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해지지 않으려고 감사한 것들을 찾으며 살아왔다. 덕분에 감사를 느끼는 일상을 사는 일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그것마저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고 결코 내가 가진 게 많아서도, 누가 봐도 감사할 만한 조건들을 갖추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하루가 지나도 더 이상 나아질 게 없다는 무력감과 ‘이 정도면 됐지 뭐.’ 자포자기한 마음을 스스로 감추기 위해 자기 합리화, 도피처로서 ‘감사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정말 비참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기로 약속할 것만 같아서였다.
현실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었다. 나 자신이라고 해서 나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마음가짐을 달리 갖는 건 조금 더 수월했다.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처음부터 가져본 적도 없었으니까. 이미 가진 것들을 떠올렸다.
원하던 대학, 학과에 가지 못했지만 결국 하게 된 일이 꽤 적성에 맞았다. 벗어나고 싶었던 가정환경이었지만 부모님이 열심히 살아오신 덕분에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이력서에 쓸만한 스펙이란 건 없었지만 내 몸은 항상 건강했다. 초등학교 때에는 따돌림을 당했지만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오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오늘은 유난히 하늘이 깨끗했고, 오래간만에 끓인 된장찌개는 입맛에 딱 맞았다. 지금도 감사한 일은 계속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주지 않는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는 기분이랄까.
감사의 마음과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을 갖는 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 위한 양말을 걸어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