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이제 2년 가까이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길이 있다. 같은 길을 벌써 사계절을 두 번이나 꼬박 겪었다.
자전거는 20년 지기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이다. 고치고 또 고치고 바퀴를 몇 번이나 갈았는지 마지막엔 바퀴 바꾸는데만 10만 원이 들었는데, 고치는 분이 그 돈으로 새 자전거를 사라고 할정도였다.
겉이 허름하다고 나와 오랜 시간 함께한 자전거를 쉽게 바꿀 생각은 없다. 굴러만 가주면 된다.
이런 나의 오랜 친구 같은 자전거가 잠시 쉬는 날이 있다.
바로 비가 오는 날이다.
자전거보다 걸어가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미리 나왔는데도 도착지에 늦어버렸다. 자전거를 타며 빠르게 지나만 갔던 길들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보느라 걷다가 멈추고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걸어가야지만 보이는 것들이었다.
익숙한 골목을 들어서니, 골목의 골목 안 빌라 앞 화단에 주황색 백합이 피었다. 참나리 백합이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야생 백합꽃을 도시 한복판에서 보았다. 쨍한 주황색 꽃이 회색 콘크리트 벽 옆에서 더욱더 이질적으로 보였고, 그래서 더욱더 아름답고 특별해 보였다.
그리고 또 신기하게도 그 아래에는 도자리 꽃이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지난번 꽃시장에서 꽃이 예뻐 한눈에 반해 엄청 키워보고 싶었던 꽃이었는데, 아쉽게도 키울 곳이 없어 집었다 놓았다 수십 번 반복했던 꽃이었다.
나는 2년이나 이 길을 매일 다녔는데도, 이 아름다운 꽃들을 모르고 지나치고 있었다.
며칠 동안 먹구름처럼 어두웠던 기분이 저 꽃들 색처럼 밝아졌다. 이제 도라지 꽃이 보고 싶으면 잠시 이 길에 멈추면 된다.
아마 오늘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나는 또 정신없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을 것이다.
이제 금방 꽃이 지고, 또다시 여름이 지날 것이다. 그럼 나는 아마 내가 항상 다니는 길에 아름다운 참나리 백합과 보라색 도라지꽃이 있었는지 모르고 올해를 넘겼을 것이다.
매일을 달리다가도 가끔은 걸어보는 것이 좋다.
걷다 보면 지나칠 뻔한 것들에 잠시 멈출 수 있고, 혹여 그것이 나에게 소중한 것이라면 손을 잡고 함께 같이 앞으로 갈 수 있다.
결국 그것들이 나를 웃게 하여 조금 거칠고 구불거리 수 있는 나의 앞길들을 웃으며 지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