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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사리 Nov 21. 2024

거리에 쓰레기가 줄었습니다.

3주 동안 휴가와 나를 위한 멈춤

술보밥상을 멈추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멈춤과 갑작스러운 휴식은 아니었답니다.

2인3각 경기가 실패라는 것을 깨닫고 멈추는 것은 비겁한 것 같아 여태껏 버텨왔지만 일방적인 통보와 책임은 지치고 지친 저에게 갑작스럽지만 가뭄 속 단비 같은 휴식이 되었습니다.


단골손님들에게는 직접 대면하며 사정을 설명했고 현재 상황은 식당을 내려놓고 정리하는 것으로 마음이 기울어 버렸습니다. 당근에 하나씩 물건을 내놓고 주변 상인분들에게 사정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음에 안타까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내려놓음으로써 가진 것이 다 사라진 것만 같았는데 의외로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씩 정리하면서 얻는 것이 생각보다 많았고 또 진정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더 힘이 났습니다.


그리고 정들고 손때 묻은 물건들이 하나씩 떠나보내면서 시원섭섭함이 다가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원함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고객들과 사사로이 편하게 마음을 나누고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또 바빠서 보이지 않았던 거리의 또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신기한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가게 문을 닫고 생긴 마음의 여유가 새로운 거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이 보이고 가게마다 어떤 메뉴로 어떤 서비스로 고객을 대하는지 하나둘 자세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간의 경험은 매장마다 음식물 쓰레기와 종량제 봉투의 양만큼 경제의 순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정 요일이 지나고 한주가 지날 때마다 쓰레기들이 쌓여야 하는데 쓰레기들이 쌓이지 않고 사람들도 거리에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내가 머무는 곳 근처만 그러한가 싶어 조금 더 먼 거리의 상가 근처를 배회해 보았습니다.


거리는 한산하고 쓰레기도 없어졌습니다.

'사람은  쓰레기를 남긴다.'

사람이 머물지 않는 곳에는 쓰레기도 사라지고 경제의 활력도 사라졌습니다.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겠지만 내가 멈춘 시점이 더욱 특별해졌습니다.

하나씩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보이지 않았고 비로소 멈추니 보이게 된 것입니다.


잠깐 쉬려고 했을 때는 다른 식당에서 잠시 알바도 해보았습니다.

시기적으로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사장이었던 내가 종업원으로, 임시 알바로 일을 하며 보이는 것들은 전과 달랐고 앞으로를 준비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또 장사를 시작하게 된다면, 또 장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도 점점 명확해졌습니다. 그만두는 것도 멈추는 것도 누군가와 함께 보내고 소식을 나누는 모든 행위가 참으로 시기적절했구나.


글을 쓴다는 것과 책을 읽고 세상을 보는 것 역시 또 다른 성장으로 이어지며 잠시 멈춤이 더 크고 알찬 미래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힘들었지만 내일은 더 멋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또 현실감에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 인생의 밑바닥을 알게 되는 순간에는 더 이상의 밑바닥이 없으리라 확신하려 합니다. 하지만 밑바닥이라고 느낀 순간 더욱 낮고 깊은 혼자서는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 같은 밑바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밑바닥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순간 진짜 인생의 쓴맛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삶은 진짜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을 견뎌내어야만 진짜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이 생김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진짜 살아있는 감정과 내일의 햇살이 기대됩니다.

가족에게서 오는 전화를 여유롭게 받게 되었습니다. 또 걷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고 사람들에게 나의 바닥이라 생각될 수 있는 치부를 보여줬을 때 그들이 보여준 응원에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합니다.


술보밥상을 운영하며 함께 하려 했던 것들은 잠시만 쉬었다가 시작해보려 합니다.

술보밥상의 실물은 사라졌지만 술보밥상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또 온라인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도 있으니 잠시 쉬면서 재정비하는 중이라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또 준비 중입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언제일까 늘 두려웠었는데 이제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은 지금인 것에 확신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걷고 달리겠습니다.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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