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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비루코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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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코집사 Aug 11. 2022

결심

비루코 5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동안 아들은 저 고양이를 우리가 도와주면 안되냐고 계속 보챘지만 이미 모든 에너지를 다 써 방전이 된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집에 빨리 도착하고 싶었고, 쉬고 싶었고, 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고 드디어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몸을 씻었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먹을 수 있는 건 닥치는대로 찾아 먹었다. 먹는 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꺼져버린 의식이 돌아올때까지 기계적으로 계속 뱃속에 채워넣었다. 


배가 어느정도 차자 그제서야 길에서 본 그 길고양이가 생각이 났다. 그 아이의 존재를 몰랐다면 상관없겠지만 이미 그 곳에 작고, 한쪽 다리를 저는 삐쩍 마른 고양이 한마리가 애처롭게 울어대고 있다는 걸 안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까는 주지 못한 제대로 된 먹을 거라도 챙겨줘야 했다. 순간적으로 아들의 말대로 '우리가 구조해서 키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키우진 못해도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 구조가 되었는지, 그 작은 아이의 상태라도 확인하는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구조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막상 그 아이가 다른사람에게 구조가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살짝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그 아이를 본 건 2~3분의 짧은 시간밖에 되질 않는데...왜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그 아이가 생각이 날까. 왜 다른 사람에게 구조가 된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생각이 들까. 


우선은 길고양이가 먹을수 있는 음식이나 사료, 그 사료를 사는 곳, 방법, 혹시나 집에 들일경우 필요한 물품들을 아주 빠르게 검색을 했다. 그 아이와 헤어진지 벌써 한시간이 넘어 있었다. 그 사이 그 고양이가 다른 곳으로 갈까봐, 혹시나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봐 마음이 조급해졌다. 집을 나서려다가 중딩 딸아이가 동네 길고양이에게 준다고 사두었던 츄르가 생각나 그거라도 챙겨 집을 나섰다. 


아들의 태권도 수업도 끝나갈때였다. 아들과 아까 그 고양이를 만났던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빠르게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쿵쾅쿵광 가슴이 뛰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분명 무슨일이 벌어질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가슴으로는 느끼고 있었다. 뭔가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세계로 발을 들여놓을꺼라는 걸. 

그 두근거림이 두려웠다. 긴장도 되었다. 그리고 기대가 되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뭔가 오래전부터 예정되어있던 그길에 안성맞춤으로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말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지만,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각이지만 

가슴은 다 알고 있었고, 가슴이 나를 정해진 수순대로 나를 데려가는 듯 했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면 그 운명이 이끄는 강렬한 힘을 처음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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