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작은 단서들

by 고유

내 책상은 늘 어지럽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건망증이 심해서 하던 일을 정리해 버리면 다시 이어가야 할 일을 잊을까 봐 눈앞에 보이게 두는 이유도 있다. 가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책상을 가만 바라보다 보면 내 머릿속을 닮아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할 땐 책상 앞에 앉는다.


책상 앞에 앉을 땐 무엇을 하기로 정하지 않는다. 딴짓이 제일 재밌는 공간이라서다. 그래서 대놓고 딴짓을 하기로 한다.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었다가도 좋은 생각이 나면 글을 쓰고, 글을 쓰려고 의자를 앞으로 끌었다가도 눈앞의 성냥갑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진다.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정신세계를 유영하는 기분이랄까. 그 시간만큼은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자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그 시간을 사랑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단서도 책상 앞에서의 시간으로부터 얻었다.


내 책상 위에는 인센스, 라이터 대신 성냥, 연필, 지우개, 커터칼, 읽다 만 책과 읽을 책들이 지정석처럼 그 자리에 있다. 바로 옆 선반에는 전시회 굿즈샵에서 산 수첩과 엽서, 길거리 플리마켓에서 데려온 키링, 필름카메라, 탁상달력, 그리고 맥주뚜껑만 모은 유리단지와 종이로 접은 연필 보푸라기를 담는 작은 상자가 있다.


필름카메라, 연필과 커터칼 같은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한다. 과정에 시간이 더 걸려도 그게 마음에 든다. 플리마켓이나 전시회에서 산 물건들은 실용의 목적보다는 순간을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핸드폰 캘린더보다 탁상달력을 쓰는 건 자주 깜빡하니 중요한 일을 눈앞에 두고 상기시키려는 이유다. 그냥 쓰레기로 버릴 법한 맥주뚜껑이나 연필을 깎고 나서 생긴 보푸라기를 모으는 일은 내가 이 생에 미련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말해준다.


언제부터 어떤 물건이 책상에 올랐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결국 이 어지러움 속에서도 나만 아는 질서가 있어서다.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그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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