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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비루코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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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코집사 Jul 31. 2022

다행이다

비루코1화






정말 추웠던 겨울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고 싶었지만 버스가 잘 오지 않는 동네라 그날도 버스 대신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으로 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햇살이 따뜻했다는 것.


늦장 부리는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속도를 내며 앞서가는데 저 멀리 검은 물체가 길 가에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뭐지?

호기심에 조금씩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늦추었다.

물체의 정체가 파악이 되면 얼른 줄행랑을   있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물체와 점점 가까워 질수록 그게 고양이라는  알았다.


그런데..... 한 겨울에 고양이가 길 가에 누워 있다니...

그것도 차들이 시끄럽게 씽씽 달리는 큰 도로 옆 길 가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십중팔구 죽지 않고서 한겨울 대낮에 고양이가  가에 누워 있을 리가 없었다.


너무 놀라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조금씩 줄여가던 속도를 다시 높였다.

죽음이 무서웠다. 그 자리에 조금 더 있다가는 그 죽음이 나에게로 옮겨 올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고양이의 죽음에 나 역시 책임이라도 있는 듯 마치 나쁜 짓을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고양이는 왜 죽었을까. 먹지 못해서? 겨울엔 특히 마시기 힘든 물 때문에? 아님 누가 해코지를 한 걸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자고 있는 거 아니야?"

아이가 어느새  따라잡고 말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 가서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를 그렇게  한복판에 두어서는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차갑게 식어있을 그 몸을 더 얼어붙게, 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 아이 말대로 잠들어 있거나 다친 거라면 더더욱 그렇게 두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길고양이 사체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검색해 보았다. 관할지역에 문의하면 대부분 쓰레기로 처리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이니 땅에 묻어주거나 화장해 주고 싶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서둘러 다시  자리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앞서 가는 아이를 뒤에서 지켜보며 페달을 힘겹게 밟았다.

막상 다시  고양이를 마주할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빨리 처리가 안되면 어쩌지... 내가 데리고 가야 하나...

어떻게 만지지... 어떻게 보지. . .다치거나 의식을 잃은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남편한테는 뭐라고 하지... 내가   있을까..... 괜한 생각한  아닐까...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앞으로 마주할 모든 것들을 내가 감당할  있을까 두려웠다.  자리에 도착도 전에 겁부터 잔뜩 먹었다.


어..!


도착해서 보니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도서관에 머물고, 이곳을 왔다갔다한 시간도 채 한 시간이 되질 않았다. 사람도 그다지 다니지 않는 길...

그제서야  고양이가 누워있던 자리 주변이 겨울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다는  알았다.

추운 겨울, 짧은 낮.

그럼에도 몇 시간 동안 내리쬔 햇볕을 머금은

마른 잔디밭은 한밤의 한기를 잊기엔 충분했으리라..


"내 말이 맞지!? 거봐, 내가 뭐랬어. 자고 있을꺼라고 했잖아!"

먼저 도착한 아이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행이다."

나에게도, 그 고양이에게도. . .

춥고 기나긴 겨울, 잠깐이나마 온기를 느끼는 시간을

가질수 있어서. . .


마음의 한 짐이 없어지자,

잠깐동안 이리저리 갈등하고 겁먹었던 내 모습이 참 우스웠다. 한동안 멋쩍어서 아이가 옆에서 신나게 엄마를 비웃는데도 고스란히 그 비웃음을 받고 있었다.


다행이다. .

참말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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