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내고도 내 책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누구는 책 내면 내 자식 같다는데 나는 내놓은 자식 같다고 해야 하나. 글 쓰는 게 좋으면서도 힘들기도 해서 숙원 사업을 하나 처리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 책이 나온 순간 후련하기만 했다. 처음에는 내 책이 나왔어요. 봐주세요. 몇 번을 얘기하고 다니다 그만뒀다.
책에서 얘기했던 것들 중은 아직도 가지고 있는 확고한 나만의 철학이 있는가 하면 지금은 조금 달라진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인 것이다. 시간이 흘러 생각도 변하고 나도 변하면서 나는 글에 이렇게 적었는데 좀 아닌 것 같다 하는 것도 있고 전체적인 아쉬움도 있다.
좀 더 내가 둥글었으면 어땠나 싶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렇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생겨버리고 거절도 못 하고, 할 말도 못 하는 바보가 되었다.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너의 의견을 말할 줄도 알아야지. 하고 알려준 친구 덕분에 아, 사람과 세상은 이런 거구나. 그저 모든 것을 적으로만 봤던 시절. 그리고 그게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쯤에 책을 썼기 때문에 글에 날이 서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혹여나 다시 글을 쓰게 된다면 다른 식의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힘들 때 아무 말도 안 하고 묵묵히 옆에 있어주는 친구처럼 아무 말도 글도 없는 하얗고 빈 종이책을 내밀고 싶다. 제목은 있고 글은 없는. 책 제목은 '조금 쉬었다 가자.' 글의 내용은 독자의 몫. 낙서장으로 쓰든 일기를 쓰든, 뭐든 끄적이는 쉬는 시간을 주는 것으로. 내 다음 책은 그렇게 만들고 싶다.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