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커피중독자였던 하루

by 연어사리

엄마 말 잘 들어야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공부 잘해야지 성적 잘 나왔지?

나이가 들어서는 회사생활에 적응 잘하고 오랫동안 근무해야지 성공해야지 아파트는 몇 평? 자가야 전세야? 차는 어떤 걸 타야지..... 우리를 조신하고 조직에 순응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주문 같았던 말들. 그 말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있었고 내 몸이 버티지 못할 땐 커피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연명해야 했다.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을 때 또는 거래처에 인사 갔다가 주는 믹스커피를 가는 곳마다 맛있게 먹어야 했던 기억들. 그렇게 커피중독자로 삶의 노예로 살았었다.


작업실을 운영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독립된 개체인 줄 알았다.

사회에 종속되지 않는 커피중독자의 삶으로부터 벗어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갑자기 아프고, 갑자기 아픈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닌데 아프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도하면 나는 중독자의 노예 같은 삶을 벗어나 주체적이라는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며 즐겁게 살아간다.

결국 돌고 돌아 나는 커피중독자와 목표와 성취의 노예였다.


2주 전 신경과에서 약을 받아오며 3가지 금지조항도 같이 받았다.

"술, 담배, 커피 금지입니다."

다른 건 상관없다. 없어도 사니깐 그런데 커피는..... 최근에 커피를, 에스프레소에 빠져서 좀 많이 즐기긴 했다.

그래, 원 없이 에스프레소를 즐겼으니 되었다.


집 근처 카페 ROFFEE에서 즐겼던 에스프레소. 벌써 그립다.

일요일 아침, 오후에 잠시잠깐 조용히 즐겼던 에스프레소야 당분간 안녕.

그게 얼마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잠시 멈춰야 해.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비 오는 날 따뜻한 아메리카노.


약을 먹기 위해, 증상완화를 위해 커피를 멈춘 지 2주.

대신 얻은 게 있다.

한낮에 느껴지는 무거운 눈꺼풀과 졸림.

9시만 되면 피곤해지고 따뜻한 이불속이 그리워지는 몸뚱이.

새벽 5시 반이면 가볍게 뜨여지는 눈.


이렇게 상쾌하고 가볍게 기상하는 아침은 오랜만이다.

덕분에 늘 바라왔던 새벽글쓰기를 하고 있다. 새벽독서도 했다.

어젯밤 밀린 설거지도 했다.

바른생활은 어릴 적에나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어리석 마음이 있었나.

글을 쓰고 창작을 하는 것은 올빼미를 위함이 아니라 더욱 바른생활이 필요하다는 것.


커피중독자일 때는 몰랐으나 커피를 멈추고 기억해 냈다.

나 카페인 알레르기 있었는데.

보이차와 녹차는 최근에 즐기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부터 홍차를 좋아했었다.

갈색의 홍차잎. 맑고 투명한 은은한 갈색.

가끔은 설탕을 넣고 시럽을 넣어서 예쁜 잔에 마시던 홍차.

다시 너랑 자주 만나야겠다.

집 근처 수다싸롱에서 마시는 홍차, 얼그레이


지난밤 마신 홍차 덕분인지 지난밤 만난 좋은 사람 덕분인지 오늘은 정말 아침부터 완벽하다.

지나고 보니 커피를 마신 잔의 수만큼 기상시간이 1시간씩 늘어났었던 것 같다. 불과 3일 전만 해도 나의 기상시간은 7시 반, 심지어 8시였다. 출근시간? 당연히 9시까지. 출근하지 않고 작업실 가는 날은 즐겁게 오전부터 나서지만 들어가자마자 커피를 마셨다.


다크로스팅된 커피를 에스프레소만큼 진하게 타서 한잔.

몸이 지쳐서 다크서클이 다크로스팅 색과 같아진 줄도 모른 체 말이다.


커피중독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 같다.

몸도 가볍고 생각하던 스케줄을 해내도 머리가 맑다.

그래도 병원은 가야 한다. 약간의 불편함과 장기적인 건강관리 프로젝트,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고 더 많은 것을 위한 나의 목표를 만들어내기 위한 즐거움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일과를 다 마친뒤에는 오랜만에 차이라떼 한잔하고 싶다.



3월부터는 구례공공도서관(전라남도교육청구례도서관)과 문척면주민센터에서 스마트폰 활용수업을 진행합니다. 코딩커리큘럼도 모집하고 소규모 그룹수업도 준비 중입니다. 예정되었던 바쁜 일상에 커피가 빠지면 어떻게 해내나 고민이 많았었는데 몸의 반응을 보며 하는 것도 장점이 많네요. 그동안 몰랐던, 아니 듣지 않았던 몸의 소리가 스스로를 커피중독자로 내몰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피 없이 사는 삶 어떠세요?

이전 12화사람을 만나면 생각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