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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비루코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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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코집사 Jul 31. 2022

인연은 길 위에서

비루코3화




반려동물을 굳이 키운다면

고양이보다는 당연히 강아지를 선택했을 나.

고양이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냥 싫고 무서웠던 나.

그랬던 나는 2020년 7월 31일.

늘 다니던 길에서 한 인연을 만나게 된다.




코로나가 전 세계로 본격적인 기승을 부리던 2020년.

나는 무턱대고 텃밭을 신청했다.

지금은 추첨제로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선착순으로 일찍 가기만 해도 3만 원으로 5평의 땅을 빌릴 수 있었다.

가족들과 행복한 텃밭 생활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첫째, 텃밭은 집에서 제법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길이 좋지 않았다. 처음 뚫은 길은 컨테이너 박스들과 무허가 공장들, 그리고 그곳에서 키우는 개들을 끊임없이 만나는 울퉁불퉁 비포장길이었다.

개들은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렸고, 비포장길은 곳곳이 웅덩이었다. 이것저것 도구들을 실은 카트를 끌고 다니기엔 불편한 곳이었지만 그 길을 그 개들 때문에 늘 뛰다시피 하며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이들은 처음 한두 번만 호기심에 흔쾌히 따라오다 점차 협박과 회유를 해야만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그러다 편의점에서 강아지용 간식을 사서 작은 아이를 앞장세워 다녔다

그 뒤부터 덩치 크고 무섭게 짖어 대던 개들도 여전히 짖어대지만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제법 친해진 개들이 생길 무렵, 차들이 다니는 포장도로를 발견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둘째, 텃밭은 살아생전 보지도 못한 거대한 송전탑들이 둘러싸인 가운데 있었다. 전자파를 잔뜩 맞은 유기농 작물이 안 좋을까, 농약 친 작물을 사 먹는 게 안 좋을까?

셋째, 5월 초까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덕에 모종을 몇 번이나 얼어 죽게 만들었다. 5월 중반에 들어서자 드디어 건강하고 튼튼한 새싹들이 잎을 틔었다.

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잡초들 역시 앞다투어 일어났다. 그것이 네 번째의 녹록지 않는 일.

다섯 번째로 가장 큰 일은 일머리가 없다는 것.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텃밭을 이리 나누고, 저리 나누어서 일하기 힘든 밭으로 만들었다. 도랑도 좁고 이랑도 좁고. 


이리저리 귀동냥에, 인터넷 검색으로 본격적인 텃밭 가꾸기를 한 지 3개월이 될 무렵이었다.

그 해는 유난히 비가 많은 장마였다. 다행히 힘자랑하듯 도랑을 깊게 판 덕분에 물이 잘 빠졌고 더운 여름, 물을 주러 안 가도 된다는 생각에 비가 자주 올수록 마음이 편했다.

내 인생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날  중 한 날인 2020년 7월 31일.

그날도 밤사이에 큰 비 소식이 있었다.

귀찮아도 텃밭에 가서 잡초도 뽑고 도랑도 더 깊게 파고, 수확할 것은 대부분 수확하고 여러 가지로 할 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날은 왜 그랬는지 새로 무언가를 심는다고 다시 코딱지만 한 밭을 이리저리 쪼개는 일까지 했다.


아이와 함께 갔지만 텃밭에서라도 잔소리하기 싫어 어디서 주운 막대기로 이리저리 후려치고 다니는 아이를 내버려 두고 혼자 끙끙대며 이 모든 일을 아이의 태권도 학원 시작 전 한 시간 남짓동안 다 해치웠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배는 고프고, 옆에서 뭐라 뭐라 떠들어대는 아이에게 대꾸할 힘은 없고. 아주 조금 남은 힘은 자전거 페달을 밟는데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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