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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May 25. 2020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

아내는 내가 서른네 살일 때 처음 만났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고 적응기간을 거친 후, 첫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다. 아내도 그 프로젝트의 일원이었다. 아내는 나보다 여섯 살이 어렸는데, 어린 나이에도 회사에서는 이미 일 잘하는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이 있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나에 비해 아내는 함께 일하는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 냈다.


프로젝트는 완료일이 정해져 있었고 촉박했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 야근이 이어졌다. 완료일이 다가올수록 하루 중에서 팀원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팀원들과도 점점 친해졌다.


그 당시 나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조금씩 하고 있었다. 서른네 살이 되기까지 경험한 몇 번의 연애는, 내가 가족을 이루고 가장의 위치에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만 굳어지게 만들었다. 연애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거라고 되네였고, 혼자 사는 삶은 어떨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 사는 삶은 제법 괜찮아 보였다. 어차피 사람들과 어울리는걸 힘들어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했으며, 여행도 곧잘 혼자 다니곤 했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고 결론 내리기를 방해하는 중요한 한 가지 요소가 있었다.

‘50대 이후에도 괜찮을 것인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기간에 몇 번의 회식자리가 있었다. 회식자리에서 하는 대부분의 대화는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지만, 간혹 사적인 이야기들도 오고 갔다. 나의 이런 고민도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되곤 했다.

‘싱글타운을 만들어서 함께 사는 건 어때요?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하잖아요. 혼자 살다가 나이 들어서 외로워지면 싱글타운에 모여서 사는 거죠’

‘지금 하루 종일 보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나중에 실버타운에서까지 우리들 만나야 하는 거예요?’

‘아니 실버타운이 아니라 싱글타운요! 결혼한 사람은 안 받을 거예요.’

팀원들은 내 고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내는 나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늘 친절했고 웃었다.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인 대화를 해도 즐거웠다. 다른 팀원들보다 아내와 점점 더 친해졌고 업무와 상관없는 대화도 조금씩 하게 됐다. 서로 비슷한 성향이 둘 사이를 더 가까워지게 했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이미 아내도 읽었고, 내가 좋아하던 노래를 아내가 먼저 흥얼거리기도 했다. 둘 다 막내로 자라면서 느꼈던 막내의 설움만으로도 몇십 분씩 대화가 가능했다.


문제가 많든 적든 간에 프로젝트는 결국에는 완료된다.


함께 했던 팀원들은 각각 새로운 프로젝트로 흩어졌다. 아내도 나와 다른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더 이상 함께 일하는 팀원이 아닌데도 서로 얘기하는 시간은 더 많아졌다. 회사 밖에서 따로 만나는 시간도 늘었다. 회사가 아닌 곳에서 만난다 하더라도 직장 동료일 뿐이었다. 썸을 타는 사이이거나 연인 사이에서는 굳이 하지 않을 구구절절한 서로의 과거 연애 이야기를 했고, 자신을 보기 좋게 포장하지 않고 서로 본연의 모습으로 대했다. 직장 동료일 뿐이었으므로 헤어질 때 집까지 데려다 줄 필요도 없었다.


썸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데 만날 때마다 늘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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