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코 10화
병원에 도착하니 병원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놀라셨다.
"이렇게 하고 오신 거예요?"
아... 이렇게 하고 오면 안 되는 거였구나.
고양이도, 우리도 처음이라 우왕좌왕.
의사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처음에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다 알려주셨다.
인터넷 검색으로 다 알지 못하거나, 검색을 하면서도 궁금했던 점을
선생님께 다 여쭤보았다.
뭔가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얼떨결에 시작한 '고양이 키우기'에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그저 길고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고양이를 살펴보시더니
길고양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듣자 머릿속에서 빠르게 그다음에 해야 할 일들이
촤르르 나열이 되었다.
지역 카페를 비롯, 여러 고양이 카페에 글을 올리고, 전단지를 붙이고
그래도 찾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거두는 걸로...
진료실 안쪽에 마련된 처치실로 들어간 고양이는 또 얌전히 넥 카라를 하고 나왔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기본 예방접종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렇다고 길고양이라고 하기에는
사람을 너무 잘 따르고 길에서 가지고 올만한 진드기나 기타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고 비교적 깔끔하다는 점이었다.
기본접종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여윈 상태라 체중이 좀 늘은 뒤에 주사를 맞기로 하고
당장에 필요한 조치들만 받고 나왔다.
그제야
병원에서 찬찬히 살펴보니
고양이가 참 예뻤다.
어제는 상황 자체가 말이 안돼 정신이 없었다.
예쁜 걸 알고 데리고 온 것도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참 예뻤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서도 계속 예쁘다고 해주시니
마치 밖에서 자식 칭찬 듣는 것처럼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서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을 해주셨다.
반려동물을 키워 본 적도 없고,
마침 병원에서는 병원냥도 필요했기에
구조를 하셨지만 병원냥으로 주실 수 없겠냐고.
순간 솔깃했다.
병원냥으로 지낸다면 아파도 금방 치료가 가능할 것이고, 병원비 걱정도 없고
갑자기 생긴 새 식구에 대한 부담감도 덜할 것이고, 마음의 짐도 덜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고양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보다 전문가인 의사 선생님께
길러지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돈을 벌지 않기에 경제력도 없고, 고양이가 오면 모든 일이 내 일이 될 것은 뻔했다.
그럼에도 솔깃한 마음보다 더 큰 마음은 그러기 싫다는 마음이었다.
의사 선생님보다 잘할 자신은 없었지만 나에게 온 이상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병원냥으로 눈독을 들여서일까,
고양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생각해보겠다는 말로 간신히 병원에서 나왔다.
그리고 곧장 고양이에게 필요한 물품을 사러 근처 큰 펫 샵으로 갔다.
병원에도 필요한 물건들이 다 있었지만 왠지 그곳에서 사기가 싫었다.
병원냥처럼 풍족하게, 건강하게 살 게 해주겠다는 약속은 못하겠지만
고양이가 용기 내서 우리에게 오길 잘했다고 생각 들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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