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흔적 같은 퀴퀴한 빨래냄새
아파트에 살 때는 세탁실에 온수와 냉수 연결이 같이 되어 있었기에 세탁기 청소를 굳이 외부에 맡길 필요가 없을 만큼 관리가 잘 되었었고 온수빨래와 세탁기 세척을 언제나 원할 때 할 수 있었다. 환기와 기계의 사용방법이 주택과 아파트는 너무도 달랐다. 주택살이는 내 집살이가 아니기에 세탁기 온수연결이 필수조건이 아니었다. 겨울이면 얼어서 터지지 않으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냥 사용하는 것에만 해도 만족하자는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지독하고 찜찜했던 빨래냄새의 원인이 세탁기였다니.
몇 년 사이에 열대우림에 사는 것처럼 날씨가 변하고 한여름만 사용해야 할 것 같았던 에어컨은 5-6월에도 사용하는 것이 집안환경을 쾌적하게 만든다.
세탁기의 원인을 잡고 나니 빨래건조가 또 다른 냄새를 만들어냈다.
에어컨을 사용해도 빨래 건조는 문제가 된다.
어쩌면 나는 편집증적인 사람이었던 거 같다.
남들이 민감해하지 않는 냄새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었던가.
아니면 상대가 말을 하지 않기에 더 민감해지는 것인가
건조기를 사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집안에서 사용하는 수건은 180그람의 도톰함을 자랑한다.
목욕용품에 사치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유독 수건은 도톰한 두께에 보드라운 브랜드 제품을 좋아한다.
빨래건조기를 구매해야 하나 고민할 즈음, 코인세탁소에 방문했다. 사용방법과 충전에 익숙지 않아서 몇 번 실수가 있었지만 코인세탁소에 적응해 간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빨래를 하고 건조를 하고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본다. 창밖을 보며 커피 한잔도 했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마냥 8대가 들려주는 백색소음과 털털거림에 빠져든다.
건조기에 다녀온 수건은 햇볕의 까칠함과 다른 따스한 보드라움이 있었다. 섬유유전제와 다른 보드라움.
나는 건조기와 사랑에 빠졌다.
매주, 수건이 모이면 건조기를 만나러 간다.
집에 건조기를 하나 살까 했지만 코인세탁소에서 보내는 여유가 좋다. 사람구경도 하고 책도 읽고 한 시간 이내 털털거리는 소리와 함께 혼자 보내는 시간.
그래 돈을 쓰니깐 좋은 거야.
돈을 쓰기 전에는 몰랐던 대형건조기의 매력. 이제야 알았다.
코인세탁소에서도 사람들의 삶이 보인다.
여행객인지 가족인지 사업주인지 여러 가지 특징들이 보인다. 바구니에 담겨서 오는 빨래들과 커다란 가방에 덥석 돌돌 말려온 빨래들, 대형비닐봉지에 담겨오는 축축한 빨래들. 각자의 상황에 맞게 담겨서 온다.
과거의 빨래터에 모였던 사람들, 우리는 건조기 때문에 코인세탁소에 모인다. 그때는 물이 귀하고 빨래할 장소를 찾아서 모였던 것인데 이제는 물과 상관없이 세탁기와 건조기의 편리함 때문에 모인다.
물을 사 먹게 될 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웃었던 때가 있었다. 이젠 빨래건조기도 필수가 되어가나.
빨래 너마저도 부익부 빈익빈인 것이냐.
퀴퀴한 그 찜찜한 냄새만 아니라면 까짓것 건조기, 계속 충전한다.
이용하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과 시간에 대한 것들,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이 더 즐겁고 알차게 보낼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으며 마주하게 되는 빨래 하러 오는 사람들. 과거의 빨래터와 현재의 코인세탁소. 교차점 같기도 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삶에 힘을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