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장의 조련은 성공할 것인가
돌도 씹어먹는다는 10대 시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말을 안 들었다. 부모님 말씀 안 들었고 좋은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미성숙하고 무지한 10대를 보내고 부딪힌 20대, 아무 준비도 대책도 없었고 30대가 오지 않을 것처럼 기대 없이 살았다. 20대 후반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나니 살아야겠다 싶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30대,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현실의 벽을 알기 시작했다.
가진 것이 몸뚱이뿐이고 조금 더 큰 자산이고 기댈 언덕이라면 부모님 두 분 계신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30대 개명을 하면 인생이 달라질 것 같아서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서 개명을 했다.
"엄마, 혹시 알아? 내가 이름을 바꾸면 시집을 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하고 협박 같기도 한 그런 말이었는데 개명을 하고 1년 남짓 지나 진짜로 결혼을 했다. 결혼상대자는 듣도 보도 못한 13살이나 많은 아저씨.
이상형은 나름 심플했다.
가족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길, 나보다 한자를 많이 알았으면, 외모가 친척들과 비교해 너무 주눅 들지 않기를... 나에겐 연인 같고 아이가 생긴다면 자상한 아빠이길 그런 것을 바랐다.
"네가 연상이랑 결혼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13살은 너무 심하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놓고 말했다. 13살 차이, 애매한 띠동갑을 넘어서는 그렇다고 나이를 줄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도! 그때는 봐줄 만한 모습이었고 안 씻은 채 집에 누워 있어도 냄새나지 않을 거 같이 생겼었다.
지금은.....?
방구석 상그지가 누워계신다. 베개만 만나면 어떻게든 어디서든 그렇게 쓰러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튜브만 보신다.
그래도 가끔은 저분이 계셔서 정신이 바짝 든다.
나와 다른 냉정하고 이기적인 판단, 덕분에 인생은 혼자 가는 거다 홀로 사는 게 인생이다를 다짐하며 씩씩해진다. 남의 편이 별거냐 그래 일단 내가 성장하고 보는 거다.
우리는 그런 관계다. 까도 내가 까고 때려도 내가 때리고 절벽에서 민다고 해도 내가 민다.
그렇게 우리는 10년째 같이 늙어가고 있다.
한동안 주말부부를 하며 구례라는 곳에 적응하지 못한 채 아이와 함께 많이 돌아다녔었다. 아이와 같이 마트도 가고 편의점도 가고 빵집도 가고 식당도 갔다. 남편 없이 단둘이, 아니면 부모님과 함께 그렇게 남편의 자리는 비워진 채 2년 정도 다녔었다. 퇴근 후 혼자 걷고 있는데 친구 하나가 다가왔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친구는 반갑다 어떻게 사니 말하다가 대뜸,
"너 결혼은 하긴 했냐?"
그래, 그 친구는 늘 솔직했었다. 돌려 까는 것 없이 직설적인 화법을 추구했었다. 지나고 보니 그게 차라리 나았다. 뒤에서 돌고 돌아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고 내가 하지 않은 행동도 했었다고 되어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는 않으니깐.
그 말을 들을땐 놀라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지금은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말인데, 다시 생각해도 너무 웃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면 20년 30년 연락 안 되다가 만났다면 궁금해 할 수 있는 문제다. 이제는 이혼했다고 해도 남편이 없다고 해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나한테는 남편이 있다. 요즘은 주말부부도 안 하고 집에서 계신다.
아들하고는 둘도 없는 절친이고 베프지만 나는 같이 밥 먹을 때만 반가워한다.
나는 대형견을 키우는 건가.
남편은 길고양이들에게는 상냥하게 말을 건다.
나한테는 버럭버럭한다.
아들에게는 상냥과 버럭 둘 다 한다.
차라리 대형견이라면 간식으로 조련이라도 할 텐데 다 늙은 어른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가만 생각해 보니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운 적이 있다. 허스키의 옆모습에 반해서 그 덩치는 잘 모른 채 키웠다. 아파트에서 키우다가 동네 할머니들한테 참 많이 혼났었지. 그때 생각 속 이상형이 허스키 같은 골격을 가진 남자였으면 바랬었던 것 같은데 무의식 속 자의식이 무섭다.
늙은 시베리안 허스키, 어린 시베리안 허스키. 밥때만 제일 반가워하는 그런 게 닮았다.
시베리안 허스키를 정말 좋아해서 키운 적이 있었어요.
키우면서 참 힘들었고 또 좋은 추억이었는데 그때 배운 것은 책임질 수 없는 삶은 선택하지 말자였습니다. 신중하게 선택한다고 한 결혼인데 요즘 들어선 대화가 가끔(?) 된다는 것 빼고는 무슨 차이인가.
밥 차려줄 때 제일 반가워하고 밥같이 먹을 때 좋아하고 눈뜨면 머 먹을 건지 물어보는 ㅜㅜ
때 때로 판단력 흐려졌을 때 뼈 때리는 충고를 하는 분.
그래도 맛있는 거 혼자 먹으면 챙겨주고 싶을 때가 있는 거 보면 아직 사랑이 쪼끔 남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