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아들에서 그냥 아들로, 목표는 걱정 안 끼치는 아들
백수 아들이 그냥 걱정스러운 아들이 되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다.
4월 말, 퇴직급여가 통장에 찍히기 시작하고 나서, 5월부터 나는 나름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퇴사 직후에는 분위기가 꽤 괜찮았다. 헤드헌터들한테 연락도 오고, 지인들 통해서도 제안이 들어왔고, 게다가 하반기 채용 시즌까지 열리면서 세상에 기회는 넘쳐나는 듯했다.
내가 가장 바라던 건, 지금까지 해왔던 직무를 다른 업종에 옮겨 도전해 보는 일이었다. 경력은 짧았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면접을 거듭하면서 점점 알게 됐다. 면접관은 나의 짧은 경력과 애매한 전문성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고, 나 역시 입사 후 적응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부정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면접장에 가는 일이 지원하는 것보다 더 두려워졌다.
하반기 공채 시즌이 끝나갈 무렵, 몇 번의 탈락 통보와 연봉 협상 결렬을 거치고 나니 어느덧 2023년의 마지막 달이 다가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자존감은 서서히 침수되었고, 매일같이 열어보는 채용 공고 사이트에서는 얼어붙은 채용 시장의 현실이 알림처럼 튀어나왔다.
돈의 흐름도 눈에 띄게 변해갔다. 퇴사 직후까지는 회사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다가, 그 뒤로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근근이 버텼다. 하지만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끝나고 나자,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프리랜서 활동을 통해 건별로 입금되는 적은 액수들로 바뀌었다.
안정적으로 정해진 월급이 아니라, '혹시 들어오면 좋은' 돈이었다.
그리고 연말연시 특수 시즌이 끝나가자,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이쯤 되면 사람은 알게 된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나는 이 상황을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걸 포기하고, 내 위치를 인정하기로 했다.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지금의 나는 확신한다. 전부 다 중요하다고. 물론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길 수는 있겠지만, 무엇 하나를 절대적으로 떠받드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가능하다면, 다섯 개 요소 모두를 적당히 넓게 갖춘 '오각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떤 항목 하나를 극단적으로 포기하기보다는, 내 능력을 키워서 이 오각형 자체의 크기를 키우는 게 훨씬 나은 길이다.
물론, 이건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문제는, 당시의 나는 전혀 여유롭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하루가 다르게 조급해졌고,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포기는 죽어도 하기 싫었고, 시간을 들여 역량을 키우기에는 상황이 너무 다급했다.
결국 나는, 그중 한 가지에 과감히 베팅하기로 했다.
선택한 것은 '재미'였다. 당시의 논리는 이랬다. 재미있는 일을 하면, 일단 워라밸은 내가 알아서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재밌으면 일도 더 잘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성장도 따라올 것이다.
성과가 나면 급여와 안정성도 뒤따라올 것이고. 정리하면, 재미 하나만 제대로 잡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굴러올 것이라는, 긍정을 빙자한 자기 합리화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렇게, 마치 겁에 질린 채 외줄을 타듯, 그간 이어오던 커리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작은 여행 스타트업에 지원서를 넣었고 이력서를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바로 채용 연락이 왔다.
돌이켜보면, 후회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 재미를 선택했던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
사실 내 짧은 경력에서도 놀랄 만큼 '재미'를 좇아 움직였던 순간이 많았다. 다만 이제는 깨달았다.
일에서 재미를 찾으려 애쓰는 대신, 일이 끝난 다음 내 삶에서 재미를 찾는 편이 훨씬 낫다는 걸.
회사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 했던 내향인의 최후가 결국 회사 밖에서 자발적으로 재미를 찾게 된다는 점은 놀랍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그냥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
다만 후회하는 건, 그때 분명 더 좋은 제안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안정적이고, 누가 봐도 괜찮은 자리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재미' 하나만 믿고, 스스로를 터무니없이 높게 평가하는 선택을 해버렸다. 조금만 더 주변 조언을 귀담아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지금도 종종 든다.
결국 나는, 마치 누가 봐도 문제투성이인 사람에게 빠져버린 로맨스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내가 잘하면 다 고쳐질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 가능한 결말처럼, 그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과는, 다소 아쉬웠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 선택을 말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때의 나에게 조금 더 신중하라고, 그리고 지금 너 스스로가 더 역량을 키울 수 있는데 포기해 버린 게 아니냐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조언을 해주고 싶다.
아마 나와 비슷한 세대, 그러니까 7차 교육과정 세대나 그 이후 8차 교육과정 세대라면 학교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무인도물' 작품들을 접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고전 명작 '로빈슨 크루소'부터, 톰 행크스의 '캐스트 어웨이', 어린이 필독 도서였던 '살아남기 시리즈',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빈손 시리즈'까지.
당시엔 참 유익하고도 재밌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 모든 무인도물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고난과 역경을 버티고 살아남다가, 결국 무인도를 탈출해 '사회'로 귀환한다는 점.
백수 아들도 결국 백수에서 탈출해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 하고, 엄마 집에 얹혀살던 아들도 언젠가는 독립해 나가야 한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걱정 안 끼치는 아들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자연법칙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무인도물의 주인공들이 그 시절을 통해 성장하고, 때로는 무인도 생활을 그리워하기도 했던 것처럼, 나 역시 엄마 집에서 살던 이 '백수 시절'을 잊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다양한 것들을 겪었다.
운동과 적당한 사회 활동의 필요성을 체감했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취미를 찾기도 했다. 힘들지만 가족과 더 잘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웠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 '완벽한 직장'을 찾아 커리어를 화려하게 쌓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놀고, 먹고, 웃고, 고민하고, 돌아봤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
길었던 백수 생활이 끝나고, 나는 '엄마 집에 사는 직장인 아들'로, 그리고 '여행 스타트업 매니저'로 다시 사회에 합류했다. 물론, 기대했던 것들과는 꽤 다른 것들을 얻기도 했고, 결국에는 또 다른 업종으로 이직해 버렸지만. 삶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지금 나는 여전히 낮은 연차의 30대 직장인이고, 앞으로도 일할 날들이 지금까지 일한 날보다 훨씬 많다.
언젠가 훨씬 더 많은 일을 겪고, 조금 더 성장한 뒤에 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분명 오글거리거나, 혹은 지금의 경솔한 발언을 보고 웃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지금 벌써 오글거린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의 솔직한 마음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나를 위해, 그리고 어쩌면 나처럼 길을 찾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금 실직자 거나, 의기소침한 백수라면, 이 시리즈가 아주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건 꿀팁을 모아놓은 실용서도 아니고, '엄마 집에서 눌러살기 위한 성공 매뉴얼'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한 백수가 고민하고, 느끼고, 작은 실천들을 해나가며 보낸 시간을 솔직하게 기록한 글이다.
그게 당신에게, 혹은 당신 주변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위로나 용기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10화에 걸쳐 썼던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긴 공백기, 작은 성장, 어설픈 선택들과 그 결과들을 기록한 이야기였다. 대단한 결론도, 완벽한 성공담도 없다. 하지만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은 더 단단해졌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남았다.
길다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여기까지로 나의 백수 생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다음 주에는 이 글을 쓰면서 느낀 점과 10화의 글을 최종 정리하는 에필로그를 통해 백수의 이야기에서 한 직장인의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해보자.
긴 백수 생활 동안의 고민과 작은 성장, 그리고 솔직한 기록의 마무리.
완벽한 성공은 없었지만 살아남았고,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을 남겼다.
이제는 '걱정 끼치지 않는 아들'을 목표로, 다음 걸음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