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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사리 May 24. 2024

버티는 하루, 빵과 치킨 한 마리

매일 눈을 뜨고 하루를 마감하는 나를 칭찬해

매일매일이 바쁘지만 그중 가장 바쁜 날은 목요일이다.

신체적으로 움직이는 날, 이곳저곳으로 움직이고 또 준비하고 매일매일 같은 하루인 것 같지만 매일이 같지 않다. 어쩌면 길을 잃은 지 오래인 것 같다.

장사에 지치고 매출에 눈물이 난다.


사실 사람에 지쳤다.

또 사람 때문에 멈춤 수가 없다.

손님이 없으면 매출이 없으니 슬펐고

손님의 요구사항을 맞출 수 없을 때 당황스럽다.


1년 전 장사를 준비하며 오픈만 하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이든 시작해야지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시작하기 전에는 죽었다 꺠어나도 알 수 없는 것.

이젠 그것이 무엇이 안다.

장사하는 이들만 가진 네트워크와 무언의 싸인, 대화 속 눈치게임.

여전히 나는 흥미롭다.


장사라는 거대한 바다에 뛰어들었고 무지한 해초 같았던 나는 이제 거대한 배를 기다리고 있다.

큰 파도가 덮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때를 기다려 더 큰 바다와 새로운 육지로 탐험을 나갈 그런 거대한 배를 찾고 있다.


이젠 손님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람은 지치지만 손님은 다르다.

늘 공손하고 좋은 손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해진 틈에는 진실로 생각해 주는 손님이 천천히 다가오고 반가이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지난 주말,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빙자한 일탈이었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모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사가 되지 않는 한가한 날도 청소와 식자재 정리, 그리고 주변 상인들과 소통을 한다.

손님이 없다고 없을 거 같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일정을 다 해내고 저녁 9시가 되어서 들어선 가게는 낯설다.

한낮의 모습과 다른 옷을 갈아입은 듯,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이방인으로 방관자로 손님이 없는 가게에 앉아 시간을 잡아서 맥주에 섞어 마셔본다.


가게 문 밖으로 아는 얼굴이 지나간다. 반갑게 손을 흔든다.

맥주에는 역시 마른 멸치, 짭조름과 탄산은 찰떡궁합이다. 한 모금 두 모금, 한 병을 다 비워갈 때쯤 되니 허기가 지는 느낌이 든다. 때마침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마감손님이 들어온다. 한 손에는 치킨 한 마리를 담은 봉지를 들고 있다. 술은 안 마시고 치킨만 주고 갈꺼란다.

대화하다 보니 어영부영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한참 지난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누군가 유리문을 두들긴다.

며칠 전 방문했던 손님 1과 손님 2께서 지나다 빵 한 봉지를 들고 서있다.


배부름과 배고픔 사이의 묵언의 외침을 누군가 들은 것일까.

이상한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물건을 팔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먹을 것이 생긴다.


햇살 하나 없는, 햇살이 있을 수 없는 어두운 밤인데 따사롭고 배가 부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Junghwa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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