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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ul 20. 2020

이른 은퇴 준비, 부모님이란 큰 산을 넘었다.

은퇴 후 살아갈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면서, 언젠가 술자리의 친구들에게, 처음 은퇴 계획을 말했다.

‘은퇴라고?’

1년 가까이 아내와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했던 이슈였다. 가지고 있는 집을 파는 걸로 10년을 벌었고, 10년이 지난 후부터는 든든한 연금이 있었다. 은퇴 이후 살아갈 모습은, 아내와 이미, 그렸다가 다시 그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는 은퇴 후 모습은, 제법 괜찮아 보였다. 쏟아지는 질문을 받을 준비가 됐다. 기자회견장에서 경쟁하듯 손을 드는 기자들에게, 질문의 순서를 정해주는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요즘 은퇴하고 싶다. 네가 먼저 해보고 어떤지 알려줘.’

음? 그게 끝이야? 궁금한 건 없어? 질문을 안 하니 덧붙일 게 없었다. 친구들은 내 얘기를 단지 ‘회사 때려치고 싶다.’ 정도의 신세한탄으로 들은 듯했다. 신세한탄이라면 술자리에서 딱히 재미있을만한 주제가 아니다. 그치. 돈 버는 일은 너도 나도, 모두 힘들지. 그런 우울한 얘기는 접고, 이렇게 술이나 한잔 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거지. 나의 은퇴 선언은 술자리의 폭탄이 될 줄 알았지만,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다른 술자리에서는 한 두 가지 질문이 나오긴 했다.

‘로또 당첨 된거야?‘

‘매일 놀면 심심하지 않겠냐?’

질문의 수준이 왜 이런 거야. 기대했던 질문이 아니었다. 진지하게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해 얘기하려는데, 이런 1차원적인 질문들 뿐이라니. 이런 것들을 친구라고 지금껏 만나고 있었구나. 그래 그냥 술이나 마시자.




부모님은 술자리의 친구들과는 다르다. 설득을 해야 했고 동의를 받아야 했다. 왜 이런 생각을 했으며, 둘 다 고민한 시간은 충분했는지,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계획을 말씀드려야 했다.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운 톤으로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납득시키는 건, 회사에서 늘상 하는 일이었다.


우리 집이 먼저였다.

‘주말에 점심 먹으러 와. 반찬도 좀 가져가고.’

은퇴를 말씀 드릴 시기를 재고 있었는데, 마침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미리 전화로 은퇴 얘기를 말씀드릴 필요는 없었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배가 불러 마음도 함께 넉넉해졌을 때를 노리기로 마음먹었다.


식사 후, 후식으로 깎은 참외를 앞에 두고, 은퇴 계획을 말씀드렸다. 뜻밖의 말에 놀라시던 엄마는, 중간에 몇 번 내 말을 끊고, 궁금한 걸 물어보셨다. 모두 예상질문 범위에 있어서 답변이 어렵지 않았다. 얘기가 끝나자, 기싸움이 시작됐다.

‘아무 소리 말고 50살까지만 다녀.’

50살이면, 4년을 더 회사에 다녀야 했다. 그럴 수는 없다. 최근 몸상태가 안 좋았다는 생각이 났다. 실제보다 부풀렸다.

‘나 회사 다니면서 건강 다 해쳤어.’

아들의 건강이 나빠졌다는 말에 약간 주춤하셨다. 목소리가 살짝 부드러워지셨다.

‘돈 없이 어떻게 살려고 그래.’

허풍도 필요했다.

‘평생 쓰면서 살 돈 다 모았어.’

물론 거짓말이었다. 집을 팔더라도 우린 길어야 10년 쓸 돈 밖에 없었다. 이후, 아내와 나, 둘 다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기까지 6년간의 보릿고개 기간을 버텨야 한다.

‘잔말 말고 50살까지는 더 다녀.’

허풍이란 걸 눈치채셨는지 다시 단호해지셨다.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운 톤은 회사에서나 필요했다. 엄마에게는 죄송스럽지만, 우리 집에선 이 방법이 최선이다.

‘이미 회사에 그만둔다고 얘기했어.’

물 엎지르기.




처가 부모님은 아내가 맡기로 했다. 기싸움을 벌여야 했던 우리 집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딸만 둘 키우신 장모님은, 아들만 둘 키워내신 우리 엄마와는 다르셨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장모님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시며 감성을 자극하셨다.

‘여행도 맘껏 다니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행복했으면 해...’

당신이 바라시는 단 한 가지가 바로 우리의 행복이라고 하셨다. 다른 것도 아닌 돈 때문에, 막내딸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주저하게 된다면, 마음이 많이 아플 거라고 하셨다.


장모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 내 가슴이 아팠다. 장모님의 진심이 느껴졌다. 굳게 결심했던 게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아내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내는 이미 40년 동안 장모님을 상대해왔다.

‘엄마. 나 행복해지려고 회사 그만두는 거야.’

아내의 표정은 장모님보다 더 애잔했다.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둘 다 막내였다. 자식에 대한 기대는 장남과 장녀가 먼저 가져갔었다. 형과 언니는 자라면서, 자식에 대한 기대는 작을수록 좋다는 걸 여러 번 학습시켰다. 아내와 나는, 그렇게 앞서서 길을 닦은 형과 언니 덕에, 그들보다는 조금 더 우리 뜻대로 자랄 수 있었고, 삶을 조금 더 우리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자식이 주는 충격이라면, 부모님은 평생 익숙해지지는 않으실 거다. 다 큰 자식이라고 걱정이 줄어든다거나 하지도 않으실 거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가 사는 모습을 지켜보실 거다. 늘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 부모이면서도, 자식이 한 어리석은 선택을 끝내 말리지 못해, 자식이 불행해졌다는 죄책감을 드리면 안 된다. 그런데 이것도, 그리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내와 함께 은퇴를 고민하고, 결심하고, 준비했던 모든 과정이 행복하고 설레었다. 분명 앞으로 우리가 예상 못했던 어려움에 수없이 부딪히겠지만, 별 걱정은 없다. 어차피 산다는 건 원래 그래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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