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먹구름이 가득 낀 것 같다. 갑자기 내리는 빗물에 온 정신이 떠내려 가는 듯하다. 분명 여기 정신은 있는데 정신이 없는 듯하다. 사리 분별은 할 수 있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 정작 내가 갈 길에서 머뭇거린다. 발끝만 들썩이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서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말한다.
"사람이 생각이 너무 많으면 안 돼. 좀 바쁘게 살고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하지만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날 때부터 난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으므로. 방구석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게 삶이란 무엇인가 골몰히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이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 따라가 보면 정답은 보인다.
사랑. 나에겐 사랑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랑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고 남들 말마따나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열심히 살고 싶고 몰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슬픈 현실이지만. 누구나 힘든 순간은 있다. 그러나 삶이 계속되는 이상 버텨야 한다. 이 시기도 곧 지나가리라 속으로 삭이면서. 정말로 이 긴 터널의 끝이 있겠지.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데 나도 그럴 수 있겠지 하면서. 용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저녁에 잘 먹지 않는 커피를 한 잔 들이켠다. 카페인이 잠시라도 머리를 맑게 해줄까 싶어서. 잠이 오지 않으면 어떠하리. 아무렴 괜찮다. 커피 한 잔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커피 한 잔으로 기분 전환 할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다행이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어떨지 모르겠다. 나도 분명 어딘가에 쓸모가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켠다. 차가운 액체가 뜨거운 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향을 음미한다. 이 향이 되고 싶다 생각한다. 다시 태어나면 바람이 될 거라고 했던 나는 이런 향기가 나는 바람이 되었으면 하고 속삭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