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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비루코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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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코집사 Sep 03. 2022

어쩌다 집냥이

비루코 8화


다시 고양이를 안았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까는 고양이가 우리를 따라올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소정의 목적을 이룬 지금의 상황에서도 과연 그럴까.


게다가 고양이를 데리고 간다는 것이 길고양이를 돕는다는 목적은 있지만 

과연 길고양이의 생각은 어떨지, 길고양이도 같은 생각일까. 

길고양이는 먹이 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날 따라가지 않는다면 미련없이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양이와 헤어지기 싫다는 아쉬움 마음과 밤사이 큰 비소식과 고양이의 절뚝거리는 걸음이 신경이

쓰였지만 강요할수도, 강제로 할 수도 없었다. 내겐 그럴 자격은 없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그대로 안겨 있다.

충분히 뛰어내릴수 있는 높이임에도 가만히 안겨 다시 우리와 간다.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놀랬을 뿐 그대로 우리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들어온 고양이는 마치 익숙한 곳에 온 듯 자연스럽게 거실 소파 위로 올라가더니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리고 피곤했는지 그새 잠이 들었다. 


뭐지?이 상황은? 지금 이 순간의 모든 일들이 너무 낯설다. 눈앞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나의 이해속도와는 별개로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 같은 정해진 일들은 공장 레일기계처럼  계속해서 몰려오는 것 같다. 차분히 이 상황을 돌아 볼 여유가 없다. 당장 눈 앞에 놓인 상황, 일거리를 해치워야만 한다!


어쩌다보니 한 두시간만에 우리집에 낯선 존재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 처음 만난 상대의 공간에서 잠을 청하는 고양이를 보니 그동안 길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은 짐작이 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밤은 잠잘곳, 비 피할곳, 먹이 구할 곳 걱정없이 푹 자길 바랬다. 


고양이가 소파에서 단잠을 자는 동안 인터넷으로 길고양이 들이는 방법과 준비물 등을 다시 검색했다. 제일 필요한 것이 화장실인 것 같았다. 마트에서 모래를 사오고 종이상자로 화장실을 만들었다. 똑똑한 녀석인지 화장실을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볼일을 보고 그 유명한 '감자'를 생산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앉아있던 나에게 오더니 무릎을 베고 누웠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몸이 다시 뻗뻗해졌다.  발을 빼기도 그자리를 벗어나 갈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고양이에게 물리거나 할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그르릉~그르릉~'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줄 알았다. 진동소리인줄 알았는데 그거와는 좀 달랐다.

무슨 소리인줄 몰라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그게 내 무릎 위에 있는 고양이가 내는 소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데 입이 아닌 몸에서. 특히 목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신기하면서도 여전히 무서웠다. 

사자나 호랑이같은 소리. 이 소리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먹이감을 앞에 두고 으르렁 거리는 맹수의 소리같기도 한데, 왜 하필 무릎베고 눈 감고 내는 것일까.

기분이 나쁘다는 걸까, 좋다는 걸까. 좋은것 같은데 소리는 왜 '으르렁'을 닮았을까. 


신기하고 재미있고, 귀엽고 안쓰러우면서도 여전히 무섭고 두려웠다. 그리고 설레이면서 걱정이 되었다.

 고양이도, 앞으로 고양이와 함께 할 날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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