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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박스 Oct 13. 2023

시계가 고장날 지라도(장편 소설)

 15 : 휘림의 시야

 언젠가 이름 모를 이가 말하기를, 새벽에 온 마음을 바쳐 쓴 실로 완벽한 글이라면 아침 해가 밝고 나면 기꺼이 태워버려도 여한이 없을 것이라.


나는 밤을 새워가며 글을 썼다. 어둑한 방 안에서 미처 여백을 채우지 못한 종이가 탁상용 스탠드의 하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눈이 시리고 손 끝이 저릿해져왔다.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글이 완성될 때까지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동이 터올 때 즈음 부모님께서 나를 보시곤 눈이 충혈되었다며 걱정하셨다. 그 책을 쓴 사람은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쓰다가 이른 나이에 폐병으로 죽었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그보다는 정말로 백화점 옥상에서 날아올라 창공을 가르는 독수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세상 어디선가 잠시 지친 날개를 접은 채로 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새가 되고 싶었다. 여지껏 수없이 많은 활자로 무수한 종이들을 채웠지만 단 한번도 그 정도로 만족스러운 글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태우는 대신에 방학 과제로 제출해버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내 손을 떠난다는 점에서는 그 격언의 내용과 내 행동은 피차일반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글을 선생님께서 읽고 기억해서 불러내셨다는 점에서 나는 당황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글을 다른 사람이 기억할 수도 있다고 가정해본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나의 시간이 다른 사람에게 닿았다. 그것은 더없이 안온한 경험이었다.


나는 아마도 오늘을 결코 잊을 수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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