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터줏대감처럼 존재하던 오래된 옷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 이후 주말 동안 건물을 부수고 또 부수더니 몇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키던 작은 3층짜리 건물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임대업과 부동산이 재테크 수단이 되면서, 작고 오래된 건물들은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부서지고 그 자리에는 더 높은 건물이 들어선다. 아마 한 층이라도 더 올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투자일 것이다. 아쉽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인 만큼 이 건물 앞 작은 앞마당에는 큰 나무 3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크기를 보아서는 몇십 년은 된 나무 같았다. 아마 오래된 건물과 함께 자리를 지켰기에 저렇게 큰 나무가 도시 한복판 골목에 온전히 보존되었을 것이다.
지하조차 없던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제 흙바닥을 훤히 드러낸 체 공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옆 크고 큰 나무 3그루는 무참하게 부서져있었다. 톱으로 자르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튼튼했던 나무는 아마 포클레인과 같은 기계를 사용하여 잘라낸 듯했다.
순간 걸음이 멈춰졌다. 그리고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돈 몇 푼을 위해 그 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을 잘라버렸다.
우리는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없지만, 나무의 시간은 값으로 매겨질 수 있다. 그래서 원예 시장에서는 나무가 오래되고 클수록 값이 많이 나간다.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그 나무를 키우기 위한 물 값과 나무를 키운 주인의 노동 값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오래되고 큰 나무는 원예 시장에서 살 수도 없다. 그만큼 값어치가 나가는 것이다.
건물주 혹은 건축가는 저 나무를 없애 몇 평을 더 늘려 더 많은 월세를 받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무들은 평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방해되는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저 나무들을 살려 더 가치 있는 건물을 만들었을 것이다. 저런 큰 나무를 바로 옆에 둔 건물은 주위에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 한복판, 심지어 역세권인 저 좋은 자리에 큰 나무가 3그루나 옆에 자리한 건물은 누가 봐도 탐이 날 것이다. 아마 저 나무들을 살림으로써 저 건물은 더욱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나무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전했다.
하지만 저 나무들의 가치를 모르는 건물주나 땅 주인에게 더 진심 어린 유감을 표한다. 단순하게도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눈 앞에서 더 많은 돈을 잃는 선택을 스스로 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주식이 하루 사이 휴지 조각이 되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현금 뭉치를 잃어버린 것처럼 눈 앞에 보이는 손실만이 돈을 잃은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나무들이 살아있다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태풍이 오면 바람을 막아줄 것이다. 눈이 오면 눈이 쌓인 나무를 보며 어떠한 그림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해 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눈앞의 이익만을 위하여 진짜 가치 있는 것들을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결국 시간이 지나 진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는 자기가 놓쳐버린 그 순간을 후회하며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정말 슬프게도 시간을 돌리거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살 수가 없다. 나는 당장 눈 앞에 이익의 유혹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할 때면, 이 사실을 몇 번이고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