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꽃은 내년에 다시 피지 않는다
백합(Lily)은 강한 식물이다. 우리나라 어느 노지에 심어도 혹독한 겨울을 잘 보내고, 봄이 되면 누구보다 크게 자라 꽃봉오리를 올린다. 그리고 여름이 시작되면 어느 여름 꽃보다 향기롭고 웅장하게 꽃을 피운다.
하지만 사계절 내내 꽃을 피우는 식물도 있는 반면에, 백합은 아쉽게도 이렇게 여름에 한번 꽃을 피워 자신이 준비했던 모든 아름다움을 보여준 뒤에는 내년 여름까지는 꽃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백합은 내년에 다시 꽃을 보여준다. 따로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백합은 내년 봄이 되면 다시 열심히 꽃봉오리를 올려주고, 꽃을 피워 준다.
이것은 우리에겐 너무 다행이고 기쁜 소식이나, 슬프게도 백합은 꽃이 지고 여름이 지나면 목마른 가을과 추운 겨울을 혼자서 보내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동안 우리는 다시 백합을 잊는다. 우리가 백합을 기억하는 순간은 여름에 잠시 꽃을 피워주는 그 짧은 시간뿐이다.
백합은 강하니까, 백합은 관리를 안 해줘도 잘 자라니까, 백합은 내년이 되면 어차피 꽃을 보여줄 거니까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당연하다는 것에 안심한다.
내년에 백합에서 필 꽃은 올해 핀 꽃이 아니다. 올해 핀 꽃은 내년에는 다시 볼 수 없다.
같은 구근에서 자랐다고 해도, 올해 핀 꽃은 올해만 핀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감상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하고 기술을 쓴다 하더라도 백합의 꽃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지고 만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마찬가지다. 내일이, 내년이 있을 것이라고 안심하지 말아야 한다.
올해 백합은 올해 여름에만 기억될 수 있듯이, 올해 할 수 있는 일은 올해만 가능하다. 올해 하지 못한 일을 나중으로 미룰 순 있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하고 싶은 것들,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지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의 꽃이 져버리기 전에.
내일도 올 것이고 내일이 쌓여 내년이 오지만, 내년에 다시 꽃이 필 거라고 안심하지 말아야 한다. 혹여 흘려보낸 작년의 꽃이 그리울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