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티비를 보다가 누군가에게 큰 도움을 받아서 기회를 잡거나 목숨을 구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은인이라면서. 무릎을 세워 턱을 괴고 가만 생각해 본다. ‘내 인생에도 은인이 있었나..’
있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더니. 고마운 마음은 때때로 쉽게 잊혀진다. 좋은 사람 되기 어렵다. 이렇게라도 다시금 떠올려 잊지 않기로 한다.
초등학생 때 현장학습 갔던 날이다. 내 뒤에 선 친구가 빨리 좀 가라며 등을 밀쳤는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앞니 하나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 아픈 것보다 너무 놀라서 펑펑 우는데 뒤따라오던 수학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얼른 현장을 빠져나왔다. 선생님은 부러진 이를 우유가 살짝 담긴 우유팩에 담아 한 손에 쥔 채 나를 시내버스에 태워 함께 병원에 가주었다. 너무 오랜 기억이라 치료를 어찌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바로 병원으로 가 조치를 받을 수 있던 건 정말 다행이었다.
운전이 미숙했을 때 양보해 주는 사람은 무조건 내게 은인이었다. 깜빡이는 한참 전에 켜놓고는 들어갈 타이밍을 계속 놓쳐 길을 잘못 들거나 빙 돌아가야 했다. 누가 봐도 초보티가 났는지, 어정거리는 내가 성가시다는 듯 일부러 쌩 지나가거나 클락션을 울려대는 차들도 있었다. 그런 상황은 멈출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차도 한복판에서 그야말로 울고 싶게 만들었다. 그럴 때 신사처럼 자리를 내어주는 차들도 있었다. 괜찮으니 어서 들어오라는 듯, 속도를 천천히 낮춰 내가 차선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모두가 위인이 되거나 대단한 영웅이 될 수도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이 세상은 여전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줄 수는 있다.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덕분에 누군가의 힘겨웠던 하루도 완전히 나쁘지는 않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