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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Aug 03. 2020

이른 은퇴 이후의 하루 일과.


5월부터 회사를 다니지 않았으니, 이제 세 달 정도의 시간을 온전히 나의 시간으로 채우고 있다. 감사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가끔 연락 오는 친구들은, 일 안 하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나 엄청 바빠. 할게 너무 많아.’

대충 나의 하루 일과를 얘기해 주더라도, 그게 바쁜 일상인지, 직장인인 친구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내는 가끔 관심이 있을만한 뉴스 링크를 카톡으로 보내준다.

‘이거 봤어?’

모두 안 본 것들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일하다 딴짓을 많이 하는 내가 뉴스 링크를 던졌었다. 하지만 요즘은, 시간을 때우려는 이유로 핸드폰을 열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아내에게 던질 게 없다.




평일은 약속이나, 다른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비슷하다. 주말은 아내와 나들이를 간다던가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평일의 일과를 간략히 적어 보자면,

AM 8:00

하루의 시작. 라디오를 켜면, 장성규의 텐션 높은 목소리가 나온다. 커피를 내려 마신다. 몸은 일어났지만, 정신도 함께 깨어나는 데는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 듯하다.

AM 9:00

근처 공원에서 달리기를 한다. 5km를 뛴다. 처음엔 죽을 것처럼 힘들었는데, 지금은 익숙해졌는지 그냥 힘들다. 뛰고 난 후,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는 아내의 조언에 따라, 우유를 큰 잔에 따라 마시고, 씻는다.

AM 10:30

영어 공부를 한다. 유튜브에 ‘Speak English With Vanessa’라는 채널을 듣는데, 아직은 듣기 위주로 하고 있다. 조금씩 뭐라고 하는지 들린다.

AM 12:00

점심을 먹는다. 처음엔 밥, 국, 반찬을 반드시 차려 먹으려 했는데, 요즘엔 라면도, 3분 카레도 먹긴 한다. 아무래도 혼자 먹는 식사라 좀 게을러진다.

PM 1:00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다. 글쓰기 초보자라 그런지, 읽고 있는 책이 브런치 글쓰기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08. 나 조금만 기댈게.​ 와 #09. 아내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은 김훈 님의 에세이 책을 한참 읽을 때 쓴 글이다. 내가 쓴 글인데도, 다시 읽어보면 낯설다. 능력은 따라주지를 않는데, 마음만 영향을 받았다. 요즘은 김훈 님의 책을 읽지 않는다. 브런치에 글 쓰는 동안에는, 읽고 싶어도 참으려 한다.

PM 3:00

그날 해야 할 집안일을 한다. 청소와 설거지는 매일 하고, 빨래는 좀 쌓여, 눈에 보이면 한다. 은행업무, 장보기 등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 것 같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대청소를 하는 목요일은 시간이 좀 더 걸린다.

PM 4:00 

동네 카페에 가서 브런치 글을 쓴다. 처음엔 집에서 썼는데, 너무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바깥에도 나갈 겸 카페로 간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다. 학생들 사이에 껴 있는 게 조금 민망해서,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도록 옷차림에 신경을 쓰긴 하는데, 별 의미 없다. 요즘은 이 시간이 가장 재밌다.

PM 6:00 

저녁을 먹는다. 저녁은 주로 동네 근처의 식당에서 사 먹는다. 최근에는 생선구이집을 자주 간다. 아내가 생선을 좋아하지 않아 못 가던 곳이다.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9월이면 아마 저녁도 집밥을 먹게 될 것 같다.

PM 7:00

아침에 뛰었던 5km의 공원길을 걷는다. 운동의 의미는 아니고, 천천히 걷는 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에 좋다.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무언가가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여름, 늦은 해가 질 때라서 하늘이 이쁘다.

PM 8:30

책을 마저 읽거나, 브런치 글을 더 쓰기도 한다. 이때는 살짝 졸릴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30분 정도 침대에 눕는다.

PM 10:30

아내가 퇴근하고 오는 시간이다. 회사일을 아내 혼자 다하는 것 같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아내가 늘 안쓰럽다.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맥주 한잔을 한다. 안주는 아내가 은퇴할 때까지는 아내 입맛에 맞춰주려 하고 있다. 가지구이, 도토리묵무침, 호박전, 감자전 등등.

AM 0:30

잠드는 시간.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는 책을 좀 더 보거나, 브런치 다른 작가님의 글을 읽는다.


두 달을 조금 넘게 이 일과를 유지하고 있다. 처음 일주일 정도 시행착오를 거치고, 조금씩 시간이 섞이다가 이런 일과로 굳어졌다. 사람을 자주 만나지 않기 때문에 방해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저 사이에 끼워 넣을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글 쓰는 시간을 줄이고 그림 그리는 시간을 넣어야 하는데, 아직 글쓰기 초보라 쓰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8월에는 그림 그리는 시간을 어떻게든 끼워 넣어보려 한다.




책상 정리를 하던 중에, 예전 회사 다닐 때 쓰던 노트를 발견했다. 일기처럼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적던 노트였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땐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2014년 1월에 쓴 글이 눈에 띄었다. 출근하기 전 아침시간과, 퇴근 후 저녁시간에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간단한 메모였다. 물론 글로만 적었었고, 실천한 기억은 없다.

아침마다 달리기, 도서관에서 책 읽기, 그림 그리기, 영어공부, 블로그에 글쓰기.

그때에도 이런 것들을 하고 싶었구나. 웃음이 나왔다. 아내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나 2014년부터 원했던 삶을, 지금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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