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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ul 28. 2020

캐리어 하나로 이동하는 삶.

집에 있는 가구들과 전자제품들은 결혼 전 각자 쓰던 오래된 것들이다. 독립생활을 5년 정도 했고, 이제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으니, 집에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10년을 넘어간다. 혼자 살 때 구입한 것들이어서 비싸지 않은 것들이고, 충분히 크지도 않지만, 둘의 살림살이로는 적당하다.


다른 것들은 각자 독립생활을 시작하면서 구입했는데, 냉장고는 그것들보다 나이가 많다. 20살쯤 됐으려나. 아내가 독립을 할 때 즈음, 장모님이 냉장고를 교체했는데, 그때 밀려난 냉장고를 아내가 가지고 나왔다. 아내는 요즘 들어서 냉장고를 바꾸고 싶어 한다.

‘냉장고 사줘. 저거 너무 이쁘지 않아?’

요즘 나오는 냉장고들은 왜 그렇게 다들 이쁘고 세련됐는지. 하지만 새로 구입하기엔 지금 냉장고의 성능이 아직 너무 좋다. 아내도 우리가 냉장고를 새로 살 리가 없다는 걸 잘 안다.  


고장이 아닌, 오래되고 유행이 지난 디자인이라는 이유로, 가구나 전자제품을 바꾸지 않기로 아내와 얘기했었다. 소중히 다루어서 오래오래 쓰자는 건 아니다. 그들의 수명은 아마도 2022년 6월까지. 아내가 은퇴를 하고, 모아놓은 돈이 다 떨어지게 될, 그래서 집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2년 후, 지금 가지고 있는 살림살이들을 모두 처분하기로 했다. 그렇게 집도 없고, 살림살이도 없는 홀가분한 몸이 되어, 남도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녀며 2년씩 살아보기로 했다.




첫 2년 살기의 도시가 어디가 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집은 오피스텔을 알아보기로 했다.

‘풀 옵션이어야 해. 우린 떠돌이가 될 거니까.’

전세 2년 계약이 끝날 때마다,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에서 몇 달을 살아 볼지도 모른다. 가진 게 없어야 움직임이 자유롭다. 각각 캐리어 하나씩만 가지고 이동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처음엔 원룸을 생각했었다. 둘 다 공간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살게 될 공간이 넓을수록, 전세금이 비싸진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근데, 우리 나중에 부부 싸움하면, 각방 써야 하지 않겠어?’

아내는 계획에 빈틈이 없다.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따져 미리 준비를 한다.

‘그러네. 그럼 분리형 원룸으로 하자. 거실 하나 방하나 있는.’

각방을 써야 할 경우를 대비해, 주거비를 조금 더 늘리기로 했다. 각방을 써야 할 때, 누가 침대가 있는 방을 차지하느냐의 중요한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떠돌이 생활을 하기로 한 10년 정도의 기간 동안, 우리가 가구나 가전제품을 사는 일은 없을 듯하다. 몇 년 후, 우리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있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오늘 하는 생각은 어제 했던 것과 다르고, 내일은 지금까지 했던 생각들이 다시 모이고 섞여서, 새로운 무언가를 빚어낼 거다. 변덕스러워도 상관없다. 그래도 되니까.




어릴 때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다. 길을 걷다 보이는 길고양이는 언제나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근처에 편의점이라도 있으면, 언제나 소시지 하나를 샀다. 내가 아쿠아리움을 가끔 가는 이유는, 거북이를 보기 위해서다. 몇십 분을 거북이만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스쿠버다이빙을 하게 된 것도 거북이의 영향이 크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고양이와 거북이는 나를 끌어당긴다. 아. 그런 존재가 하나 더 있다. 아내.


나중에 우리가 어딘가에 정착을 하게 될 때, 고양이를 키우기로 했다. 거북이도 키우고 싶긴 한데, 그건 우리 능력을 벗어난다. 거북이는 가끔씩 아쿠아리움에서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고양이의 집사가 되고 싶지만, 아직 조금은 참아야 한다. 우린 한동안은, 캐리어 하나씩만 들고 떠돌아다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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