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아들의 엄마 집에서 살아남기- 9화

위기를 느낀 그 순간, 이미 늦었지만 가장 빠를 때다

by 롤로

실업급여 + 엄마 집, 너무나 달콤한 조합 (권장 X)

DSCF3980.JPG 필자의 침대 바로 옆에 있는 협탁 사진이다. 요즘 대부분의 휴식을 저기에서 취하고 있다.

먼저 시작 전에 이 글은 실업급여를 받으며 엄마집에서 노는 백수의 삶을 적극 권장하는 글이 아니다.

실업급여는 비자발적인 사유로 직장을 떠난 사람 중 재취업할 의사가 있으며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노동시장에 복귀할 때까지 생활의 안정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지원금이다.

이 시리즈는 당시의 내 상황을 최대한 유쾌하게 풀고 있지만 어쨌든 저 시기부터 지금까지 노동시장의 상황은 썩 좋지 않으며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좋은 정책이다. 이를 절대 악용이나 남용해선 안된다고 사전에 먼저 밝힌다.


본론으로 돌아와 나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집에서 놀면서 따박따박 박히는 실업급여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고 앞에선 엄격, 근엄, 진지하게 이야기했지만 나 또한 실업급여의 달콤함에 빠졌던 적이 분명 있다.

만약 내가 엄마집에 사는 게 아니라 서울에 혼자 상경했던 자취생이었다면? 실업급여 만으로 나의 생활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훨씬 적극적으로, 절실하게 구직활동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집에서 살면서 절약되는 고정비용들과 4월까지 받은 월급과 이후 6개월간의 실업급여 수급, 그리고 수급 중 중간중간 센터에 신고를 하면서 벌었던 돈들이 있기에 어느 정도 금전적인 여유가 있었고, 대학을 갓 졸업했던 예전만큼 절실하게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나에겐 자신감도 있었다. 지난 3년간 치열하게 살아왔고 어떤 일을 맡아도 다시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지금의 휴식과 자아 성찰을 통해서 나는 이전보다 좋은 기회를 잡을 거라고 믿었다. 곧 이 달콤한 엄마집에 사는 백수 생활을 탈출할 거라 늘 믿어왔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절실하게 나서야 하는 시기라고 약간의 위기를 느꼈던 순간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간다, 나 빼고 계속

mania-done-1650713709_izF2yTMR_E41E419F-5B94-4C0A-AF28-93D4043D1FC9.jpg 인터넷에서 나름 화제가 되었던 '치타는 웃고 있다' 밈이다. 현재는 주로 자만하고 있다가 때를 놓치거나 실패하는 사람들을 놀릴 때 사용되고 있다.



백수 시절, 나름 사람도 자주 만나고, 혼자서도 꽤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사람을 매일 만날 수는 없다. 학창 시절처럼 동네 친구랑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 보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친구들은 이제 전국팔도 각자의 회사로 흩어졌고, 누구 하나 보려면 약속부터 잡고 일정을 맞춰야 했다. 그게 보통은 일주일, 아니면 몇 달 뒤 이야기다.

내 입장에서만 보자면, 세상이 나를 빼고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순간들이었다.


1. 나랑 밤새 게임하던 애가, 이젠 과장이 되고 집도 샀다

30대 초중반. 다들 커리어적으로는 방향이 잡혀가고, 직장에서 역할을 늘려가며 성장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당연히 나도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이건 내 경력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남들이 보기엔 한가해 보여도,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혼자만 멈춰 있다는 기분이 든다.

특히 친구가 “이번 달에 팀장, 과장 됐다”는 얘기를 할 때, 또는 “이번에 결혼할 사람이랑 집을 계약했다”는 말을 들을 때. 그냥 놀던 시절의 친구였던 그가 이제 누군가의 상사이고 남편이고, 집주인이라는 사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같이 새벽까지 게임하고 조조 영화 보고, 배고프다고 야자시간에 담 넘어서 같이 순대꼬치를 사 먹던 친구였는데… 어느새 어른이 돼 있었다. 나만 빼고.


2. 엄마 친구 아들은 어쩌다 이렇게 빨리 컸을까

가끔은 내 주변이 아닌, 한 번 더 건너서 들려오는 소식이 더 강하게 와닿는다.

“너 아는 그 누구누구 알지? 걔가 이번에 결혼한대.” 나보다 두 살 어리던 애였는데, 이제 곧 애 엄마란다. 나는 엄마 집에 얹혀살면서 점심 뭐 먹을지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그 사람의 축하할 일이지만 나는 나 자신을 돌아봤다. 나도 언젠가는 다시 뭔가를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 내 위치는 어디쯤일까. 물론 조급해질 필요는 없다고 다짐했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느 정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백수 생활의 자연스러운 부작용 같은 거였다.


3. 세상은 AI로 바뀌고, 나는 아직 수동 모드였다

백수 시절에도 나는 단순히 빈둥거린 건 아니었다. 나름 최신 트렌드를 공부한다고 칼럼도 읽고, 영상도 찾아보고, 노션 정리까지 했다. 특히 AI와 관련된 콘텐츠는 참 많이 접했다. 처음엔 그저 재미 삼아 GPT에게 이상한 질문 던지다가, 점점 “이거 일할 때 진짜 쓰이는 거 아냐?” 싶어졌다.

그러다 충격적인 걸 알게 됐다. 내가 몇 시간씩 붙잡고 엑셀 함수와 자피어로 씨름하던 그 작업들. 이제는 프롬프트 몇 줄로, 스프레드시트 자동화가 가능하단다. 그것도 코딩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도. 나는 당장 ‘이건 사기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이미 2023년부터 일잘러들은 그런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 테크 칼럼에선 "GPT를 잘 다루는 사람과 못 다루는 사람의 생산성 격차가 앞으로 커진다"라고 했고, 그 말이 이상하게도 무섭게 와닿았다. 나름 똑똑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급가속을 밟고 있었던 거다.

나도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은 했었다. 관련 유튜브도 찾아보고, 프롬프트 노하우도 정리했지만 정작 그걸 쓸 자리가 없었다는 점이 제일 아쉬웠다. 기껏 배운 기술도 실전에 써먹지 못하면 그냥 ‘정보 수집가’에 불과하다. 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 달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뒤에서 웃고 있는 치타가 아니라 그냥 숨찬 사람일 뿐이었다.


이런 순간들이 모여서, '이제는 진짜 일어나야 할 때가 왔구나'라는 작은 위기의식이 생겼다. 마냥 눕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 슬슬 일어날 타이밍 같았다. 아니, 꼭 이불 밖으로 나가진 않더라도… 적어도 컴퓨터 앞에는 공부의 목적으로 좀 더 오래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 시절, 내가 멈춘 건 사실이지만, 멈췄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것도 있었다. 그때는 내가 참 많이 뒤처졌다고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도 나름 의미 있었던 쉼표였다. 물론 당시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취업시장은 차갑다. 물경력은 같이 꽁꽁 얼어붙는다.

DSCF3290.JPG 지난겨울 추운 덕유산 매점에서 사 먹었던 컵라면이다. 취업시장은 차갑다는 내용을 쓰려는데 생각나는 짤이 없어서 그냥 내가 최근에 추웠던 사진을 올렸는데 라면이 먹고 싶다.


백수 아들에게 지쳐가는 부모님의 마음, 그리고 앞서 말했던 ‘나 빼고 다 잘 나가는 세상’의 여러 장면들은 결국 나를 조금 더 힘들게 구직 활동에 나서게 만들었다. 그동안 프로그램 기획 운영을 맡았다가 인사 관련 업무로 이동한 지 얼마 안 됐던 내 경력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였고, 포지션을 정하지 못한 커리어의 갈피는 시장에서 뾰족한 무기가 되기엔 부족했다.


겨우겨우 면접이나 처우 협의까지 올라가더라도, 생각보다 나의 몸값은 높지 않았고 내가 탈락한 자리는 여전히 사람을 뽑고 있었다. 이 말인즉슨 “사람은 필요하지만, 너는 아니야”라는 말과 같았다. 실업급여로 따뜻하게 데워뒀던 마음이 다시 얼어붙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물론 누군가 나가거나 정리된 자리였을 수도 있고, 자리가 비어있는 이유를 분명 고민해야 할 포지션도 있었고 그 자리에 내가 꼭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장의 사정보다는 오히려 이유를 나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실전에 활용해보지 못한 지식, 애매한 커리어 포지션, 무엇보다 제때 방향을 세우지 못한 나의 선택들. 백수 생활이 길어질수록 스스로가 자꾸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년 정도 다시 회사를 다니며 느낀 건, 사람은 필요한데,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이 정말 부족하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지금 돌아보면 내 실력이나 경험도 분명 부족했겠지만, 동시에 시장 자체가 매우 까다롭고 좁았던 순간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 시절 내가 겪었던 그 얼어붙는 기분은, 사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가능하면 기존 경력을 살리되, 아예 새로운 업종이나 직군의 ‘중고신입’으로 도전하는 선택지도 함께 열어두고 있었다. 문제는 그 무렵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서 생긴 심각한 병 하나였다. 이름하여 낭만중독. 엄마집의 포근함과 자유에 취해 수도권을 떠나 아예 해외나 지방으로 떠나볼까 하는 상상도 했었다. 현실은 냉혹한데 내 머릿속은 점점 따뜻해졌고, 어쩌면 그게 더 위험한 시그널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돌아보면 참 많이 아는 척도 하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막상 의외로 현명한 선택은 잘 못 하던 시기였다. 다양한 책과 칼럼, 강의를 수없이 들여다봤지만 실전 감각은 희미했고, 뜬구름 잡는 상상만 잔뜩 부풀어 있던 시기. 낭만에 취했던 그 시절, 지금 보니 그래도 꽤 괜찮은 휴식이었고 어쨌든 그 시절의 방황과 회의감 덕분에, 지금 내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여전히 난 스스로를 애송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어쨌든 조금 더 단단해진 백수아들은 결국 다양한 지원과 면접 끝에 백수를 탈출하고 다시 돈을 벌기 시작했었다.


그렇다면 백수 아들은 어떤 회사를 골랐고 이후에 어떻게 지냈을까?

다음 시간 마지막 화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조금 스포일러를 하자면 이 글을 연재하던 1년 사이에 난 직장이 한번 더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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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당신을 위해 전지전능한 ChatGPT 님이 해주는 요약

작가가 백수 생활 중 느꼈던 무력감과 주변과의 격차, 그리고 점점 흐려지는 절박함 속에서도 자신을 돌아보며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을 담은 에세이다. 실업급여와 엄마집의 안락함은 달콤했지만 동시에 현실감각을 흐리게 했고, 세상의 빠른 변화 속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시 일어나야 했던 순간들을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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