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가짜와 불완전한 진짜 중에

by 고유

영화 ‘트루먼쇼’를 처음 본 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태어날 때부터 세상 모두가 나의 탄생을 지켜봤고,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상황이 연출된 거라면? 말도 안 돼.’ 트루먼도 자신의 인생이 쇼였다는 걸 알게 되고, 나처럼 큰 충격과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결국 ‘세상’으로 꾸며진 세트장 문을 열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만의 유쾌한 인사와 함께.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혹시 다시 못 보게 되더라도 좋은 오후, 좋은 저녁, 그리고 좋은 밤!)


만약 나라면 그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을까? 예전의 나라면 안전한 세트장에 머물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배신감은 크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이전까지도 잘 살아왔고, 무엇보다 문을 열면 그 뒤에 뭐가 있을지도 알 수 없으니까. 두려움, 실패, 좌절, 비난 같은 것들. 차라리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거나 이미 아는 선택을 하는 게 훨씬 안전하다고 믿었다.


우리는 트루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자주 누군가의 ‘시선’ 속에 갇혀 산다. 어떤 결정을 할 때에도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지를 먼저 생각한다. 닫힌 문을 굳이 열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이미 열린 문을 선택하는 편이 더 무난하고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 문을 지나 도착한 곳이 원하던 곳이라면 다행이지만, 아까 봤던 두 개의 문 중 다른 문을 선택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든다면 다시 되돌아가는 용기를 내기 전까지는 결핍이 남는다. 돈을 벌어도 공허하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내가 바라던 모습으로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에 자기합리화까지.


트루먼쇼의 감독 크리스토프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넨다. “바깥세상도 다르지 않아. 같은 거짓말과 같은 속임수로 가득해. 하지만 내가 만든 공간 안에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완벽한 가짜와 불완전한 진짜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남겨진, 기한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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