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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Aug 06. 2020

이번 글은 후기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안녕하신가요.

언제 한번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매거진이 마무리된 겸 해서 인사드려요. ‘조금 이른 은퇴를 했습니다.’라는 매거진을 통해 발행하는 글은, 저의 일과를 소개했던 22번째 글이 마지막이에요. 과정의 이야기를 썼는데, 그 과정의 끝에 다 왔으니, 더 이상 쓸 내용이 없어요. 원래는 후기 없이, 새로운 매거진에 글을 이어가려 했는데,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분들은 제가 잠수 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글을 남겨 봅니다. 이번 글은 이 매거진의 후기예요.




2년 전 즈음에, 아내와 은퇴를 계획하던 시기에, 우연히 한 브런치 작가분의 글을 읽었습니다. 우아한 가난뱅이​ 라는 분이에요. 그분도 이른 은퇴를 준비하는 글을 쓰고 계셨어요. 그분의 글을 읽으며, 아내와 함께 우리의 은퇴는 잘 준비되고 있는지 점검해보고, 점점 줄어드는 그분의 은퇴 D-DAY를 함께 세었습니다. 지금은 D-DAY는 모두 없어졌고, 그분은 계획대로 은퇴를 하셨습니다. 이제는 은퇴 이후의 일상과 생각을 적고 계세요.


‘나도 브런치에 은퇴 얘기를 한번 써 볼까?’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저도 브런치에 은퇴 과정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습니다. 혼자 놀기 느낌이었어요. 그냥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고요. 아내도 반겼습니다.

‘한번 써봐. 내가 구독이랑 좋아요 눌러줄게.’

저는 공개된 공간에 글을 써 본 적이 없어요. SNS도 하고 있지 않고요. 제 일상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어색했거든요. 몰래 하기로 했어요.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건 아내만 알고 있기로 했습니다.


4월 30일 마지막 출근을 했습니다. 그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첫 글을 썼어요. #01. 퇴사를 했다​ 라는 글입니다. 그땐 아직 브런치 작가가 아니어서 글을 발행할 수는 없었어요. 작가 신청을 하고, 축하한다는 결과 메일이 온 날, 첫 글을 발행했어요. 5월 19일입니다. 첫 글을 올렸을 때의 두근두근한 마음이 기억납니다. 글을 발행한 첫날의 조회수는 ‘43’ 이였어요.


첫 글을 발행하고 나니, 구체적인 목차를 미리 준비하고 글을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다음 글은 어떤 걸 쓰지? 하는 결정을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거든요. 은퇴하기까지의 과정을 쓰기로 했으니 그 흐름의 목차를 구상했습니다. 아내를 알게 되고, 연애시절을 거쳐 결혼하고, 함께 은퇴를 준비하고, 제가 먼저 은퇴를 하고, 아내가 이어서 은퇴를 하는 것. 대략 20개의 글이 나올 걸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글은 아내가 은퇴를 하는 날 함께 축배를 드는 내용으로 쓰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미리 준비한 내용이 모두 글로 쓰일 때까지 아내는 회사를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9월에 풀려나거든요. 앞으로 한 달이나 남았어요. 마지막 글은 일단 저만 축배를 드는 내용으로 발행하게 됐어요.




제 글의 첫 번째 구독자는 시인이셨어요. 자기소개에 그간 출간했던 책들의 목록도 있었습니다. 그분을 구독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어요. 제 글이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자랑했습니다.

‘시인이 나 구독 누르셨어! 프로 작가가 내 글을 읽다니!’

곧 그분은 저를 떠나셨어요. 두 번째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봐요.


처음 다음 메인에 올랐던 글은 #02. 카톡이 조용하잖아. (브런치 북을 준비하면서 제목을 ‘나의 꿈은 가정주부가 되는 거야.’ 로 수정했어요.)입니다. 퇴사 이야기인데, 사진과 제목 때문인지 ‘홈&쿠킹’ 쪽에 노출이 되었습니다. 늘어난 조회수가 마냥 좋았어요. 그러다 정신이 들었습니다.

‘낚였어!’

글을 읽으신 분들이 낚였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홈&쿠킹’ 탭에서 가마솥밥 짓는 법 사진을 보고 들어왔는데, 난데없이 퇴사 이야기라니.


낚으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홈&쿠킹’을 제가 선택하지 않았고, 사진도, 글에 가정주부란 말이 있어서 고른 거거든요. 그렇더라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잘 쓴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조회수에 비해 반응도 적었어요. 시인 분도 떠나셨고요. 이 글 이후, 제목과 사진에 조심스러워졌어요.


가장 많이 읽어주신 글은 #16. 돈 못 버는 10년, 집을 팔기로 했다.​ 입니다. 다음 메인에도 올랐고, 카카오톡 채널로도 소개되었어요. 채널에 소개되던 날, 많은 분들이 제 브런치를 구독해주셨어요. 그날 하루만 1,200분이 넘어요. 7월 31일입니다. 소개된 글은 16번째 글이었지만, 그때 이미 제 글은 21번째 글까지 나갔어요. 22번째인 마지막 글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어쩌지? 글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물 들어왔을 때 열심히 노 젓는 상상을 했어요. 시청률이 좋은 드라마가 그런 것처럼, 글을 좀 더 끌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이제 막 구독을 시작하셨는데, 마지막 글입니다! 하기가 죄송스럽기도 했고요.

‘어차피 글 계속 쓸 거잖아. 다른 매거진에서 계속 써.’

그렇네요. 무언가 결정하기 힘들 때에는 아내의 말을 듣는 게 나중에 후회 안 하더라고요.




주변에서 저와 비슷한 선택을 하시는 분들을 보지 못했어요. 늘 응원보다는 걱정이 먼저였어요. 저의 선택이 철없는, 세상 물정 모르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 주셨어요. 비슷한 생각, 비슷한 삶을 사시는 분들도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모든 분들이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내 편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요. 저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이제 다음 매거진에 글을 쓰려고 해요. 제가 살아가는 모습과, 제가 하는 생각들, 그리고 22개의 글에서 다 하지 못했던 과거의 얘기들이 좀 더 들어갈 수도 있겠네요. 근데 아직 매거진의 이름을 정하지 못했어요. 며칠째 고민 중입니다. ‘하마터면... ’이나 ‘경로를 이탈...’ 같은 멋진 걸로 하고 싶은데, 역시나 제 능력이 부족하네요.


혼자 놀던 놀이터에 많은 분들이 와 주셔서, 함께 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22화 이른 은퇴 이후의 하루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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