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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cos Nov 28. 2021

탐진치

탐진치는 불가에서 경계하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말한다. 인간을 번뇌에 빠뜨리는 업의 덩어리를 일컬으며 이것이 쌓이면 재앙을 맞게 된다.


# 박대통령은 70년대 초반 10월 유신을 감행할 무렵 제산 박재현에게 사람을 보냈다. 유신을 하려고 하는데 유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이에 幽(저승 유) 神(귀신 신) 이라며 담배갑에 끄적대었다. 만약 유신을 하면 그 결과는 저승의 귀신이 된다는 무서운 의미의 예언이었다. 이후 제산은 남산 지하실에 끌려가 고문당한다. 박통은 장기집권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유신' 이라는 체제에 집착을 했으나, 정작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후계자를 양성하지는 못했다. 과욕을 부린 탓에 유신을 함께 일궈나간 심복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만다. 


# 김재규는 70년대 초반에 도계 박재완을 찾아가 자신의 미래 운명을 점쳐보았다. 그때 나온 내용 가운데 하나가 '풍표낙엽 차복전파 (楓飄落葉 車覆全破) 라는 구절이었다. "단풍잎이 떨어져 낙엽이 될 즈음에 차가 엎어져서 전파된다' 라고 해석되고 79년 운세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는 점이다. 이 문구를 전해 받은 김재규는 1979년이 되자 차를 아주 조심했다. 지나고 나서 김재규의 인생을 놓고 보면 '차복전파' 에 대한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車는 자동차가 아닌 차지철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全은 전두환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역술계에서는 해석한다. 차지철은 죽을 때 화장실에서 엎어져 죽었고 (車覆), 김재규는 전두환에게 격파 당했기 (全破) 때문이다.  


# 유신정권 당시 정보부장을 지내며 권세를 휘둘렀던 이후락은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유신세력들과 함께 구금된 후 재산을 몰수 당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운이 다했음을 직감한 그는 경기도 이천 도자기 공장으로 숨은 다음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락은 잘 나가던 전성기 때에도 여러 고승이나 도사들을 찾아다니며 수시로 앞날 운세에 대해 자문하곤 했다. 그가 만약 분수를 모르고 움직였다면 신군부에 의해 언제 제거되도 이상하진 않았을 것이다. 유신 실세들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과 달리 그는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세가들도 운명의 파도 앞에선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전국에 내노라 하는 도사들을 찾아가 답을 얻으려는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탁조차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걸 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도 운이라면 운일 것이다. 하지만 욕망에 휩싸이면 신탁조차 허투루 들리고 실책을 범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유신정권 권력 최정상에 섰던 이후락씨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귀의한 것은 참으로 대단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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