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코1화
정말 추웠던 겨울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고 싶었지만 버스가 잘 오지 않는 동네라 그날도 버스 대신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으로 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햇살이 따뜻했다는 것.
늦장 부리는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속도를 내며 앞서가는데 저 멀리 검은 물체가 길 가에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뭐지?
호기심에 조금씩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늦추었다.
물체의 정체가 파악이 되면 얼른 줄행랑을 칠 수 있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물체와 점점 가까워 질수록 그게 고양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한 겨울에 고양이가 길 가에 누워 있다니...
그것도 차들이 시끄럽게 씽씽 달리는 큰 도로 옆 길 가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십중팔구 죽지 않고서 한겨울 대낮에 고양이가 길 가에 누워 있을 리가 없었다.
너무 놀라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조금씩 줄여가던 속도를 다시 높였다.
죽음이 무서웠다. 그 자리에 조금 더 있다가는 그 죽음이 나에게로 옮겨 올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고양이의 죽음에 나 역시 책임이라도 있는 듯 마치 나쁜 짓을 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고양이는 왜 죽었을까. 먹지 못해서? 겨울엔 특히 마시기 힘든 물 때문에? 아님 누가 해코지를 한 걸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자고 있는 거 아니야?"
아이가 어느새 날 따라잡고 말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 가서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그 아이를 그렇게 길 한복판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차갑게 식어있을 그 몸을 더 얼어붙게, 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 아이 말대로 잠들어 있거나 다친 거라면 더더욱 그렇게 두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길고양이 사체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검색해 보았다. 관할지역에 문의하면 대부분 쓰레기로 처리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이니 땅에 묻어주거나 화장해 주고 싶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서둘러 다시 그 자리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앞서 가는 아이를 뒤에서 지켜보며 페달을 힘겹게 밟았다.
막상 다시 그 고양이를 마주할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빨리 처리가 안되면 어쩌지... 내가 데리고 가야 하나...
어떻게 만지지... 어떻게 보지. . .다치거나 의식을 잃은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남편한테는 뭐라고 하지... 내가 할 수 있을까..... 괜한 생각한 게 아닐까...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앞으로 마주할 모든 것들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 자리에 도착도 전에 겁부터 잔뜩 먹었다.
어..!
도착해서 보니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도서관에 머물고, 이곳을 왔다갔다한 시간도 채 한 시간이 되질 않았다. 사람도 그다지 다니지 않는 길...
그제서야 그 고양이가 누워있던 자리 주변이 겨울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다는 걸 알았다.
추운 겨울, 짧은 낮.
그럼에도 몇 시간 동안 내리쬔 햇볕을 머금은
마른 잔디밭은 한밤의 한기를 잊기엔 충분했으리라..
"내 말이 맞지!? 거봐, 내가 뭐랬어. 자고 있을꺼라고 했잖아!"
먼저 도착한 아이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행이다."
나에게도, 그 고양이에게도. . .
춥고 기나긴 겨울, 잠깐이나마 온기를 느끼는 시간을
가질수 있어서. . .
마음의 한 짐이 없어지자,
잠깐동안 이리저리 갈등하고 겁먹었던 내 모습이 참 우스웠다. 한동안 멋쩍어서 아이가 옆에서 신나게 엄마를 비웃는데도 고스란히 그 비웃음을 받고 있었다.
다행이다. .
참말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