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온 편의점 점원은 말이 많았다. 이전의 나이가 좀 있던 남자 점원과는 달랐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점원은 편의점 마크가 찍혀 있는 녹색 조끼를 단정하게 입고 미리 교육받은 듯한 응대 매뉴얼을 따랐다.
“삼각김밥 두 개, 녹차 하나. 다해서 3,900원입니다.”
재하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점원에게 건넸고 점원은 건네받은 카드를 리더기에 꽂았다.
“20원 추가되는데 봉투에 넣어 드릴까요?”
갑작스런 질문에 재하는 잠깐 머뭇거리다 고개를 가로젓고 삼각김밥과 녹차를 손으로 잡아들었다.
“결제됐습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재하의 답변이 또 한 박자 늦었다. 이전 점원은 하지 않았던 질문들이었다. 이전 점원은 계산대에 물건을 내려놓고 나서야 마지못해 핸드폰에서 눈을 뗐고 봉투나 영수증 따위는 편의점에서 아예 취급하지 않는 대상인 듯 질문을 생략했었다. 재하도 그런 간결한 응대에 익숙해져 있었다. 재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점원이 건네준 카드를 지갑에 넣고 돌아서려는데 점원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재하가 답례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숙였지만 점원은 재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음 손님을 상대했다. 정말 또 오기를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 별다른 의미를 담지 않은 말. 말이긴 하지만 그뿐인 말. 하지만 그런 껍데기뿐인 말이더라도 온전히 재하에게만 향했던 말은 오늘 하루 몇 없었다. 재하는 한 손에 삼각김밥과 녹차를 들고 다른 손으로 문을 밀어 편의점을 나왔다.
재하가 다니는 회사는 제법 규모가 큰 IT 회사였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두 번째 회사였고 이제 5년을 넘기고 있었다. 재하가 맡은 업무는 OTT 관련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국내에서 넷플릭스가 성공을 거두면서 회사는 OTT 서비스에 뒤늦게나마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부랴부랴 TF 팀을 꾸렸다. 급하게 조직된 TF 팀에 재하가 자원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는 이제 아홉 달을 넘기고 있었다. 예정대로였다면 지금쯤 ‘가이아’라는 이름의 새로운 OTT 서비스가 넷플릭스를 위협해야 했지만 지금까지 진행 속도로 볼 때 그런 일이 벌어지려면 넉 달은 더 지나야 했다.
재하의 명함에 적혀있는 팀 이름은 서비스 개발 2팀이었다. 콘텐츠 본부에 속해있는 서비스 개발 2팀은 재하를 포함해 모두 5명이었다. 팀원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가 따로 있었다. 때문에 같은 팀으로 묶여있다 하더라도 팀원들끼리 업무적인 대화를 하는 일은 드물었다. 명함에 서비스 개발 2팀이라고 적혀있는 사람들 중 재하에게 말은 건네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입사한 지 2년이 조금 지난, 그래서 이제는 신입 티를 완전히 벗어낸, 팀에서 가장 어린 직원이었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면 오리엔테이션 때 회사에서 나누어준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퇴근할 때까지 벗지 않았는데 여름에는 반팔티 위에 입었고 겨울에는 입고 온 패딩을 대신해 입었다. 후드티는 서비스 개발 2팀에서 출근이 가장 빨랐다. 출근하면 이제는 색이 어느 정도 바랜, 그래서 더는 신입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다른 팀원들이 출근하기를 기다렸다. 팀원이 모두 출근한 것을 확인하면 후드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할래요?”
후드티가 커피를 외치며 자리를 한 바퀴 돌면 팀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는 아이들처럼 후드티를 따라 한층 아래 사내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얼마 후, 다시 후드티를 선두로 줄 지어 자리로 돌아온 팀원들은 들고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졸린 머리를 깨우는 신비의 영약처럼 아껴 마시며 각자가 맡은 프로젝트 업무를 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5명이 다시 모였다. 식당 자리는 4인 테이블이 대부분이어서 어차피 두 그룹으로 나누어 앉아야 하는데도 팀원들은 함께 움직였다. 그들이 매번 가는 식당은 세 곳 중 하나였다. 부대찌개집, 순대국밥집, 아니면 메뉴를 딱히 고를 필요 없이 머릿수만 알리면 그날의 국과 반찬이 차려지는 백반집. 그렇게 점심 한 끼가 8,000원을 넘지 않는 곳을 쳇바퀴 돌듯 돌았다.
언젠가부터 재하는 그 무리에 끼지 않았다. 재하가 빠지면 서비스 개발 2팀은 식당의 4인 테이블에 최적인 인원이 될 테고, 두 그룹으로 나뉘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을 텐데도 후드티는 점심때마다 재하의 자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식사 가시죠.”
11시 50분. 늘 같은 시간이었다. 재하는 대답을 기다리는 후드티에게 거절의 의미로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후드티는 다른 팀원들 자리를 돌아다니며 채근했다.
“지금 안 나가면 식당에 자리 없어요.”
서비스 개발 2팀은 늘 없는 듯 차분하고 조용했다. 팀원들끼리 있을 법한 어떤 사소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서로가 맡은 프로젝트가 달라 부딪힐 일이 없었다. 대화가 없으니 괜한 오해도 없었다. 재하는 그런 팀에 속해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굳이 와서 말을 붙이는 후드티가 있긴 하지만 그래 봤자 하루에 단 두 마디뿐이었다. ‘커피 할래요?’ 와 ‘식사 가시죠.’
편의점을 나온 재하는 회사 앞 도로 건너편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더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잔뜩 녹이 슨 운동기구 몇 개가 공원 왼편으로 줄 지어 있었고 오른편에는 공원이 생기기 훨씬 전에 심어졌을 듯한 울창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사이로 파란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벤치가 놓여 있었다. 공원 흙바닥은 며칠 째 이어진 비로 질척였다. 올해 장마는 예년에 비해 유난히 길었다. 한 달 가까이 하늘을 차지한 낮고 어두운 구름이 비를 뿌렸다. 비는 한낮이 되면서 잠시 그쳤고 두꺼운 구름의 갈라진 틈새로 조금이나마 오랜만에 햇살이 번졌다. 재하가 고인 물웅덩이를 피해 느티나무 사이 벤치로 다가갔다. 손으로 물기를 대충 닦아내고 앉으려는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맞네. 재하.”
현우였다. 회색 슈트와 잘 어울리는 검은 구두가 두꺼운 구름 틈새로 겨우 삐져나온 햇빛에 반짝였다.
“근처 지나다가 너 얼굴이나 볼 겸 전화하려는데 마침 네가 딱 보이더라.”
현우가 벤치에 털썩 먼저 앉고는 비어있는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재하는 현우가 두드렸던 위치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물기를 닦고 앉았다. 현우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졸업할 때까지 계속 같은 반이었다. 1학년 때엔 관심이 없다가 2학년 때 서로를 알아보았고 3학년이 되어서도 같은 반에 배정되면서 친해졌다. 재하가 재수를 하고 현우가 대학에 가면서 둘의 시간이 엇갈렸지만 그렇다고 둘의 사이까지 멀어지지는 않았다. 10년이 넘도록 재하는 친한 친구를 묻는 질문에 현우를 첫손가락으로 꼽았다. 최근 들어 그 손가락이 머쓱해지긴 했지만.
“소진 씨는 어때?”
현우의 물음에 재하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먼저 집을 나서던 소진을 떠올렸다. 잘 다녀오겠다는 눈인사라도 할까 싶어 물끄러미 소진을 바라봤지만 소진은 그런 재하의 눈을 피했다. 현관문이 닫히고 더는 소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재하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함께 눈을 마주쳐 본 게 언제였더라.
“나 어쩌면 이혼할지도 모르겠다.”
이혼을 꺼내면서 재하는 숨을 잠시 멈추고 현우를 바라봤다. 현우의 상처는 다 아물었을까. 늘 재하가 현우보다 먼저였다. 현우에게 담배와 술을 가르친 게 재하였다. 담배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함께 다니던 독서실 옥상에서였고 술은 수능시험 결과 발표가 나온 날 저녁 동네 놀이터에서였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생겼던 세상의 호기심에는 늘 재하가 먼저 발을 들였고 재하를 거쳐 현우에게로 이어졌다. 하지만 원하던 대학에 떨어진 재하가 재수를 하기로 결심하면서 현우가 재하를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갈 곳 몰라 헤매던 대학생활, 찬란하게 눈이 멀었던 첫사랑, 도피처였던 군대, 이제 당당한 사회 구성원이라며 기뻐했던 취업, 그리고 결혼, 두 번째 결혼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겪은 이혼까지 모두 현우가 먼저였다.
느닷없는 이혼이라는 말에 현우가 재하 쪽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런 현우를 한번 바라본 재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소진이 나를 없는 사람으로 대해.”
서로 말없이 지낸 지 1년쯤 됐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했던 말이 당신 너무 지루해, 였어. 뭔가 변화를 주어 보려는, 둘 사이의 관계를 개선해 보려는 눈빛이 아닌, 그런 거 있잖아. 이제는 정말 그만두겠다는, 그냥 툭 하고 내려놓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야. 그 표정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리려 애를 써 봤는데 소진에게선 늘 벽을 보는 느낌이었어. 출입문도 창문도 없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그런 단단하고 높은 벽.
“너 이런 말 먼저 꺼내는 거 처음 본다.”
“그랬나? 내가 많이 답답했나 보다.”
잠시 갈라졌던 구름의 틈새가 메워지면서 벤치에 드리우던 느티나무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맞은편 녹이 슨 운동기구 앞에서 서성이던 50대 남자는 더는 사용할 수 없는 운동기구라는 사실을 깨닫고 공원을 벗어났다.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은 바닥과 구분이 안될 만큼 탁했다.
“그래서 어쩔 생각이냐.”
“글쎄. 이제 놓아주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재하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적었다. 그 몇 되지 않는 선택지마저도 재하 혼자서 풀 수 있는 건 없었다. 소진과의 관계는 1년의 시간을 들이면 원점에서 다시 한번 도전의 기회가 주어졌던 대학 입시와는 달랐다. 재하가 목소리 톤을 높여 자신에게 향했던 화제를 현우에게 돌렸다.
“넌 어때?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어?”
현우는 벤치를 둘러싼 느티나무에 자신의 말을 세기기라도 하려는 듯 크고 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
“응, 있어. 아주 매력이 넘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