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온전히 받는 일

by 고유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어 곤란했던 적이 있다. 금방 그칠 비도 아니었던 데다 그냥 맞으며 뛰어가자니 집까지는 횡단보도를 몇 개 더 건너야 했다. 길을 가던 어떤 아주머니께서 우산이 없어서 그러냐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같이 쓰고 가자고 했다. 마침 집 방향은 같았지만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는데 어물쩡거리는 동안 아주머니가 우산 속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감사하다고 어색한 인사를 건네며 적당한 곳에서 헤어졌는데, 어디쯤에서 헤어졌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몸을 가까이 붙이고 종종거리며 걸음을 맞추는데 온 신경이 쓰여서 경황이 없었다. 빗소리가 워낙 크게 들려서 딱히 어떤 대화로 적막을 채우지 않았어도 됐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자면 고마운 마음보다 불편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낯선 사람이라서였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호의를 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건 빚을 지는 일처럼 느껴온 탓이다.


모든 관계에는 조건이 있다고 생각해서 누가 나에게 무언가를 주면 나도 반드시 되돌려주어야 하고, 반대로도 그렇게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틀리진 않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사람이 이어지는 관계는 계산적이고 복잡한 계약조건 같은 게 아니었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도 베푸는 마음이 있고, 준 만큼 되돌려 받지 못하더라도 타인이 필요한 무언가를 줄 수 있음에 충분함을 느끼는 마음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이제는 그 마음을 온전히 받는 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존중하는 일이라는 걸 안다. 온전히 주는 일도 온전히 받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걸.


그래도 모르는 사람과 우산을 같이 쓰는 건 여전히 불편한데, 비 오는 날엔 혹시 모르니까 우산을 두 개씩 들고 다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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