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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ul 09. 2020

돈 못 버는 10년, 집을 팔기로 했다.

밥벌이가 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짧은 호흡으로 서둘러 찾으면, 지금까지 했던 일과 비슷한 일들만 눈에 보일 것 같았다. 당장 돈이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이를테면 운동을 한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여행을 다닌다거나 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기로 했다. 그렇게 쌓이는 시간은, 하루하루 버텨낸 것 만으로 만족하던 때의 시간과는 분명히 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회사에 엮이지 않아 자유분방한 일상이 5년, 10년 쌓이면, 지금은 잘 알 수는 없지만, 그 긴 시간에서 만들어지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 건 모든 게 다 비용이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 최대 몇 년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했다. 2인 가구 최저생계비를 찾아보니 179만 원이라고 나왔다.

‘179만 원 안에 부모님 용돈은 포함 안 되겠지?’

양가 부모님들의 용돈을 한 달에 50만 원 드렸었다. 일을 그만둔다고 드리던 용돈을 끊을 수는 없었다. 최저생계비에 부모님 용돈 50만 원을 더하면 230만 원이었다. 거기에 예상하지 못해 발생할 수 있는 예비비를 포함해 한 달에 250만 원을 쓰는 걸로 정했다.


‘한 달에 250만 원씩 쓴다고 하면 1년이면 삼천, 10년이면 3억이다.’

10년 후면,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55세가 된다. 물론 적은 돈이지만 수입이 생긴다. 10년 동안 우리가 아무런 밥벌이도 찾지 못한다고 가정했을 때 필요한 돈은 3억이었다. 그 큰돈이 나올만한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결혼 후 처음 살던 집은 매일 등산하는 기분이었다.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언덕길을 20분 동안 걸어야 했다. 등산을 매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2년이 지나고, 새로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전셋집을 들어갈 때, 모아놓은 돈이 부족해서 회사 대출을 받았었다. 대출 조건으로 신용카드 하나를 만들어야 했고, 급여통장을 바꿔야 했다. 신용카드야 만들겠지만, 10년 넘게 써오던 급여통장을 바꾸는 게 귀찮았다.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이 모두 그 통장 하나에서 처리가 됐다. 급여통장을 안 바꾸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물어봤다.

‘1년 후 대출 연장이 거절될 수도 있어요.’

정든 급여통장을 살리려면, 1년 안에 대출금을 모두 갚아야 했다.


둘의 월급날에 1순위로 빠지는 돈은 대출금을 12로 나눈 만큼의 돈이었다. 살림살이는 그만큼의 돈을 빼고 남는 걸로 해야 했다. 처음엔 좀 힘들었는데, 그럭저럭 적응이 되었다. 아내와 나는 둘 다 비싼 무언가에 관심이 없었다. 사치라고 해봐야 아내의 경우, 책을 남들보다 좀 많이 산다는 것, 나의 경우, 그릇이나 조리도구에 욕심이 좀 있다는 것 정도였다.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살다 보니 1년이 지난 후에도 내 급여통장은 살아남았다.


잘 쓰지 않는 생활은 대출을 모두 갚은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통장에는 예전 받았던 대출금을 12로 나눈 만큼의 돈이 매달 쌓여갔다. 재테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나 나나 돈 불리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통장안에서 원금 그대로 잠들어 있는 돈을 바라보는 게 불편했다.

‘대출 갚으면서 살 때가 편했던 거 같아.’

재테크 고민을 하지 않으려면 대출을 받으면 됐다. 다시 대출을 받으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더 비싼 전세금을 내야 하는 곳으로 이사하든가, 내 집 마련을 하든가.


나는 회사 근처의 전세금이 더 비싼 곳으로 옮기자고 했다. 아내는 우리가 살 집을 사자고 했다. 나는 행동이 굼뜨는데, 아내는 일처리가 빠르다.

‘이번 주말에 부동산에 집 보러 간다고 얘기해놨어.’

내가 전세대출은 어느 정도 받아야 한동안 재테크 걱정을 안 할까를 생각할 때, 아내는 부동산 예약을 마쳤다.


아내를 따라가서 본 집은 교통이 좋았고, 지은 지 5년 된 25평 아파트였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큰 공원도 있었다. 둘이 살기에 적당해 보였다. 조건이 괜찮은 대신 가격이 만만찮았다. 우리가 한도라고 생각했던 금액을 훌쩍 넘었다.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대출을 받아야 했다. 둘 다 평생 그렇게 비싼 무언가를 사 본 적이 없었다. 무리해서 샀는데 집 값이 떨어지면 어쩌나 고민이 됐다.

‘그냥 이 집 사자.’

가격만 제외하면 모든 게 맘에 들었다. 여기에서 살면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다. 10년을 살아도 괜찮을 듯싶었다.

‘집값 떨어지면 평생 여기서 살자. 그럼 되지 뭐.’

아내는 일처리가 빠르지만, 난 결단이 빠르다.


집을 사면서 받은 대출금은 점점 줄어들었다. 빚 갚는 걸 최우선으로 살았다. 미니멀 라이프라며 소개되는 삶은 우리가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갚을 대출금을 미리 떼 놓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니 저절로 미니멀 라이프가 됐다. 집값은 다행히 우리가 샀을 때 보다 올랐다.




버는 것 없이, 10년 동안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3억이라는 큰돈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면 마련할 수 있었다. 직장이 없는데 굳이 비싼 수도권에서 살 이유는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고, 지방으로 내려가 저렴한 집을 새로 구하기로 했다. 그 차액이 우리가 기대하는 3억이 되어준다면 좋겠지만, 만일 안 되더라도, 안 되는 만큼 좀 더 미니멀 해지면 문제없을 것 같았다.


지방으로 내려가 살기로 하면서, 여행 스타일도 바뀌었다. 놀기 좋아 보이는 곳이 아닌, 살기 좋아 보이는 곳이 여행지가 됐다. 시간이 날 때마다, 둘이 앞으로 살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이번 달에는 통영을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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