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민현 May 21. 2020

#02. 카톡이 조용하잖아.

마지막 출근일은 수요일이었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부처님 오신 날, 근로자의 날이었고 이어지는 주말까지의 연휴 동안 아내와 함께 보냈다. 하루는 처가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했고, 하루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산을 찾았다. 주말은 평소의 주말과 다르지 않았고, 퇴사 이후 출근을 하지 않는 첫 번째 날인 오늘은 아내가 건강검진이 있어서 휴가를 내었다.

‘아직 퇴사 기분이 안나. 그냥 긴 주말을 보내고 있는 거 같아.’

라고 했더니 아내가 평소 주말과 다른 점을 찾아냈다.

‘카톡이 조용하잖아.’


아침에 출근하는 아내를 보내고 혼자 남은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집안일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퇴사가 실감 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직 그 시간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내일은 어린이날이고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은 아내와 함께 대전 여행과 계룡산 등반을 하기로 했는데 계룡산의 영험한 정기를 받고 복권을 사기로 했다. 다음 주 월요일이 되어야 출근하는 아내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할 것 같다.


집에서 혼자 보낼 날이 그리 길지는 않다. 아내는 6월 말 즈음에 회사에 퇴사 통보를 하겠다고 한다.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면 가정주부로 보낼 시간이 두어 달 정도 된다. 회사에 퇴사를 하겠다고 말한 이후로 퇴사 과정은 섭섭할 정도로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어서 회사에서 쉽게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된다면 가정주부의 시간은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아침밥을 차려주겠다고 했다. 아침밥은 간단한 토스트나 샐러드가 아닌 매일 바뀌는 따뜻한 국과 반찬에 갓 지은 밥으로 준비하겠다고 했다. 돈 버는 가장을 위해서 매일 정성껏 준비한 아침밥을 내어주겠다고 했는데 그리 기대하는 눈치도 아닌 듯하고 출근하기에 바쁜 아내가 그 귀한 아침시간을 나에게 내어주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직장생활 내내 둘 다 아침밥을 먹은 적은 없긴 하다.


‘나의 꿈은 가정주부가 되는 거야.’

라고 연애할 때 농담처럼 얘기하곤 했다.

‘나는 일 하는 게 버거운데 넌 재밌어하잖아. 그러니까 너가 가장이 되고 난 내조를 하는 거지.’

아내는 이런 대화를 재미있어했다. 어릴 때 하던 역할 바꾸기 놀이처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은 많았다. 회사는 싫더라도 다녀야 하는 곳이었다. 꿈이 가정주부라고 말했던 건 하기 싫은걸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마지막 출근일은 수요일이었고, 꿈이 이루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01. 퇴사를 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