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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y Oct 24. 2021

식물도 나도 매일 자란다

Revised on Oct 24, 2021

기다림이라는 것은 참 힘들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은 나를 지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씨앗을 심었다면 보이지 않는 흙속에서부터 싹이 틀 때까지 발아를 기다려야 하고, 그 기다림 끝에 싹이 틔여 발아를 한다면 이제 여린 새싹이 식물의 형태를 갖출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겨우 틔운 새싹이 마르거나 잎을 틔우지 못한다면, 나는 또다시 처음부터 끝 모를 기다림을 다시 시작한다. 


결국 또 기다림은 반복되며, 다시 시작된다. 


자라지 않을 것만 같던 정말 어린 은쑥 새싹 (출처: 나)




이 과정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꽃시장이나 동네 꽃집에서 이미 키워진 화분을 산다. 이미 우리는 식물의 형태를 갖춘 화분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기다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기다림을 겪어야 한다. 때 맞춰 물을 주고, 성장에 방해되는 가지를 쳐준다. 하루가 지나고, 몇 주가 지나면 우리는 기다림의 연속에서 새 잎이라는 기다림이 준 기쁨을 얻는다. 


결국 나의 삶과 식물을 키우는 것은 기다림은 연속이지만, 이 중 헛된 기다림은 없다. 기다림 속에서도 하루를 버티는 힘을 키우고, 새 잎을 낼 자리를 만든다. 나도 식물도 기다림 속에서 성장한다. 기다림의 끝에서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졌다.



매일 조금씩 자라 이제 모습을 갖추어 가는 은쑥 (출처: 나)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열심히 물을 주고, 해를 보여주면 그에 보답하듯 꽃과 열매를 보여준다. 나의 삶에도 열심히 물을 주고, 해를 보여주다 보면 꽃을 보여 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저 깊은 흙속의 뿌리가, 줄기 아래 꽃봉오리가 지금은 기다림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작년  늦여름 자기 몸의 몇 배나 큰 꽃을 피운 나의 옥상의 조그마한 단모환 선인장


나는 선인장을 참 좋아한다. 선인장은 그냥도 아름다운데, 꽃을 피우면 더 아름답다. 꽃을 피우는 선인장은 참 많은데 나는 그중에서도 단모환의 꽃을 참 좋아한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몇 배나 되는 꽃을 너무나 아름답게 피워낸다. 어찌나 온 힘을 다했는지, 꽃이 핀 자리는 마지막 힘까지 쥐어짰다는 듯이 쪼그라들어있다.


정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애석하게도, 이렇게 온 힘을 다해 핀 꽃은 하루의 시작에 피기 시작하여 그날 저녁이면 지고 만다. 단모환은 하루 동안 저 꽃을 피우기 위하여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운 것이다. 너무 기특하고 이뻐서 말이라도 통하면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해주고 싶은데, 차마 선인장에게 말을 거는 내 모습이 쑥스러워 칭찬을 삼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고했어, 고생했어, 보고 싶어, 사랑해라는 말을 참 아낀다. 짧은 저 한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너무 많은 감정이 소비되나 보다. 그리고 후에는 직접 말해주지 못한 걸 후회한다.


나에게 오자마자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보여준 단모환 선인장 꽃을 며칠 전 잃어버렸다. 비 오는 날 비 보약 맞춰주고 해 쨍쨍한 날 오랜만에 햇빛을 보여주려 잠시 집 앞에 내놓았는데 단모환의 아름다움에 반한 누군가가 차마 이 아름다움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것 같다.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고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생각이나 고생을 했다. 올해 또 저 꽃이 피면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기에 더 속상했다. 누구보다 단모환의 꽃을 좋아해 주고 저 꽃의 가치를 알아줄 사람들이 이제 내 주위에 많아져 더욱 아쉬운 순간 있었다. 훔쳐간 사람을 원망하진 않는다. 제대로 두지 않은 내 잘못이다. 올해 꽃 피우면 수고했어 힘들었지 이제 좀 쉬어라고 제대로 말해주려고 했는데, 작년에 그 말을 하지 못한 것도 내 잘못이다.


이렇게 나도, 식물도 매일을 온 힘을 다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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