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이폰에 연결해서 노래 좀 녹음해 볼까 하는 설익은 생각에 인터넷에서 얼른 하나 구매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만 만약 다른 삶을 살 기회가 주어졌다면 아마도, 아니 분명히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 기타를 치며 손가락에 굳은살을 새겼고, 피아노는 중학교 때 누나가 치는 걸 보며 어깨너머로 익혔다. 클래식도 곡 이름은 다 못 외우지만 웬만한 곡들은 한 소절만 들어도 뒷부분을 다 따라 흥얼거릴 수 있었다. 라디오를 들을 때면 사연보다 노래를 기다렸고, 길을 걷다 누군가 버스킹을 할라치면 마치 내가 부르는 것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잘해라'하며 응원을 하곤 했다. 여적지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타를 치는 게 내 특기인지라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어서 핀 마이크를 주문했던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를 기다렸고, 배송이 됐다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뛰쳐나가 포장 봉다리를 뜯어재꼈다. 그리고는 최근 아내에게 욕을 바가지로 들어가면서도 의젓하게 구매한 아이폰에 핀마이크를 연결했다. 테스트 중, 아아, 하나 둘 셋... 녹음 어플을 켜고 마이크의 성능을 확인해 봤다. 그런데 녹음이 자꾸 끊겨서 '이상하다' 하며 창고에서 음침하게 칩거 중인 맥북에어를 꺼내와 먼지 후후 불어내고는 다시 마이크 테스트를 진행했다. 깨끗했다. 청명한 내 목소리는 꾀꼬리에 다름없었다. 딸아이의 갤럭시폰에서도 테스트를 거행했다. 역시나 끊김 없이 부드럽게 녹음이 잘 되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아이폰에서만 딱딱 끊기며 연결이 안 되는 것이었다. 기대가 컸던 나는 당장에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남기며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나만의 음악을 내가 가장 아끼는 아이폰에서 만들어 저장하고 듣고 싶었는데, 다른데선 다 작동이 잘되는 마이크가 딱 아이폰에서만 작동이 안 되는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내 노래 실력을 맘에 안 들어 한 아이폰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미안한데 그냥 녹음하지 마... 나도 힘들어... 자고로 노래는 들으라고 있는 거야...'
난 결심했다.
가장 가까이 두고, 가장 자주 손에 쥐던 아이폰에서만 내 목소리가 끊겼다. 마치 가장 친한 사람과의 대화가 유독 어긋날 때처럼. 뭐가 문제였을까?
원래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법 아닐까. 대충 아무렇게 '아아' 내뱉어도 '어어'하면서 알아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관계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잘 못된 일일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기대가 깊을수록, 오해는 더 날카롭게 파고들 수 있다는 것.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둘째 아들인 이반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예수도 그랬다.
그의 기적에 감탄하던 이들은 정작 타지에서 온 낯선 이들이었고,
고향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배척했다.
너무 익숙한 존재는 경이로울 수 없고,
가까운 관계는 때때로 사랑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에는 어느 강력한 마법사가 '술술마법'을 걸어 놓았음에 틀림없다. 프랑스길 780km를 걷는 동안 순례자들은 여행의 짐인지 인생의 짐인지 아무튼 한 짐씩 등에 짊어지고는 헉헉대며 걷는데, 그 와중에 모두가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주저 없이 꺼내게 된다. 부끄럼도 없다. 서론도 없다. 초면에 바로 팬티 색깔부터 공개하는 느낌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비밀, 아픈 과거, 인생의 고민거리들을 꺼내놓는다. 그리고 서로에게 진심 어린 조언과 경험담을 나누고 난 뒤 또 자연스레 헤어진다. 매일 같이 눈앞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상쾌한 공기를 만끽하며, 또 격 없이 속마음을 나누며 그간 마음에 쌓아왔던 묵은 때를 시원하게 벗겨낸 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다들 눈물을 흘린다. 시원섭섭함이랄까.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와서 주위를 둘러보면 사뭇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는 허울 없이 나눌 수 있는 내 속 이야기를 오랜 친구 혹은 가족과 나누려 할 때에는 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까.
음악을 나누듯이, 우리는 가장 소중한 감정들을 가까운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것을 특별히 정서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단절을 종종 경험한다. 분명 같은 공간에서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데도 신호가 끊긴다. 애써 조율해 보지만 어딘가에서 자꾸 미세한 잡음이 섞인다. 아이폰이 내 목소리를 무심하게 잘라내듯,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도 예고 없이 뚝 끊긴다. 말이 끊긴 자리에는 서운함이 남고, 설명하지 못한 감정들은 어느새 딱딱해져 버린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제품이 아닌지라 작동이 안 된다고 환불 버튼을 눌러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며 설정을 뒤적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끊김 없이 매끄러운 연결’이 아니라,
끊겨도 다시 이어 보려는 마음이 아닐까.
아쉽지만 핀마이크는 떠나보냈다. 그것은 내 목소리, 경험, 혹은 내 마음을 전달하려는 도구에 불과했으니까. 그렇지만 아이폰은 여전히 내 손안에 있다. 가까운 것들이 늘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소중해서 함께한다기보다는, 늘 함께이기에 소중한 존재들.
사랑한다. 아이폰아.
나 노래 좀 하게 해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