳을 정하려는 고민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어느 곳을 선택하든, 설렘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파리나 로마, 바르셀로나가 그런 것처럼, 서로 우위를 가려 고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방콕이나 호찌민, 쿠알라룸푸르가 그런 것처럼, 각각의 도시는 모두 저마다의 매력이 따로 있었다.


‘모두 돌아가면서 2년씩 전세로 살아볼까?’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 아내의 생각은 언제나 자유분방하다. 얽매일 직장이 없으니, 한 곳에 굳이 정착할 필요도 없었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살다가 지겨워질 때, 다른 곳으로 옮겨도 문제 될 게 없었다. 한달 살기가 유행이라던데, 2년 살기는 어떨까. 어디에도 소속되어있지 않은 삶에선, 무엇이든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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